본문 바로가기

조각가 심문섭, 통영선 안 먹던 멍게·해삼 서울 와 즐겨

중앙선데이 2021.04.17 00:21 732호 26면 지면보기

예술가의 한끼

경남 통영 출신 조각가 심문섭. [사진 심문섭]

경남 통영 출신 조각가 심문섭. [사진 심문섭]

통영의 봄은 살이 막 여물어지기 시작하는 남해의 도다리와 해풍을 뚫고 고개를 내민 어린 쑥으로 만든 도다리쑥국의 향긋함으로 무르익는다. 바다와 육지의 봄기운이 듬뿍 담긴 도다리쑥국을 세 번 먹으면 그해 일 년은 무병무탈하다라는 믿음을 통영사람들은 갖고 있다.
 

어릴 적 시각적인 감수성 예민해
해삼 이상한 생명체로 보여 외면

평창동 집서 해산물 파티 열 땐
짭조름한 반건조 생선 메뉴 인기

철·아크릴 등 파격적 재료 실험
주체보다 소재인 객체 더 중시

도다리쑥국 덕분인지 무척이나 건강해 보이는 조각가 심문섭(1943~)은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유치환이 시를 쓰고 윤이상이 작곡한 교가를 부르며 충렬국민학교를 다녔다. 통영은 문학과 음악과 미술의 고장이다. 윤이상·유치환·유치진·김상옥·김춘수·박경리·전혁림 등 대한민국의 쟁쟁한 문학가, 예술가들이 통영에서 나왔다.
 
서울에서 멀리 동떨어진 남해안의 자그마한 도시에서 이만한 인재들이 한꺼번에 배출된 건, 예술적 감수성을 가꾸기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풍광과 함께 풍부한 해산물의 생산에 따른 경제력 덕이 컸다. 통영은 뱃길의 항구이자 동시에 통영 앞바다 자체가 생선의 보고다. 통영 앞바다에서 양식한 굴과 잡힌 생선들이 마산, 부산, 서울 등 전국으로 간다. 정서와 실속을 다 갖춘 도시 통영이다.
 
윤이상·유치환·김춘수·박경리 통영 출신
 
(왼쪽부터) 심문섭, 피에르 레스타니, 김창렬, 지노. 밀라노 무디마미술관, 1994년. [사진 심문섭]

(왼쪽부터) 심문섭, 피에르 레스타니, 김창렬, 지노. 밀라노 무디마미술관, 1994년. [사진 심문섭]

통영사람들의 삼시 세끼 밥상에는 생선이 떨어지지 않는다. 생선이 너무 흔해 심문섭은 생선이 귀한 줄 모르고 자랐다. 소년 심문섭은 입이 짧았던 모양이다. 식구들이 다 잘 먹는 멍게, 해삼이 유독 이 소년의 비위에는 맞지 않았다. 시각적 감수성이 남달리 예민했던 소년에게 멍게와 해삼은 조형적으로 이상한 생명체로 보였다. 거부의 끝에는 어머니의 야단이 따라왔다.
 
소년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통영중에 들어가니 동양화가 이석우(1928~1987)가 미술교사로 그를 가르쳤다. 중학교 3학년 때 부산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서양화가 김종근(1933~2012)이 미술교사로 부임해 왔다. 김종근은 비범한 재능의 제자를 아꼈다. 심문섭이 통영고에 진학해서도 두 사람의 관계가 이어졌다. 이 무렵 홍익대를 나온 여성 화가에게서 목탄으로 석고 데생을 배웠다. 지방에서는 석고상을 구경하기가 힘들 때였는데 운이 좋았다.
 
정오 무렵이면 여수에서 출발하여 부산으로 향하는 배가 중간기착지인 통영에 도착한다. 속이 출출해진 승객들은 뱃머리에서 파는 충무(통영)김밥을 사서 먹었다. 통영을 출발한 배는 다시 4시간 반을 달려 부산항에 도착한다. 남포동쯤에서 저녁을 먹고 시간을 보내다 부산역에서 밤 9시 야간열차를 타면 다음날 새벽 6시쯤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심문섭은 이 코스대로 상경해 서울대 미대에 진학했다.
 
서울에서 난생처음 설렁탕이란 걸 먹어 보았다. 이상한 맛이었다. 통영의 밥상은 해산물 일색으로 소고깃국은 1년에 한 번 생일날에 올라왔을 뿐이다. 서울식 설렁탕은 콩나물이 들어가고 고추기름이 둥둥 뜨는 경상도 소고깃국과는 맛이 아주 달랐다. 연건동 서울대 미대 앞, 노점에서 파는 축 늘어진 해삼이 새삼 고향의 바다를 떠올리게 했다. 고향에서는 외면했던 멍게, 해삼을 먹기 시작했다.
 
부인 역시 통영 출신이다. 본가와 처가가 다 통영이니 서울까지 해산물의 공수가 원활했다. 반건조생선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마른 가자미는 찜으로, 마른 갈치는 조림으로 해 먹었다. 서울에 사는 통영의 친구들끼리 한 달에 한 번 서로의 집을 돌아가며 방문하는 파티가 열렸다. 평창동 심문섭의 집에 파티가 열리는 날은 전원 참석이었다. 부인의 멋진 솜씨로 통영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해산물 요리가 제공되었기 때문이었다.
 
