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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적 분석, 철학적 사고로 금리 예측 탁월한 ‘채권왕’

중앙선데이 2021.04.17 00:20 732호 14면 지면보기

[월스트리트 리더십]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 CEO

요즘 채권시장 분위기는 침울하다. 지난해 여름까지 곤두박질치던 금리가 바닥을 다지는 듯싶더니 올해 들어 급등한 탓이다. 고삐 풀린 금리가 일격을 가한 건 채권만이 아니다. 그동안 저금리를 상수로 여기던 주식시장도 화들짝 놀라 오랜만에 조정다운 조정을 보였다.
 

2014년 상승론 대세 속 역발상 투자
그로스 제치고 채권 1인자에 등극

채권 수식·컴퓨터 프로그래밍 접목
모기지증권서 금맥 찾아내 대박

펀드 단기간 운용 속도전으로 승부
자산 2년 반 만에 500억 달러 넘어

무엇보다 금리가 시장의 화두로 떠오르면 언론의 조명이 집중되는 인물이 더블라인 캐피털(더블라인)의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건들락이다. 특히 이번 금리 급등이 2013년의 기억을 소환하자 건들락이 내다보는 금리의 향배에 더 큰 관심이 쏠렸다.
 
강한 자기 확신, 승부욕 탓 호불호 갈려
 
올해 금리가 급등하자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건들락이 내다보는 금리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뉴시스]

올해 금리가 급등하자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제프리 건들락이 내다보는 금리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AP=뉴시스]

채권투자자들의 머릿속에 2013년은 악몽과도 같은 한 해로 남아있다. 그해 봄까지만 해도 1% 중반대에 머물던 10년 미국 국채 금리가 연말에는 3%를 웃돌면서 전 세계 채권시장을 초토화했기 때문이다. 현대 금융사에 ‘발작’이라고 기록될 정도의 패닉을 초래한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정책 전환 시그널이었다. 경기가 회복세를 띄고 인플레이션 기대가 상승하자 벤 버냉키 당시 연준 의장이 유동성 축소를 시사했다.
 
바로 현재 상황도 인플레이션과 연준이 함께 맞물려 있기에 2013년에 주목하는 것이다. 2014년 들어 연준이 실제로 유동성 축소에 나서자 대다수 전문가는 이제 4% 금리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그때 금리의 반락을 점친 인물이 건들락이었다. 그리고 예상보다 느린 경기 회복이 금리의 발목을 잡을 거라는 건들락의 예상은 현실이 됐다. 서서히 방향을 튼 금리가 그 후 1년 동안 하향 곡선을 그리더니 결국 1% 중반으로 회귀한 것이다. 건들락은 2014년 역발상 투자를 기점으로 최고의 채권투자가라는 자신의 위상에 쐐기를 박을 수 있었다.
 
사실 건들락은 업계 최고의 운용 실적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2인자 자리에 머물러야만 했다. 20년 이상 채권 왕좌를 지킨 빌 그로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던 탓이다. 그로스는 1971년 자산운용사 핌코를 설립한 후 한때 270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최대 펀드를 운용한 인물이다. ‘만기 보유’라는 오랜 채권투자 패러다임을 액티브 투자로 전환한 것이 그의 최대 업적이었다.
 
그랬던 두 사람의 위치를 뒤바꿔 놓은 것은 결국 성과였다. 2010년 이후 지나치게 비대해진 펀드 규모와 어긋난 금리 전망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던 그로스와 달리, 펀드 규모를 제한하고 투자 모델 개선에 집중한 건들락이 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2013년과 2014년 두 해의 성과가 결정적이었다. 2013년의 패닉 장세에서 그로스가 큰 손실을 기록했지만 건들락은 수익을 냈고, 2014년엔 건들락의 금리 예측이 적중해 그로스와의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게다가 핌코가 내분을 겪으며 그로스가 쫓겨나듯 회사를 떠나게 되자 경쟁자 건들락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건들락의 채권 왕좌 등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제프리 건들락(Jeffrey Gundlach)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 겸 최고투자책임자, 전 TCW 최고투자책임자
출생연도 1959년(62세)
최종 학력 다트머스대학 수학 및 철학과(1981년 졸업)
개인 재산 22억 달러(2021년 4월 기준·포브스)
미국 378위/세계 1444위
한편 투자업계에서 건들락만큼 호불호가 갈리는 인물도 흔치 않다. 탁월한 운용 실력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직설적이고 다소 거만한 말투는 불편함을 주기도 해서다. 강한 자기 확신과 남다른 승부욕이 소통의 과정에서 드러난 결과다. 그렇다고 유연함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은 그가 가장 중요시하는 투자의 원칙에서 잘 드러난다. 건들락은 “투자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언제 방아쇠를 당길지 아는 것”이라며, 특히 “성공 투자를 한 후 반대로 돌아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주식은 사는 것보다 파는 게 훨씬 어렵다’라는 말과 맥이 닿는 관점이다. 손절의 고통이야 말할 것도 없고, 수익을 확정 짓기 위해 주식을 파는 것은 마치 오랜 친구를 잃는 듯한 상실감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건들락이 운용하는 ‘토털리턴본드펀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모기지증권(MBS)이다. 그만큼 건들락은 MBS 투자에 고도의 전문성을 지녔고, 그의 성공도 MBS 시장의 발전과 궤적을 같이 했다. 건들락은 1980년대 초 자산운용사인 TCW에 입사하며 채권시장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그때까지만 해도 MBS 시장은 마치 정글과 같았다. 왜곡된 가격에 주먹구구식으로 거래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건들락은 혼란스러운 MBS 시장에서 금맥을 찾아냈다. 어린 시절부터 수학 영재로 통했고, 수학박사 과정까지 거쳤던 건들락은 채권 수식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접목해 수익 창출의 기회를 포착해낸 것이다.
 
