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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강력해진 ‘바이 아메리칸’…배터리는 시작일 뿐

중앙일보 2021.04.13 00:04 경제 3면 지면보기
“미국 근로자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승리다.”
 

바이든, 자국내 공급망 차질 우려
SK·LG 배터리 분쟁 개입해 해결

미 조달정책, 트럼프 때보다 촘촘
자국산 우대, 인정 기준도 상향
FTA 재협상 가능성 등 대비해야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713일을 끌어온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끝낸다고 발표한 11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 같은 성명을 냈다. LG와 SK도 소송 종료 합의에 맞춰 발표한 공동 성명에서 “미국 바이든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배터리 공급망 강화 및 친환경 정책에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밝히며 보조를 맞췄다. 한국에 본사를 둔 두 대기업의 합의에 미국 대통령이 나서 자국의 승리라고 평가하는 이유는 뭘까. 이런 배경엔 미국 중심으로 생산·매입망을 재편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핵심 정책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을 사자)’이 깔렸다.
 
그동안 미국 내에서는 LG와 SK의 분쟁으로 자국 내 자동차 배터리 공급에 차질을 빚고, SK 조지아 공장 철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컸다. 미 대통령이 직접 나선 이유다. 바이든은 속내도 드러냈다. 그는 이날 성명에서 “우리(미국)는 더 강력하고 다변화하고 탄력성 있는 미국 기반의 자동차 배터리 공급망이 필요하다”며 “양질의 일자리를 바로 여기 미국(at home)에서 창출하고, 미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내 완성차 메이커 생산기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미국 내 완성차 메이커 생산기지 현황.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미국은 놓칠 수 없는 전기차 시장이자 전략적 요충지다. 당장 삼성SDI도 미 시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12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SDI는 전기차용 배터리 셀 공장을 2022년쯤 착공해 2025년 7월경 완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투자 지역으로는 현재 운영 중인 미시간주의 배터리 조립 공장을 확대하는 방안과 미 남부의 선벨트를 놓고 득실을 계산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는 이르면 올 하반기(7~12월) 미국 내 배터리 투자 계획을 확정 발표할 방침이다. 소위 ‘K-배터리 삼총사(LG에너지솔루션·SK이노베이션·삼성SDI)’가 미국에서 본격적인 시장 쟁탈전에 돌입하는 셈이다.
 
여기에 해외 배터리 기업도 미 전기차 배터리 시장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일본 파나소닉은 테슬라와 손잡고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 나섰다. 파나소닉은 미 전기차 배터리 공장 증설도 진행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테슬라를 주요 고객사로 두고 배터리를 생산하고 있는데 향후 미 양산차 기업으로 공급망 확대를 노릴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미국 배터리 시장의 경쟁 격화로 저가 수주가 이어지면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으로 변질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 해석도 있다. 한국 기업 간 선의의 경쟁이 신규 전기차 배터리 수주 확대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주민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장은 파나소닉과 테슬라의 조인트 벤처 공장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 배터리 기업의 독무대”라며 “미국 내 공장 보유가 신규 수주와 공장 증설 가속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 배터리 기업의 부재도 한국 기업에 호재다.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세계 1위를 차지한 중국 CATL은 2019년부터 미 전기차 배터리 시장 진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지만, 미·중 갈등의 골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LG와 SK 간 합의는 K-배터리 경쟁력 강화에서 긍정적”이라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중·일 배터리 기업 간 경쟁 구도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미국의 ‘바이 아메리칸’ 전략이 전기차 배터리를 넘어 전 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12일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발간한 ‘세계 경제 포커스’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의 조달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더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혜리 KIEP 무역투자정책팀 전문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 관련) 정책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 때보다 구체적·체계적으로 이행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트럼프 정부 때 50%에서 55%로 올려놓은 자국산 물품 인정 기준을 더 상향 조정하기로 했다. 최종 물품 가격을 기준으로 일정 부분(55% 이상, 철강은 95% 이상)까지 미국 내에서 생산해야 미국산으로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미국산 제품에 대한 가격 우대율도 트럼프 정부(12%)의 배가 넘는 20~30%로 끌어올리기로 했다. 또 단순히 미국에서 생산한 소재·부품이 일정 가격 비중을 차지하는 것만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에서 생산되고 일자리 창출에도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인증 항목에 포함한다.  
 
박 연구원은 보고서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바이 아메리칸) 정책은 표면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역대 관련 조치 중 가장 강력한 것으로 평가된다”며 “미국은 바이 아메리칸 정책을 추진하면서 기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등과 충돌이 발생할 경우 재협상까지 고려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세종=조현숙 기자, 강기헌·김영민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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