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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동의 실크로드에 길을 묻다] 600년 전 집현전 학자, 표음문자에 꽂힌 까닭은?

중앙일보 2021.04.16 00:27 종합 24면 지면보기

한글의 탄생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다룬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2019)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플러스엠]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다룬 조철현 감독의 영화 ‘나랏말싸미’(2019)의 한 장면. [사진 메가박스 중앙플러스엠]

실크로드는 역사상의 여러 문명을 연결·소통시키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비단길의 가장 동쪽 끝에 있던 한반도 우리나라는 이로부터 대체 어떤 영향과 혜택을 받아왔을까. 여태껏 많은 학자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와 실크로드의 연관성을 주목해왔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유라시아 내륙 깊숙한 곳에서부터 흘러오는 실크로드의 맥동은 한반도의 다른 지역은 물론 고려시대까지도 변함없이 전달돼왔다.
 

비단길 타고 건너온 인류의 유산
4000년 전 시나이반도서 비롯해
페르시아·몽골 거쳐 한반도 전파
가장 과학적인 알파벳으로 완성

조선이 건국한 이후 실크로드를 통한 서방과의 접촉 통로가 좁아 들었다. 중국에 만주족이 세운 거대한 청 제국이 자리 잡으면서다. 조선 사대부들의 기억 속에서 과거 유라시아 대륙과 한반도 사이에 존재해온 긴밀한 관계는 희미해졌다. 사대부들은 오히려 중화 문화의 적자, 즉 소중화(小中華)임을 자처했다. 중국 문화가 조선 지식인들의 정신세계를 압도하던 그때, 놀랍게도 실크로드의 유산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엄청난 영감을 불어넣었다. 그렇게 태어난 것이 바로 한글이다.
 
문화와 종교가 함께 동쪽으로 이동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아람 문자로 쓴 비석.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김호동 교수]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아람 문자로 쓴 비석.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사진 김호동 교수]

의문이 하나 든다. 표의 문자인 한자에 물들어 있던 조선 초기 학자들의 머릿속에서 어떻게 한글의 표음문자 원리가 떠오를 수 있었을까. 그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물도, 어느 날 밤 갑자기 세종의 꿈속에 기적처럼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한글에 내재한 표음문자 원리는 실크로드라는 문화적 가교가 없었다면 결코 조선에 알려질 수 없었다. 실크로드가 한글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는 이 글의 주장을 단순히 로맨틱한 선언이라고 치부하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지금껏 출현한 모든 문자는 크게 볼 때 뜻을 나타내는 표의문자와 소리를 드러내는 표음문자(alphabetic script)로 나뉜다.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나 중국의 한자가 대표적인 표의문자인데, 한자를 제외한 다른 표의문자들은 사실상 거의 사라진 상태다. 현재 인류가 쓰는 대부분의 문자는 표음문자다.
 
중국 베이징 교외 거용관의 운대(雲臺) 외벽에 남아 있는 불경 가운데 파스파 문자. [사진 김호동 교수]

중국 베이징 교외 거용관의 운대(雲臺) 외벽에 남아 있는 불경 가운데 파스파 문자. [사진 김호동 교수]

세상 모든 표음문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하나의 뿌리, 즉 지금부터 3500~4000년 전에 출현한 원시 시나이 문자(Proto-Sinaitic script)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후일 고대 남부 아라비아 문자와 페니키아 문자로 계승·발전됐고, 마침내 아람 문자와 그리스 문자로 이어지면서 지구촌 모든 표음문자의 분화·확산이 이뤄졌다.
 
세계 종교를 망라해 볼 때, 유일신 관념이 처음 출현한 곳도 지중해 동남부 해안, 즉 시나이 반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지는 지역이었다. 신은 무지한 인류를 빛과 문명의 세계로 이끌기 위해 동분서주한 것이 아니라, 딱 한 곳을 찍어 그의 ‘지문’을 남긴 셈이다.
 
기원전 1500~2000년경에 처음 나타난 이 표음문자의 원리는 어떻게 해서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질러 그로부터 3000년 뒤 한반도까지 도착하게 된 것일까.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이 기나긴 여정을 몇 가지 중요한 장면을 거슬러 올라가며 되짚어본다.
 
첫 번째 중요한 고리는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기원전 550년 무렵 건설된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이다. 서쪽으로는 이집트에서 팔레스타인을 거쳐 소아시아를 장악했고, 동쪽으로는 인도와 중앙아시아까지 그 세력이 미쳤다. 제3대 군주였던 다리우스 1세(기원전 550~486) 때 절정을 이뤘는데, 그는 아람어와 문자(Aramaic)를 제국의 공용언어·문자로 사용할 것을 선언했다. 고대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아람인들이 최초의 표음문자인 원시 시나이 문자를 계승·발전시킨 것이 아람 문자였다. 같은 뿌리에서 생겨난 페니키아 문자와 함께 모든 표음문자의 조상이 됐다.
 
