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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칭송했던 美거장의 건축학개론 "아름다움만큼 중요한 건 없다"

중앙일보 2021.04.14 17:08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프랭크 게리가 건축한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건축가”(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라 불린 프랭크 게리(92)는 한때 트럭 운전으로 생계를 이었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까지, 그의 삶은 혼돈이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라디오 아나운서를 해보고 싶었지만 잘하질 못했고, 화학공학을 공부해볼까 했는데 영 손에 잡히질 않았다”며 “머리를 싸매고 ‘대체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뭐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다 문득 어머니와 어린 시절 미술관에 함께 갔던 기억이 떠올랐고, 건축학 강의를 들어봤는데 그게 내 인생을 결정했다”고 전했다. 미국 공로 아카데미(American Academy of Achievement)와의 2016년 인터뷰다.  
 
프랭크 게리. [중앙포토]

프랭크 게리. [중앙포토]

 
그렇게 건축학도가 된 그는 곧 건축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직선이 지배하는 건축계에서 곡선을 강조한 건축(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고, 콘크리트의 건축이 상식이 되자 티타늄(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도입했다. 골판자를 구부려 의자를 만들거나, 폐허에서 뜯어낸 철조망이며 함석판으로 자신이 사는 집, 일명 게리 하우스를 지으며 상식의 틀을 파괴해왔다. 그리고 올해 92세인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서야 자유를 만끽하며, (의뢰인의) 눈치를 안 보고 내가 하고픈 걸 맘껏 하는데, 나이가 들었다고 그만둘 턱이 없지.” 뉴욕타임스(NYT)와의 지난 12일(현지시간) 인터뷰에서다.  
 
게리의실험정신 덕에 쇠락해가던 스페인의 소도시 빌바오는 관광객이 꼭 가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났고, 뉴욕시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요커들이 애정하는 장소가 됐다. 흔히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도 수상했다. 그리고 2021년, 프랭크 게리는 여전히 진화 중이다. 92세라는 나이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거장의 창작욕을 꺾지 못했다. NYT는 인터뷰 기사 “92세의 나이에도, 프랭크 게리는 너무 바빠서 은퇴할 시간도 없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게리는 수차례 방한한 경험도 있는데, 2012년엔 서울의 종묘를 찾아 “이렇게 아름다운 건물이 왜 아름다운지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한국은 이런 건물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고 감동을 전한 바 있다.
 
종묘를 방문한 프랭크 게리. [중앙포토]

종묘를 방문한 프랭크 게리. [중앙포토]

 
구순을 넘긴 건축 거장이 요즘 가장 집중하는 것은 뭘까. NYT는 “사회 정의”라고 전했다. 대성공을 거두고 건축의 역사를 바꾼 거장이 100세에 가까워지면서 천착하는 가치가 평등인 셈. NYT는 “게리에게 사회 정의 구현이 중요하다는 영감을 준 것은 (베네수엘라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공 음악 교육 프로젝트인 엘 시스테마”라고 전했다. 엘 시스테마는 경제학자이면서 오르간 연주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1975년 빈민층 거리인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청소년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한 무상교육이다. 수십만명의 아이들이 이 교육 시스템을 통해 범죄가 아닌 예술의 길을 택했으며, LA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인 구스타보 두다멜과 같은 스타의 산실이 됐다.  
 
LA필하모닉은두다멜 지휘자가 주축이 되어 청소년 교육 기관을 운영 중인데, 이곳의 학생을 위한 기숙사를 설계해주겠다고 자원한 인물이 프랭크 게리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사회 공헌을 하는 셈이다. 6월에 완공 예정이다. LA필하모니 측은 NYT에 “게리가 디자인한 건물은 마치 ‘아름다움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은유같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시대, 건축의 거장은 아름다움과 사회 정의에 집중하고 있다.  
 
프랭크 게리의 역작 중 하나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AFP=연합뉴스

프랭크 게리의 역작 중 하나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내부. AFP=연합뉴스

 
게리는 동시에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고 NYT는 전했다. 꼬냑 브랜드의 병을 디자인하거나, 환경론자들의 반대에도 LA의 강변 개발을 통해 도시 재생을 하는 등이다. NYT는 “게리는 바야흐로 어떤 타협이나 협의도 없이 그저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마음껏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게리에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싶은만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참된 재미”라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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