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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친구란…힘들 때 불평하고 어리광부려도 되는 사람

중앙일보 2021.04.15 15:00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0)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과의 약속이 깨진 저녁, 일찌감치 잠옷으로 갈아입고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집중해서 무언가를 시청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던 터라, OTT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편하게 누워 키득거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았던 것 같다. 그러다 우연히 한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멈췄고, 방송이 끝날 때까지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했다. 
 
‘전설의 콤비 특집’이라는 그 날의 주제 때문이었을 거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주병진과 노사연, 박수홍과 박경림이었는데, 우리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단짝으로 유명하다. 어린 시절 주말이면 TV 앞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던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시그니처 콤비 주병진과 노사연, 팬에서 동료가 되었다는 특별한 이력의 남매 같은 콤비 박수홍과 박경림을 담는 투 샷이 반갑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언제든 손 내밀면 잡아주고, 등 두려줄 수 있는 누군가 있다는 것. 친구의 역할은 놀라운 위로가 된다. [사진 Alvin Mahmudov on Unsplash]

언제든 손 내밀면 잡아주고, 등 두려줄 수 있는 누군가 있다는 것. 친구의 역할은 놀라운 위로가 된다. [사진 Alvin Mahmudov on Unsplash]

 
그들의 오랜 관계(주병진과 노사연은 40여년 된 친구이고, 박수홍과 박경림은 30여년 된 친구라고 했다)와 그 시간 동안 변화해온 각자의 인생, 그리고 지금 맞이하게 된 현재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걱정하고 마음 써주는 우정이 그대로 보였고, 그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상태를 짐작할 수 있고, 애써 위로하지 않아도 서로에게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상대. 그건 젊은 시절(혹은 그것보다 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두 사람의 시간, 그러니까 공유했던 많은 순간과 사연이 있기 때문이리라.
 
방송을 시청하며 긴 시간을 함께한 나의 친구를 떠올려봤다. 가장 오랜 시간 만나고 있는 친구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각자의 일이 너무 다르고, 사는 곳도 멀어 1년에 한두 번 만나면 그나마 다행일 정도인 우리는 그래도 누군가의 생일이나 명절이 되면 단톡방을 통해 진심으로 안부를 묻고 응원한다.
 
우리가 함께한 세월은 35년 정도 되는데, 소위 소녀 시절부터 주름진 모습의 지금까지 중요한 삶의 시기를 목격해 온 사이다. 결혼 이후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함께 있으면 고등학교 당시의 소녀처럼 시끌벅적 수다에 앞뒤 안 재며 서로에게 격려를 퍼붓는다. 대학 친구도 있다. 치열하게 자신과 부딪치며 살았던 시기에 만난 우리는 서로의 취향과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안다고 생각한다. 학교를 졸업한 후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는지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만나면 서로의 일에 대한 관심과 조언을 나눈다. 물론 이들 역시 자주는 못 만난다.
 
열정 가득한 젊은 날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나이다. [사진 Becca Tapert on Unsplash]

열정 가득한 젊은 날부터 함께 한 친구들이 점점 더 소중해지는 나이다. [사진 Becca Tapert on Unsplash]

 
그리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며 만난 친구가 있다. 좌충우돌 사회생활의 시작을 같이 한 우리는 직장생활 초년기부터 일, 연애, 결혼과 육아, 그리고 50대가 된 지금의 모습까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이다. 비슷한 일을 하고 있기에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술 한잔 함께 하며 이런저런 속내를 드러내다 보면 고민거리가 느슨해지고는 해 틈나는 대로 만나곤 한다 (그 날 깨진 약속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각자 일의 변화가 생기고 가족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50대가 되니 아무래도 이전만큼은 자주 보지는 못하고 있다. 삶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 하고 지금까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이 정도나 있다니, 새삼스레 감사했다.
 
인생 후반에 맞이할 수 있는 기쁨과 가능성에 관해 두 석학의 필담을 담은 책 『지혜롭게 나이든다는 것』(마사 누스바움, 솔 레브모어 지음)에도 ‘나이든다’는 것과 ‘친구간의 우정’을 다룬 내용이 있다. 우리 시대 대표적 지성인이라 불리는 시카고대 석좌교수 마사 누스바움은 철학자 키케로가 쓴 『나이듦에 관하여』와 『우정에 관하여』를 연결하며 두 가지 조건이 만들어내는 관계에 대해 차분하게 정리한다. ‘나이 드는 사람에게 우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귀하다. 우정이 있어야 도전이 있고, 위안이 있고 살아있는 느낌이 난다. 우정이 없으면 하루하루가 쓸쓸하고 빈약해진다’라고 시작하면서 말이다.
 
“친구를 깊이 있게 사귀면 반드시 자기를 노출하게 됩니다. 친구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보지 못하는 서로의 단점을 보게 됩니다. 선량한 사람은 대체로 선하게 행동하지만 그 과정에서 걱정하고 갈등하고 주저하게 마련인데, 일반적으로 그런 감정은 친구에게만 내보이게 됩니다. (중략)어려운 시기에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은 사람을 지치게 합니다. 이때 친구로서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그 사람에게 휴식을 선사하는 것입니다. 분통을 터뜨리고, 공포에 질리고, 어린애 같은 모습을 보여도 되는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하는 겁니다.”
 
저자의 글 중 마음에 남았던 부분이다. 살다 보면 변화와 어려움을 겪는 시기가 등장한다. 나 역시 그럴 때마다 위안을 얻기 위해 친구를 찾았던 것 같다. 문제를 맞닥뜨리고 해결하든 포기하든 결정과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자신이지만, 그럼에도 친구를 불러냈던 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고맙게도 나의 친구는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다. 나도 그런 친구가 되었는지 되짚어 보며, 오랜만에 단톡창을 열고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깨진 약속도 다시 정하면서!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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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 김현주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현 한국문화정보원 근무 필진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 전 코스모폴리탄·우먼센스 편집장, 현 한국문화정보원 근무. 20~30대 여성으로 시작해 30~40대 여성까지, 미디어를 통해 여성의 삶을 주목하는 일을 25년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자신의 나이 또래인 50대 '갱년기, 중년여성'의 일상과 이들이 마주하게 될 앞으로의 시간에 관심을 갖고 있다. ‘더오래’를 통해 여성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호르몬의 변동기인 이 시기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보낼 수 있을지 모색하며 동년배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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