고대 인도 카로슈티 문자로 새겨진 아소카 대왕의 암각 칙령. 파키스탄 서북부 샤브하즈가르히 소재. [사진 김호동 교수]

고대 인도 카로슈티 문자로 새겨진 아소카 대왕의 암각 칙령. 파키스탄 서북부 샤브하즈가르히 소재. [사진 김호동 교수]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330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하지만 아람 문자는 고대 인도인들에게 영향을 미쳐 두 종류의 표음문자, 즉 카로슈티(Kharoshti)와 브라흐미(Brahmi) 문자를 탄생시켰다. 특히 브라흐미 문자는 일찍이 기원전 3세기 중반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카 대왕의 암각 칙령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기원후 4세기 굽타 왕조 초기까지 인도 전역에서 줄곧 사용됐다.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은 중앙아시아에서도 아람 문자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표음문자들이 통용되기 시작했다. 시리아 문자·소그드 문자·마니교 문자 등이다. 기원후 2세기경부터 기독교·불교·조로아스터교·마니교 등의 경전이 이들 문자로 표기됐고, 이런 경전들에 기록된 문자는 종교 전파와 더불어 더 멀리 동쪽으로 전파됐다.
 
600년 전후한 시기가 되면 몽골리아 초원의 유목민들도 소그드 문자를 변형하여 자신들의 문자, 즉 고대 투르크 문자를 만들었다. 이 문자로 새겨진 거대한 비석들이 1889년 오르콘(Orkhon) 강가에서 발견됐는데, 그로부터 불과 4년 만인 1893년 덴마크의 빌헬름 톰센이라는 학자가 이를 해독했다. 표음문자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신속한 해독은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이 문자는 몽골 초원에 살던 돌궐인들은 물론 시베리아 남부의 키르기스인들, 심지어 저 멀리 동유럽과 발칸 반도에 살던 하자르(Khazar)나 페체네그(Pecheneg)와 같은 유목민들도 사용했다.
 
독창성·보편성 두루 갖춘 문자 창출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으로 불어오기 시작한 표음문자의 바람은 높고 견고한 한자 문화의 벽을 넘어서 중국 주변의 민족들에도 영향을 미쳤다. 10세기경부터 거란·여진·서하인들은 차례로 자신들의 문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형은 서로 달랐지만 표음의 원리는 분명히 나타났다. 다만 한자의 강력한 영향 때문인지 알파벳 원리가 충분히 관철되지 않아 실용성에서 많은 문제를 내포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 알파벳 원리를 제대로 구현한 것이 중앙아시아의 주민들이 만들어낸 위구르 문자였다. 소수의 알파벳으로 구성된 이 문자는 각종 종교 경전과 세속 문서를 기록할 때 널리 활용됐다. 마침내 13세기 초 몽골제국이 들어서자 공식 문자로 채택돼 제국 영역 전체로 퍼져나갔다. 제5대 군주였던 쿠빌라이 칸은 독창적인 ‘제국의 문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티베트 출신 승려 파스파에게 새로운 문자의 제작을 위촉했는데, 이렇게 해서 선보인 것이 파스파 문자였다.
 
세종대왕을 비롯한 집현전 학사들은 1446년 한글 반포 이전에 동아시아에 존재했던 이러한 표음문자들의 존재는 물론 그 원리까지도 잘 알고 있었다. 학계에서는 한글 ‘자형(字形)’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했느냐에 대해서는 분분한 논의가 펼쳐졌다. 아직도 일치된 의견이 없긴 하지만 당시 학자들이 외래 표음문자의 원리를 한글에 적용했다는 사실 한 가지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한글의 우수성을 부연할 생각은 없다. 많은 서구 학자들도 “가장 과학적인 문자” “세계 최고의 알파벳” “의심할 나위 없이 인류의 가장 위대한 지적 성취 가운데 하나”라며 상찬해왔다. 저 멀리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시작하여 실크로드를 거쳐서 전해진 표음문자의 원리를 세종과 그의 신하들이 차용했다는 사실이 한글의 독창성을 훼손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 보편성 속에서 한글의 우수성이 더욱 빛나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홀로 고립된 문화는 예전에도, 또 앞으로도 절대 있을 수 없다.  
 
몽골 제국이 사용한 위구르 문자
칭기스석

칭기스석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에 실크로드와 관련된 흥미로운 유물이 있다. 바로 칭기스석(Chinggis Stone·사진)이다.
 
몽골 제국을 수립한 칭기즈칸이 서방 원정을 마치고 돌아오던 1225년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활쏘기 대회를 열었는데, 이때 활을 가장 멀리 쏜 그의 조카 이숭게(Yisüngge)에게 상을 내리고 기념으로 세워준 비석이다.
 
이숭게의 화살은 무려 536m를 날아갔다고 기록돼 있다. 이 비석에 새겨진 문자가 몽골 제국의 공용 문자였던 위구르 문자다. 방대한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몽골인들은 이 문자를 계속 사용했지만, 20세기 전반 몽골이 구(舊)소련의 위성국이 되면서 러시아의 키릴 문자를 채택하게 됐다. 소련이 붕괴한 오늘날 몽골인들은 이 문자를 다시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김호동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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