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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남성임을 입증하라" 이게 여가부 산하 '성인지 강의'

중앙일보 2021.04.13 15:56
최근 논란이 된 여성부 산하 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의 성인지 강의.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최근 논란이 된 여성부 산하 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의 성인지 강의.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남성들은 왜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느냐고 기분 나빠하기 보단 자신은 가해자들과는 다른 부류임을 정성스레 증명해 보는 건 어떨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양평원)의 ‘성인지 강의’ 내용의 일부다. 이는 양평원이 지난해 2월 공식 유튜브 계정 ‘젠더온’에 올린 것이다. 1년여가 지난 현재 일부 학교에서 교육 자료로 쓰이고 있다는 말이 퍼지며 네티즌의 입길에 올랐다.
 
나윤경 양평원 원장이 기획한 이 영상의 제목은 ‘잠재적 가해자와 시민적 의무’다. 나 원장은 영상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성인지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요즘 적지 않은 남성들이 ‘왜 남성을 잠재적 가해자 취급하느냐’고 항변하는 등 부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그는 이어 “한국 여성들은 ‘아빠 빼고 남자는 다 늑대·도둑놈이야’라는 소리를 듣고 자란다”며 “또 사회에 나와 남자인 친구·선배·상사를 의심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가 성폭력을 당하면 ‘네가 조심했어야지’ ‘꽃뱀인가’ ‘자기도 좋았던 거 아니냐’라며 피해 여성을 비난한다”고 했다.
 
나 원장은 “여성들은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의심하고 경계할 수밖에 없다”며 “남성들은 의심한다고 화를 내기 보단 자신은 나쁜 남성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는 노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시민적 의무라고 정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변함없이 갑 또는 을의 위치에 있을 순 없다”며 “맥락에 따라 위치가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양평원 공식 유튜브 채널 ‘젠더온’ 캡처

이 강의 내용에 대해 인터넷에서는 찬반 논란이 일었다. 한 네티즌은 “‘남자가 잠재적 가해자 취급 받는 건 당연한 거야. 네가 이런 취급이 싫다면 특별한 노력을 해야 해’라고 ‘가스라이팅’하는 것 같다”고 주장했다.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지배력을 강화하는 행위를 말한다. 또 다른 네티즌은 “남성이 잠재적 가해자라면 여성을 잠재적 꽃뱀으로 인식해도 되나. 꽃뱀이 아니라는 걸 여성 스스로 증명해보라”라며 “남녀를 동등한 개인이 아닌 이렇게 차별적 시각으로 바라보다니”라고 비판했다.
 
이 밖에 “OOO(유명인 이름)은 스스로 증명한 적 없으니 잠재적 성범죄자네”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 “정부 산하 기관에서 이런 강의를 만드는 건 세금 낭비” 등의 반응도 나왔다.
 
이런 논란에 대해 양평원 관계자는 “해당 영상은 애초 2030 남성을 대상으로 제작됐다”며 “중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학교 숙제로 해당 영상을 시청하도록 숙제를 내줬다는 댓글을 달며 ‘중학교 성교육 영상교재’라고 알려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민신문고를 통해서도 민원이 들어와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며 “입장이 정리되는 대로 홈페이지 등에 공지를 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 텍스트나 발언에 있어선 맥락이 중요하다”며 “피해자의 구체적 진술 등에 따라 나온 고민상담 혹은 조언이 아니라 불특정다수 남성에게 ‘스스로가 가해자 남성들과는 다르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건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지 명확히 언급돼 있지 않은 부분도 혼란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추지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 콘텐트는 성별뿐 아니라 국적·인종·상하 관계 등에 있어 모든 이가 의도치 않게 가해자가 될 수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며 “상대방의 입장과 위치를 고려해보자는 취지에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성인지를 비롯한 모든 인권 교육의 핵심은 타인에 대한 이해, 즉 상호호혜적 관계를 생각하고 사회문제를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지혜 기자 kim.jihye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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