내륙 사람들보다는 생선회를 많이 먹기는 하지만 정작 통영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 반건조 생선이다. 건조하면 보관도 길어지지만 맛도 더 깊어진다. 햇볕과 바람이 강해야 제대로 된 반건조 생선이 만들어진다. 일조량이 풍부한 통영은 생선 말리기에 그만이다. 소금물에 살짝 절인 수많은 생선을 철망 위에 얹혀 햇볕과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꾸덕꾸덕 말리는 장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사상에는 반건조 생선의 찜이 올라온다. 제사상에 오른 밥은 제사가 끝난 후 비빔밥으로 비벼지는데, 통영에서는 무나물, 콩나물, 고사리나물 대신 생미역, 파래, 톳, 김 등 해초가 들어간다. 여기에다 조개와 홍합으로 국물을 낸 두붓국을 넣어 질컥하게 비비면 통영 비빔밥이 된다. 가자미찜과 통영 비빔밥을 심문섭은 애호한다.
 
한눈에 딱 보기에도 심문섭은 조각에 최적화된 몸을 갖고 있다. 조각은 재료의 저항이 크다. 재료와 싸워야만 하는 미술장르다. 균형 잡힌 몸매에 단단한 근육, 햇볕과 바닷바람이 켜켜이 쌓아 올려져 만들어진 듯한 가무잡잡한 피부, 재료와 대결해야 하는 조각가의 운명에 이만한 조건의 몸도 드물다.
 
그렇다고 재료와 마냥 싸우기만 하면 한계가 있다. 더 크게 열린 세계의 조각을 위해서는 재료 앞에 너그러워져야 하는 것 또한 조각가의 숙제다. 남해안의 따스한 날씨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은 세상과 사물에 대한 친화력과 낙천적인 태도를 주었다. 충무에서 마산, 창원, 진해로 이어지는 온화한 기후의 남해안 리아스식 해안에서 심문섭·김종영·문신·박석원·박종배·김영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조각가들이 대거 나온 것은 이 때문일지 모른다.
 
세계적 작품 통영조각공원 조성 한몫
 
심문섭의 작품 ‘목신, 나무, 철’, 197x85x52㎝, 1992년. [사진 심문섭]

심문섭의 작품 ‘목신, 나무, 철’, 197x85x52㎝, 1992년. [사진 심문섭]

통영사람들은 ‘내가’ 만든다 할 걸, ‘나가’ 만든다라고 표현한다. 일인칭 대명사 ‘내’와 ‘나’의 차이는 주격조사의 부착 유무에 있다. ‘내’는 ‘나’에 ‘이’라고 하는 주격조사가 이미 부착된 상태다. 그러니까 ‘내가’라고 하면 이중의 주격조사가 붙는 셈이다. 통영사람들은 주격이 부착되지 않는 순수한 일인칭 원형으로서의 ‘나’의 상태를 무의식중에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격조사가 늘어날수록 주객은 더 분리된다. ‘내가’가 아닌 ‘나가’라는 발성에는 주객의 분리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도 할 수가 있다.
 
나와 분리됐던 세계를, 주격을 약화시킴으로써 분리 이전의 세계로 열고 싶은 소망은 심문섭의 작업에서도 엿보인다.
 
“작품이 만들어질 때 //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 소재가 결정될 때 이미 완성된 것과도 같다.” (심문섭, ‘소재’, 『섬으로 - 시 사진집』 2017년). 작품 제작의 주체인 일인칭의 주격을 약화시켜 제작의 주체를 소재 즉 객체 편으로 돌려놓고 있다. 주체와 객체가 엄정하게 대치하거나 분리된 서양의 고전적인 조형문법이 아니라 이들 사이를 느슨하게 파고들어 그 틈새에서 작품이 형성되게 하는 심문섭만의 조형문법을 만들었다.
 
심문섭은 청년작가 시절부터 실험적인 작업을 했다. 철, 아크릴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재료적 실험을 했다. 1970년 한국의 대표적인 전위적 미술 그룹인 AG(아방가르드 협회)에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1971년, 1973년, 1975년 파리청년비엔날레에 선발되면서부터 국제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 일본 하코네의 헨리무어 대상전에서 우수상으로 선정됐다. 이 상은 그의 국제적인 인지도를 크게 높여 주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세계현대미술제가 열렸다. 사전행사로 한 해 전에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때 세자르, 폴 뷰리 등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서울을 찾았다. 심문섭이 맹활약을 했다. 덕분에 조각계의 세계적인 거장들과 사귀게 됐다. 이를 발판 삼아 1997년에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 앤서니 곰리, 장 피에르 레이노 등 세계적인 작가들이 참가한 통영국제조각심포지엄을 개최하며 통영의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망산에 이들의 작품을 영구전시하는 통영국제조각공원을 조성할 수가 있었다. 최근에는 조각가들의 작품을 집으로 재탄생시킨 통영 조각의 집을 조성했다.
 
통영의 햇볕과 바람이 빚어 태어난 심문섭은 다시 통영의 햇볕과 바람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다.
 
황인 미술평론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전시기획과 공학과 미술을 융합하는 학제 간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1980년대 후반 현대화랑에서 일하면서 지금은 거의 작고한 대표적 화가들을 많이 만났다. 문학·무용·음악 등 다른 장르의 문화인들과도 교유를 확장해 나갔다. 골목기행과 홍대 앞 게릴라 문화를 즐기며 가성비가 높은 중저가 음식을 좋아한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