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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가나에서 찾은 러시아 댓글부대

중앙일보 2021.04.14 00:39 종합 27면 지면보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가 지난달 미국 대선에서의 ‘외세 개입 시도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해 대선때 러시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을 위해 여론 조작에 나섰고, 이란은 반대로 트럼프 낙선을 위해 움직였다는 게 골자다.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한국에도 참고가 된다. 내년 대선에선 국내 드루킹만 아니라 해외 드루킹까지 설칠 수 있어서다.
 

러, 제3국에 댓글공장 가동
미국민 위장 음해 퍼나르기
대선 개입용 여론조작 시도
궁극적 목표는 미국 쪼개기

① 미국민 위장 댓글부대
 
NIC 보고서가 지목한 러시아의 여론조작 조직은 일명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다. 미 국무부가 운영하는 공공외교 웹사이트 셰어아메리카(SHAREAMERICA)에 따르면 IRA는 당초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다. 하루 2교대로 수천개의 위장 트위터·페이스북 계정 등을 통해 글을 올리는 여론조작 댓글공장이 이곳이었다. IRA는 앞서 2016년 이미 미국 대선에 뛰어들었다. 온라인 공간에서 미국 시민의 가면을 썼다. 러시아 독립 언론(MY DISTRICT)에 따르면 댓글부대는 스스로를 ‘가정주부’와 ‘실망한 미국 시민’으로 위장했다. CNN과 BBC 웹사이트를 폭격하는 것도 이들의 일이었다. 댓글부대원 중엔 광신적인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저 돈을 벌려는 젊은이들이었다.
 
② 제3국에 댓글공장
 
2020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시도는 더욱 교묘해졌다. 보고서는 “락타 인터넷 리서치(IRA의 후신)는 미국을 겨냥한 주장을 퍼뜨리기 위해 가나·나이지리아·멕시코에 댓글공장을 만들었다”고 알렸다. CNN이 지난해 4월 가나의 댓글공장을 추적 보도했다. 가나 수도 아크라 외곽의 조용한 주거지역에 위치한 일반 가옥이 댓글부대 본부였다. 이곳은 이른바 ‘아프리카 해방을 위한 장벽 제거’라는 단체 이름으로 임대돼 있었다. 이곳의 16명 댓글부대원들은 대부분 20대의 남녀 젊은이들이었다. 컴퓨터 없이 휴대폰으로 근무했고, 가나에선 거의 사용되지 않는 텔레그램으로 의사소통했다. 이들은 CNN 취재진에 “트윗과 댓글을 다는 최적의 시간은 늦은 오후와 밤이라고 들었다”고 알렸다. 이때가 미국의 활동 시간이다.
 
서소문 포럼 4/14

서소문 포럼 4/14

③ 미국 쪼개기가 목표
 
보고서에 따르면 여론조작 수법은 먼저 음모론과 허위사실 퍼나르기다. “당내 경선과 대선 과정 전반에서 바이든과 그의 가족들이 우크라이나 의혹에 연루돼 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반복해서 퍼뜨렸다”고 보고서는 기술했다. 이어 바이든 지지자들의 투표 의지를 꺾는 심리전이다. “어떤 후보도 선택할 만한 옵션이 되지 못한다고 알려 진보 성향 국민들이 투표 참여를 포기하도록 조장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여론조작의 목표는 ‘바이든 낙선’에 그치지 않는다. ‘미국 쪼개기’가 본질적 목표다. 보고서는 “미국의 선거 과정에 대한 믿음을 약화하고 미국민들 간에 사회정치적 분열을 확대하는 모스크바의 목표도 동시에 시도했다”고 명시했다.
 
미국 쪼개기는 러시아의 오랜 숙원 사업이다. 2016년 5월 21일 휴스턴에서 이슬람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렸다. ‘텍사스 이슬람화 중단’이라는 집회는 페이스북에서 활동 중인 ‘텍사스의 심장’ 단체가 주최했다. 이들은 참석자들에게 총을 소지하라고 독려했다. 반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열린 ‘이슬람 지식 수호’ 맞불 집회는 페이스북의 ‘미국무슬림연합’이 주도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들 두 단체는 모두 IRA 계정이었다. 러시아 여론조작 조직이 꿈꾼 건 미국민들 간 총격전이다.
 
위의 세 포인트는 우리에게도 교훈이 된다. ①해외 드루킹은 한국민으로 위장한다. ②이들은 제3국에 댓글공장을 만들었다. ③이들의 근본적 목표는 한국 쪼개기다. 북한은 이미 이렇게 해왔다.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를 지향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다. 온라인 공간 역시 모두에게 열려 있다. 그런데 이는 북한과 해외 드루킹에겐 파고들 기회다. NIC 보고서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활용이 늘면서 해외 세력은 미국민에게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수는 없다. 해외발 여론조작이 우려된다고 온라인을 사전 검열의 공간으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대신 우리는 이들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유추할 수 있다. 평범한 시민이라면서 허위 사실을 퍼나르고, 특히 우리 내부에서부터 갈라지도록 시도한다. 극한 분열을 조장하며 상대를 적으로 여기도록 분노의 감정을 자극하는 댓글 속에 해외 드루킹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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