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공사장 아니고 전시장입니다" 난해한 해외 작품이 몰려왔다

중앙일보 2021.04.14 15:52
영국 작가 마이클 딘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영국 작가 마이클 딘의 '삭제의 정원' 전시 전경. [사진 바라캇 컨템포러리]

공사장인가, 쓰레기장인가. 최근 서울 삼청동 바라캇컨템포러리 전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문을 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영국 조각가 마이클 딘(Michael Dean·44)의 개인전 '삭제의 정원'이 열리는 곳, 그런데 막상 찾은 전시장은 난장판 그 자체로 보였다. 바닥에 철골을 드러낸 콘크리트 덩어리들과 구겨진 책들. 도로에 면한 갤러리 유리창은 온통 하얀 스프레이로 X자가 마구 낙서돼 있다. 
 

바라캇, 콘크리트 덩이들 바닥에
쾨닉, 유령 브론즈와 쇠사슬 조각
광주시립미술관, 행복방정식 네온

국내 미술 애호가들의 안목과 취향이 세계 현대미술 트렌드의 시험대에 올랐다. "이게 작품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과 "아니다, 굉장히 시적(詩的)이다" "재미있다"는 반응을 함께 얻고 있는 작품들이 한국으로 몰려왔다. 작품이 더욱 대담해지고 다채로워진 미술계 풍경이다. 최근 눈에 띄게 잠재력이 커지고 있는 3040 한국 컬렉터들을 겨냥한 '첨단' 작품들의 향연이다. 
 
바라캇컨템포러리는 '현대미술의 총아'라 불리는 마이클 딘 전시를 개막했고, 독일 쾨닉(KÖNIG) 갤러리는 최근 서울 청담동 MCM하우스 5층에 문을 열고 20여 명의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 중이다. 쾨닉 전시장에는 벽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손 조각부터 벽에 늘어뜨려 걸어놓은 쇠사슬 조각 등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작품들이 즐비하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영국 작가 리암 길릭의 전시도 '첨단의 첨단'이다. 미술관에서 건축 자재로 쓰이는 알루미늄 파이프로 만든 구조물, 복잡한 수학공식을 표시한 화려한 네온 등이 관람객을 사로잡는다.    
 

온갖 풍파를 겪은 인간의 운명처럼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사진 바라캇]

마이클 딘 '삭제의 정원' 전시장 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사진 바라캇]

마이클 딘, X CARE, 2021, 콘크리트 , 철, 184X54x60cm. [사진 바라캇]

마이클 딘, X CARE, 2021, 콘크리트 , 철, 184X54x60cm. [사진 바라캇]

건물을 해체한 현장에서 나온 듯한 조각들은 한국을 찾은 작가가 2주간의 격리 생활을 마치고 현장에서 직접 세심하게 배치한 것들이다. 작가는 바로 자신의 작업실 정원에서 비바람 맞던 작품을 보며 이번 전시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목이 '삭제의 정원'이다. 미라처럼 부식되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의 변화를 겪는 콘크리트 작품들이 인간의 운명처럼 비극적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이화선 바라캇 이사는 "딘은 영국 뉴캐슬 출신으로 시멘트와 모래, 물과 등의 재료로 작업하는 작가"라며 "콘크리트는 제철소와 탄광이 많았던 산업도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쉽게 보고 접했던 재료다. 시간의 흔적이 있는 콘크리트에서 그는 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딘은 "콘크리트는 대중을 위한 도자기"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선 딘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테이트 브리튼, 헨리 무어 조각 연구소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과 더불어 9점의 신작 조각, 드로잉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 이사는 "난해해 보이지만 개관 이후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고 있어 우리도 놀라고 있다. 숨어 있는 팬덤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드로잉은 다 판매됐고 조각품 판매도 기관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자꾸 보니 끌린다, 유령 조각

쾨닉 서울 개관전 전시 전경. 알리시아 크바데의 유령 조각이 보인다. [사진 이은주]

쾨닉 서울 개관전 전시 전경. 알리시아 크바데의 유령 조각이 보인다. [사진 이은주]

쾨닉서울에서 에르빈 브룸의 '무제', 2020 , oncrete, Acrystal,, paint 61 x 20 x 13 cm. [쾨닉 갤러리]

쾨닉서울에서 에르빈 브룸의 '무제', 2020 , oncrete, Acrystal,, paint 61 x 20 x 13 cm. [쾨닉 갤러리]

새로 문을 연 독일 화랑 쾨닉 갤러리의 개관 전시에도 고정관념을 깨는 작품이 다수다. 쾨닉은 2002년 베를린에서 개관해 지난 20년 간 급성장해 현재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갤러리 중 하나로 꼽히는 곳. 쾨닉은 지난해 도쿄 분점을 철수하고 서울을 선택했다.  
 
전시된 40여 점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폴란드계 독일 작가 알리시아 크바데(Alicja Kwade·42)의 작품들이다.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있는 실제 사람 크기의 유령 브론즈 조각부터 바위와 거울을 활용한 설치작품 등 그의 작품 5점이 전시 중이다. 최수연 쾨닉 서울 디렉터는 "쾨닉엔 에빈 브룸, 사라 모리스 등 비엔날레나 뮌스터 페스티벌 등 주요 현대미술제에 초대되는 중요한 작가들이 집중적으로 포진해 있다"면서 "페인팅부터 조각, 드로잉 등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모았다"고 소개했다. 
 

알고 보니 대단한 작가들  

리암 길릭,'눈 속의 공장'. 단 하나의 후렴구가 반복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눈 속의 공장'. 단 하나의 후렴구가 반복적으로 연주되고 있다.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의 '행복방정식'. 디지털 시대의 도시 야경을 연상케하는 네온 풍경으로 행복, 사랑 등 감정을 계량화려는 시도에 함축된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의 '행복방정식'. 디지털 시대의 도시 야경을 연상케하는 네온 풍경으로 행복, 사랑 등 감정을 계량화려는 시도에 함축된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장.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리암 길릭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장. [사진 광주시립미술관]

딘과, 크바데, 길릭 등은 현재 세계 미술계를 이끄는 쟁쟁한 작가들이다. 딘은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를 하며 이를 신체 드로잉, 조각 등으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삭제의 정원'도 그 맥락에 있는 작품이다. 크바데도 공간, 움직임, 시간, 물질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해온 작가로 2019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그에게 옥상정원에 놓일 조각작품을 주문해 설치했다. 길릭은 이미 영국 현대미술 부흥기를 주도한 세대인 ‘yba’ 작가로 현대미술사의 중요 개념인 ‘관계미학’ 이론 정립에도 공헌했다. 
 
이같은 작품들은 현재 한국 미술시장에 대한 높아진 기대를 대변한다. 쾨닉 서울 최수연 디렉터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쾨닉이 서울에 갤러리로 열기로 결정한 것은 한국 관람객들이 열정적이라고 보았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길릭 전시를 열고 있는 광주시립미술관 전승보 관장은 "리암 길릭은 일과 삶 사이의 복잡 미묘한 긴장과 균형을 다양한 형태로 드러내는 작가"라며 "이번 전시가 깊이 있는 미학과 수준 높은 작품을 감상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삭제의 정원'은 5월 30일까지, 쾨닉 서울 개관전은 5월 1일까지, 리암 길릭 '워크 라이프 이펙트'는 6월 27일까지. 
 

이은주 기자의 다른 기사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