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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역사와 비평] ‘공정’ 통하려면 이번엔 부동산 부패의 사슬 끊어야

중앙일보 2021.04.15 00:39 종합 25면 지면보기

부패 청산에 실패한 한국 현대사

바보야, 문제는 프레임이야
 

친일잔재 척결, 신탁통치 이슈 부상하며 후순위로 밀려나
권력자·대기업 부정부패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진보-보수 구도 되며 부패 해결이 진보의 정치 슬로건 돼버려

지난달 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앞에서 진보당 전북도당이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공사 정문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름이 ‘한국투기주택공사’ 바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북본부 앞에서 진보당 전북도당이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공사 정문에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이름이 ‘한국투기주택공사’ 바뀐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과거사 문제는 지금도 한국 사회의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정의를 세우고 불행한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를 처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나가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 과거의 이슈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도가의 고전 중 하나인 『열자(列子)』에 보면 “무릇 사람은 때를 잘 만나면 잘 되고 때를 잘못 만나면 망하는 법”(凡得時者昌 失時者亡)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문제 역시 때를 잘 만나면 해결되지만, 그렇지 못하면 해결될 수 없다. 과거사 문제는 해결해야 할 때를 놓치고 나면 아무리 해결의 당위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해결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렇다면 왜 때를 놓쳤을까? 불행한 역사가 다시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때를 놓쳐서 해결되지 않았던 원인을 찾는 것 역시 중요한 교훈이 될 수 있다.
 
친일잔재 청산의 문제
 
자기 나라를 다른 나라에 넘기는데 공헌을 하고 은사금을 받았다. 식민지 통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붙잡고 탄압하는데 공을 세웠다. 불의의 전쟁터에 젊은이들을 동원하고, 전쟁에 이기라고 무기를 헌납했다. 평화를 사랑하고 다른 나라에 해를 입히지 않았던 역사를 갖고 있었던 한국의 전통에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며, 청산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헌법에는 반민족행위 조사를 위한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
 
왜 반민족행위 조사와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는가는 너무나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여기에서 다시 논의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영화 ‘암살’에서도 법으로 처벌이 되지 않자 사적으로 처벌하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 불법이고 가상의 상황 설정이지만, 속을 시원하게 만드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 왜 이렇게 안타까운 상황이 나타났을까?
 
발단은 ‘찬·반탁 논쟁’이었다. 1945년 광복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큰 목표를 놓고 이념을 떠나 모든 정치세력들이 힘을 합쳐야 할 시기였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야 했다. 미군정이 보수 우익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해 조기 귀국시켰던 이승만이 친일잔재 청산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초기 정국의 주도권을 잃을 정도로 친일 청산의 문제는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문제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안이 ‘신탁통치안’으로 알려지면서 급격하게 국면 전환이 일어나게 되었다. 신탁통치 반대운동이 일어나면서 친일잔재 척결 문제보다는 신탁통치 문제가 이슈의 중심이 된 것이다. 이렇게 프레임이 바뀌고 나면서 모든 논의는 신탁통치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졌고, 3상회의 결정을 찬성한다는 발언을 했을 뿐인 좌파 계열 정당들은 신탁통치를 찬성하는 세력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결국 이로 인해 만들어진 찬·반탁 논쟁으로 인해서 반탁운동이 애국운동이자 반공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나라를 팔고 불의의 전쟁에 호응했던 사람들이 반탁운동에 참여하면서 친일잔재 청산을 주장하는 측에 좌익 또는 공산주의자라는 굴레를 씌우게 된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속에서 친일청산은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과거사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사회 개혁의 문제
 
1987년 민주화 이후 또 다른 과거사가 발생했다. 독재시대를 통해 수많은 인권유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인권유린만큼 중요했던 문제는 권력자와 권력기관에 의한 불법행위와 부정부패 문제였다. 4·19 혁명 이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정축재자 처벌을 위한 법이 제정되었지만, 이 법은 제대로 실행도 되지 못한 채 폐기되었다. 부정축재자들은 5·16 쿠데타 이후 다시 조사를 받았지만, 대부분 처벌받지 않았다.
 
1952년의 중석불 사건과 1966년의 사카린 밀수사건은 권력자들과 대기업이 관련된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인해 사건 관련자 1인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한국비료가 국가에 헌납되었을 뿐 철저한 조사도 없었고 어떠한 처벌도 없었다. 1972년의 8·3조치는 1960년대 경제성장을 위한 무리한 계획 때문이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밝혔듯이 정부와 결탁된 기업가들의 부도덕성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을 처벌하는 대신 사채를 동결하여 면죄부를 주었고, 오히려 산업합리화 자금을 통해 정부와 대기업이 결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후 정부와 대기업은 정치자금과 보조금 지급, 세금 감면 등을 통해 많은 부정부패가 발생했다. 또한 현대아파트 특혜분양과 같이 정치인·공직자와 재벌 사이의 부정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했다. 2000년 이후가 돼서야 정부는 과거사 위원회를 구성하여 인권침해를 당했던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재판 결과를 재심하였고, 이에 대한 보상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과거 불법행위를 자행했던 권력기관의 담당자들이나 부정부패와 관련해서는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민주화 이후 정치구도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 정치적 이념과 관계없이 사회구조를 개혁해야 했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구도는 보수와 진보로 재편되면서 사회 개혁은 진보, 사회개혁을 막으면 보수라는 통념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개혁이나 부정부패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사회적 과제가 아닌 진보적 그룹만의 정치적 슬로건이 되고 말았다.
 
여기에 더하여 한국현대사를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진행된다는 공식으로 정리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산업화는 그것대로 인정해야 하고, 민주화는 산업화 이후에 나타나는 업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났던 인권침해나 부정부패를 빠르고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위해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과정이 될 수 있다.
 
미래 혁신사회로의 진전을 위해
 
이상과 같이 한국현대사에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가 정치구도의 변화로 인하여 해결되지 못한 사례가 적지 않다. 과거사 문제에 얽매이는 것은 미래를 위한 혁신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지만, 실상 과거와 단절할 수 있는 사회구조의 개혁은 미래의 혁신을 위한 지름길이 된다.
 
5·16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박정희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쿠데타 세력의 이념적 지향에 대해 의심했다. 그러나 전근대적인 이해관계의 사슬, 이승만 독재체제 하에서 원조를 통한 부패의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가난하고 젊은 장교들에 의한 쿠데타가 한국의 사회경제구조를 바꾸고 빠른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서 불법적인 쿠데타 세력을 묵인했다. 이후의 과정을 볼 때 미국의 판단이 옳은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가 있을 수 있지만, 당시 미국 정부는 과거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 사슬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서는 미래를 위한 혁신을 이룩하기 어렵다는 점을 개발도상국에 대한 정책의 가장 핵심적 원칙으로 내세웠다.
 
지금 한국 사회는 부동산과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건이 중심적 이슈가 되고 있다. 한국 사회는 1967년 부동산 투기 억제 특별조치법이 규정된 이후 부동산 문제가 단 하루도 문제가 되지 않은 적이 없다. 또한 부동산 이슈는 한국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부동산 자체가 아니라 부동산이 만들어내는 불공정한 과정이다.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공직자와 전문가들이 포함된 부패의 사슬을 끊어내야 한다. 민주화 이후 사회개혁이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것이 하나의 원인이 되겠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를 통해 공정을 위한 프레임을 만들어가야 한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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