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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영의 시선]국민의힘, 열린 플랫폼 될 수 있나

중앙일보 2021.04.16 00:39 종합 28면 지면보기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왼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개표상황실에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왼쪽)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인간이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정치인만큼 잘 잊는 부류가 있을까. 올림픽에 ‘선택적 망각’ 종목이 있다면 각국의 정치인이 금메달을 두고 다툴 것이 틀림 없다.  4ㆍ7 재ㆍ보선이 끝난 지 일주일 남짓한 시점에 정치권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더욱 그런 확신이 든다.
서울ㆍ부산 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후보들이 모두 당선되자마자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직을 내려놨다. 박수받으며 떠난 명예 퇴진이다. 같은 날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선대위원장과 김태년 원내대표도 사퇴했다. 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서다. 정반대 이유로 양 당은 지도부 공백을 맞으며 전당대회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두 당 모두 선거 결과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며 민심을 왜곡하고 있으니 가관이다. 특히 국민의힘 다선 의원들은 선거를 ‘국민의힘 승리’로 규정하고 마치 자신들이 공신이라도 되는 양 대거 당권 경쟁에 뛰어들었다. 결과적으로 이겼지만 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제 1야당의 대표를 맡겠다고 뛰어든 상황에 어이가 없다. 

재·보선 승리에 취해 민심 오판
"입당하라"식 합당 추진은 구태
제3지대도 껴안아야 진짜 통합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은 명백한 ‘여당의 참패’다. 그동안 국민의힘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던 유권자들이 도저히 이 정부를 참아낼 수 없다며 심판한 거다. 여기에 더해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의 단일화가 있었다. ‘후보 선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워밍업 존에서 몸을 풀며 야권의 승리에 힘을 보탰다. 오세훈ㆍ박형준 시장을 찍은 대다수 국민이 “국민의힘이 좋아서가 아니다”고 외치고 있지 않나.  
지금 국민의힘 당권 주자들의 당면 과제는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다. 당권 도전이 거론되는 주호영 대표 권한대행은 15일 “전당대회를 먼저 하면 합당 이후 지도체제를 또 논의해야 한다. 먼저 합당한 후에 전당대회를 하자는 의견이 더 높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의당이 지분을 요구하지 않고, 재산도 깔끔하며 사무처 직원도 한 자릿수로 장애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이 열린 플랫폼이 돼 야권 단일화를 해서 대선을 치르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서 합당도 추진하는 것”이라며 “제3지대가 당을 만들어 대선을 치르는 상황이 온다면 야권 분열이기에 윤 전 총장이 잘 검토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권 주자들 중 충청 출신의 홍문표ㆍ정진석 의원도 윤 전 총장의 입당을 염두에 두고 합당이 먼저란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의힘 의원들의 다수를 차지하는 영남 의원들 머릿속에 국민의당과의 합당이나 윤 전 총장이 들어올 플랫폼 정당의 구축이라는 과제가 얼마나 차지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총선에서 여권이 180석을 차지한 뒤 국회에서 제대로 된 ‘투쟁’ 한번 못 하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이 필요할 때 조용히 뒤에 물러나 있던 이들이다. 영남의 한 재선 의원은 “내가 봐도 우리 당이 한심해 보인다. 솔직히 말해 다음 대선은 안중에 없고 차기 총선에서 다시 공천받아 당선될 생각만 하는 의원들이 상당수이다 보니 다선 중심의 당권 후보들이 쏟아지는 것 아니겠나”라고 진단했다.    
이번 재ㆍ보선에서 연대의 중심에 섰던 건 누가 뭐래도 안 대표다. 그런데 지금 국민의힘은 "역시 거대 정당의 힘이란 게 이런 거다. 이제 그만 깨닫고 당으로 들어오라”는 태도다. 하지만 안 대표나 윤 전 총장을 비롯한 제 3지대 인사들을 껴안을 수 있는 오픈된 플랫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국민의힘 내에서도 몇 되지 않는다.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듯한 '구태'를 보이면서 입으론 '오픈 플랫폼'을 말하니 누가 그 말을 믿겠나. 이같은 기류의 저변에 깔려있는 건 "대선에 이기는 것도 좋지만 총선이 더 중요하다. 총선 공천에 도움 되는 사람에 줄 서겠다"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기득권 의식이다. 
3선의 조해진 의원은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현재 야권이 대선에서도 승리하기 위해선 야권 통합이 가장 필요하다"며 "국민의힘은 반드시 우리 당에서 후보를 내겠다는 기득권 의식을 버리고 통합의 밀알이 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진정 오픈 플랫폼이 되고 싶다면 자신들이 통합의 중심이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안 대표, 윤 전 총장, 금태섭 전 의원 같은 다양한 중도세력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해야 한다. '우선 국민의힘으로 다 모이라'는 식의 구시대적 합당 프레임이 아닌 야권 통합을 전제로 한 동등한 연석회의체에 일원으로 참석하고 낮은 자세로 임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언제, 어떤 식으로 전당대회를 치르는 지를 통해 이런 것이 가능할 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가영 논설위원

이가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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