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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미얀마 민주화 시위 주도하는 Z세대 청년들

중앙일보 2021.04.15 00:42 종합 29면 지면보기
윤소희 환경재단 선임 PD 미얀마 프로젝트 매니저

윤소희 환경재단 선임 PD 미얀마 프로젝트 매니저

미얀마 역법으로 신년인 4월엔 가장 큰 축제인 띤잔(Thingyan), 즉 물 축제가 열린다. 노란 띤잔 꽃이 피는 이 무렵이면 모든 미얀마 사람들은 가족을 보러 고향으로 돌아간다. 약 2주간 서로에게 물을 뿌리며 새해의 축복을 빈다.
 

“나의 투쟁이 조국의 10년 결정”
‘민주화 선배’ 한국의 지지 간절해

2014년 첫 미얀마 방문을 계기로 인연을 맺은 필자는 띤잔 축제 때면 친구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올해 4월의 미얀마는 축복의 물 대신 민주화 투사들의 피로 얼룩지고 있다.
 
군부 독재로 얼룩진 미얀마에서 1988년 민주화 시위가 분출했지만 ‘미얀마의 봄’은 진압당했고 수십 년 군부독재는 이 나라를 최빈국으로 만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5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당이 압승했지만, 민주주의가 여전히 취약했다.
 
지난해 11월 치른 총선에서 NLD 당은 개헌 가능 의석을 확보해 지난 2월 1일 진정한 민주 정부가 탄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군부 실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개헌을 저지하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고, 미얀마는 다시 암흑으로 뒤덮였다.
 
지난 11일 기준으로 최소 701명이 사망했고 수천 명의 시민들이 체포됐다. 이번 민주화 시위의 중심에는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 청년’들이 있다. 아웅산 수치 여사를 신격화하며 추앙해온 기성세대와 달리 거리낌 없이 정치적 의견을 발표하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맛본 세대다. SNS와 전자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이들은 미얀마 상황을 창의적 아이디어로 국제사회에 알리고 게릴라식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Z세대의 목숨을 건 시위에도 미얀마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당선한 의원들로 구성된 ‘연방정부 대표위원회’(CRPH)는 미얀마의 유일 정부라고 주장하며 민주 진영의 임시정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버마족이 주류라 다양한 소수 민족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사회에 정부 인정과 지원을 호소하지만, 성과를 못 내고 있다.
 
필자는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에서 약 600㎞ 떨어진 냥쉐에서 환경재단 프로젝트 매니저(PM)로 활동해왔다. 열악한 소수민족 주민의 생활 인프라 개선과 삶의 질 향상 사업을 해왔다. 아름다운 호수와 농촌 풍경이 인상적인 냥쉐에서도 유혈 진압이 시작돼 지난 6일 첫 사상자가 발생해 안타깝고 슬프다.
 
쿠데타 발발 이후 필자를 보호하기 위해 곁에서 상주하던 친구들은 매일 아침 시위에 나섰다. 그들은 고향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힘쓰던 순박한 청년들이었다. 인터넷이 연결되면 SNS에는 목숨을 잃은 청년들의 얼굴 사진이 속속 올라왔지만 그런 비극적 소식을 접하고도 친구들은 두려움 없이 매일 아침 결연한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그들은 “오늘 나의 투쟁이 나와 내 아이, 그리고 조국의 10년을 결정한다”며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지난달 20일 필자는 “살아서 다시 보자”며 현지 직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냥쉐를 떠나 일시 귀국했다. 요즘 필자는 매일 아침 SNS를 유심히 살핀다. 목숨을 잃은 투사들이 혹시 내 친구들이 아닐까 초조하게 사망자 얼굴을 확인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지금 미얀마는 민족·지역별로 형성된 반군들이 시민 시위대를 지지하면서 군부에 맞서 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혹자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내전보다는 CRPH와 군부가 협상해 인명 피해를 막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민주화를 위해 싸우는 미얀마 친구들의 용기 있는 결정을 지지한다. 그들의 하루하루 투쟁을 응원하고 기록한다. 군부 독재를 앞서 종식한 한국처럼 미얀마가 따뜻하고 찬란한 민주주의의 봄을 실현하길 바란다. 친구들과 띤잔 축제를 함께 즐길 그 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윤소희 환경재단 선임 PD·미얀마 프로젝트 매니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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