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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조근정훈장 수상한 조치흠 교수 "코로나 극복까지 절반 왔다"

중앙일보 2021.04.13 18:19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9회 보건의 날 행사에서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조치흠 교수에게 황조근정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49회 보건의 날 행사에서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조치흠 교수에게 황조근정훈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보건복지부가 13일 ‘제49회 보건의날’ 기념식을 개최해 보건의료 분야에 종사하며 국민보건 향상에 헌신한 유공자를 포상했다.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가 4월 7일을 ‘세계보건의 날’로 제정한 것에 따라 1973년부터 이날을 보건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이날 기념식에는 국민 건강 증진과 보건의료 분야 발전에 기여한 유공자 37명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유공자 100명에 대한 포상이 이뤄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치매, 정신질환 환자의 곁을 지키다가 장기ㆍ조직 기증을 통해 생명나눔 문화 확산에 앞장선 고(故) 김시균 동해 동인병원 과장에게는 국민훈장 석류장이,  대구ㆍ경북 코로나19 1차 대유행 때 확진자를 진료하다 감염돼 사망한 고(故) 허영구 내과의원 원장에게 국민훈장 모란장이 추서됐다.  
 
이날 황조근정훈장은 조치흠 계명대학교 동산병원 교수에게 돌아갔다. 조 교수는 코로나19 초기 감염병 대응체계를 신속히 갖춰 지역거점병원을 운영함으로써 코로나 극복에 기여한 공적이 인정됐다. 중앙일보는 조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1년 전 대구ㆍ경북이 코로나19를 극복할 수 있었던 과정을 돌아보고 지금의 사태를 진단해봤다.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 연합뉴스

조치흠 계명대 동산병원장. 연합뉴스

황조근정훈장을 수상한 소감은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혼자만의 영광이 아니라 우리 병원 모든 직원이 힘을 모은 결과이고 이들을 대표해 받는 거라고 생각한다.
 
1년이 지난 지금 지난 2월 대구ㆍ경북 사태를 돌이켜본다면
그때는 정말 전쟁 상황 같았다. 밖에 차도 안 다니고 적막감만 흘렀다. 25년을 재직하면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이런 상황이 있을 수 있구나’ 싶었다. 다만 그때도 이번 피크만 막으면 확산 세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조 교수가 병원장으로 있는 계명대 동산병원은 지난 2월 대구ㆍ경북 지역에 코로나19 1차 대유행이 시작되자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지정됐다. 특히 조 교수는 비상대책본부장을 맡은 지 하루 만에 병원에 있던 기존 환자를 전원 보낸 후 건물 전체를 코로나19 환자를 위한 진료 공간으로 만들었다. 병원을 통째로 코호트 지정한 건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후 6월 말까지 약 4개월여 동안 총 906명의 의료진(동산의료원 소속 402명, 파견지원 504명)이 투입돼 1048명의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며 1차 대유행의 고비를 막아냈다. 조 교수는 지난해 12월 해당 내용을 담은 논문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하는 온라인 저널에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12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2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간호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가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감이 확산했던 2월, 어떻게 병원 전체를 코호트 할 생각을 했나
당시 우리 병원이 새 건물로 이전하면서 이전 건물에 병실이 여유가 있었다. 처음에는 남아있는 음압 병상 40개 정도를 활용하려고 했는데 2월 되니까 하루 확진자가 500명씩 쏟아졌다. 1인실 병상을 다 내놔도 턱도 없는 수치여서 아예 병원 전체를 코호트하고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입원해있던 일반 환자 137분도 동의해 6시간 만에 전원을 마칠 수 있었다.
 
의료진이 선뜻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나섰나
처음엔 어려웠지만, 세팅을 마친 뒤 2~3주가 지나니까 의료진들도 자원하기 시작했다. 우리 병원은 선교사가 세운 병원이다. 시작이 그렇기 때문에 사회에 봉사할 책무가 있다고 느꼈고 의료진들에게도 이런 부분을 호소하니까 아무도 안 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코로나19 사태 초기라 장비나 방역복 등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의료진에게 산소를 공급하는 장비가 부족해 2시간 일하고 2시간은 밖에 있어야 했던 때도 있었고 방역복이 3일 치밖에 남지 않아 초조한 적도 했다. 식당이나 환경 정리를 하는 직원들이 감염을 우려해 병원에 들어오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지난해 3월 대구동산병원에 전달된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하는 모든 이를 응원하는 초등학생의 그림.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대구동산병원에 전달된 코로나19 대응에 헌신하는 모든 이를 응원하는 초등학생의 그림. 연합뉴스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떻게 진단하나
지금은 장기전으로 갔다. 거리두기 상향을 한다고 조정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고 본다. 결국 백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을 거다. 
 
코로나19 극복 얼마나 걸릴까 
지금 절반 정도 온 거 같다. 코로나19 극복까지는 적어도 1년 정도가 더 지나야 할 것 같다. 다만 나중에 역사적으로 보면 중세 유럽에서 돌던 페스트(흑사병)보다 더 임팩트가 클 거다.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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