수학과 더불어 건들락이 지닌 경쟁력의 원천은 철학이다. 건들락은 대학에서 수학과 철학을 동시에 전공했고, 한때 철학과 교수를 꿈꾸기도 했다. 이렇게 단련된 철학적 사고는 시장에 대해 의문을 품고 다수와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힘으로 작용했다. 결국 수학으로 투자의 답을 구하고, 철학으로 시장의 분위기와 심리를 읽어내는 것이 건들락의 최고 강점인 것이다.
 
그런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온다. 2009년 TCW와 결별하면서다. 건들락이 갑작스레 해고를 당하고 곧바로 경쟁사 더블라인을 설립하면서 불거진 TCW와의 갈등은 법정 다툼으로까지 번졌다. 법원은 건들락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재판 과정에서 계속된 폭로전은 건들락의 명성에 큰 상처를 입혔다.
 
미 장기채 3% 돌파, 증시 15% 하락 전망
 
건들락의 승부수는 속도전이었다. 빠른 속도로 인프라를 갖춰 펀드 운용 허가를 받기 위해 전력을 기울였다. 자신을 믿고 더블라인에 합류한 부하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우고, 자신의 펀드에 투자하려고 대기 중인 고객과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 당시 건들락은 TCW 시절 상사였던 하워드 막스 오크트리 캐피털 회장으로부터 지분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더블라인 캐피털(DoubleLine Capital LP)
설립연도 2009년
설립자 제프리 건들락
업종 투자운용업(뮤추얼펀드 운용)
운용 자산 규모 1360억 달러(2020년 12월 기준)
직원 수 278명(2020년 12월 기준)
건들락의 전략은 대성공이었다. 역대 최단기간에 운용 허가를 받아 첫 펀드를 출시했고, 거기에 건들락의 뛰어난 운용 실력이 더해지자 2년 반 만에 운용 자산 규모가 500억 달러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자 더블라인의 기업가치도 동반 상승해 막스가 2000만 달러에 인수한 20% 지분의 가치는 이제 1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고의 가치투자자 막스가 “더블라인 지분을 더 못 산 게 너무 아쉽다”라고 말할 정도니, 건들락은 기업 경영자로서 자질도 높이 평가받은 셈이다.
 
그렇다면 건들락이 최근 예상하는 금리의 방향성은 어디일까. 그는 10년 미국 국채 금리 기준 3%를 목표치로 제시하고 있다. 올여름이면 인플레이션이 3%를 넘어서는 것이 거의 확실하고, 구리 등 원자재 가격의 현 수준을 고려해도 금리가 3%는 되어야 적정하다고 주장한다. 주식도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다며 15% 이상 하락을 점치고 있다. 이번에도 그가 맞는다면 주식과 채권이 동반 상승했던 2014년과 정반대로 동반 하락 장세가 펼쳐지면서 투자에는 아주 힘든 한 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업 뮤지션 출신 건들락, 미술 사랑도 깊어
쉽게 믿기지 않지만, TCW에 입사하기 전 건들락은 전업 뮤지션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밴드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엔 LA로 옮겨가 2년 동안 록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다. 밴드 동료였던 아내를 처음 만난 것도 그때였다. 당시 건들락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처럼 성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비록 뮤지션의 꿈은 접었지만, 예술에 대한 건들락의 열정은 지금도 뜨겁다. 건들락은 미술 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수집가이다. 그의 LA 저택에는 앤디 워홀, 빌럼 데 쿠닝 등 현대 미술 거장들의 작품이 가득하다. 더블라인의 내부도 마치 갤러리처럼 꾸며 놓았다. 유명 작가들의 이름을 딴 회의실을 해당 작가의 작품으로 장식할 정도다.
 
건들락의 미술 사랑은 수집에서 그치지 않는다. 특히 현대 추상미술에 조예가 깊어 웬만한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추고 있다. 더블라인이라는 사명과 회사 로고도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 ‘두 선과 노랑의 구성(Composition with Double Line and Yellow)’에서 영감을 얻었고, 로고는 자신이 직접 그렸다.
 
최정혁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과 교수 jhchoy@hycu.ac.kr
골드만삭스은행 서울 대표 및 유비에스·크레디트스위스·씨티그룹 FICC(채권·외환·상품) 트레이더로 일했다.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자산관리학과에서 국제금융과 금융리스크를 강의하며 금융서비스산업의 국제화 등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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