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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종률 세계 3위 부탄···41세 용왕 외교, 공짜 백신 얻어냈다

중앙일보 2021.04.12 16:49
부탄의 지난달 27일 백신 접종 현장. 뒤의 초상화가 '용왕'으로 불리는 부탄 국왕이다. AFP=연합뉴스

부탄의 지난달 27일 백신 접종 현장. 뒤의 초상화가 '용왕'으로 불리는 부탄 국왕이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과 세이셸군도에 이어 전 세계에서 백신 접종률 3위 국가는 부탄이다. 비결은 용왕(龍王) 리더십. 부탄의 국왕을 일컫는 용어가 드룩 잘포(Druk Gyalpo), 영어로는 드래곤 킹(the Dragon King), 즉 용왕이어서다. 부탄의 존경 받는 젊은 군주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41)가 빠른 접종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AFP통신은 지난 9일(현지시간) “접종 속도로만 본다면 부탄이 (접종률 세계 1위인) 이스라엘보다 빠르다”고 보도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일 게재한 기사에서 “부탄의 일명 ‘용왕’ 등 정치 지도자들의 기민한 대처 덕분”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부탄 역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신 백신 확보에선 앞서나갔다. 인구 77만 9000여명의 상대적 소국(小國)이라는 점도 작용했지만, 강대국의 백신 외교를 활용한 덕분이다. 용왕 리더십이 빛나는 첫번째 순간이었다.  
 
부탄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중앙포토]

부탄 국왕인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추크. [중앙포토]

 
부탄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낀 나라다. 영국령이었다가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한 뒤, 인도와 조약을 체결해 독립한 게 1949년이다. 중국과 인도는 으르렁대는 사이다. 지난해 발생한 양국 간 유혈 국경 분쟁에서 약 인도 측 20명, 중국 측 45명 이상의 사망자(러시아 타스 통신 보도)가 발생했다. 이후 인도에서 중국 불매 운동이 벌어졌고, 올해 들어서는 양국 간 백신 외교 경쟁이 붙었다. 인도가 먼저 물량 확보에 성공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주변국에 지원하면서 환심을 사자 중국도 따라잡기에 나섰다. 부탄의 국왕은 이 점에 착안해 인도의 백신을 무상으로 지원받았다. 어부지리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강대국 사이에 낀 강소국엔 외교로 거둔 소중한 열매인 셈이다. 전 국민을 접종하고도 남은 80만 도스를 확보했다.  
 
부탄의 국왕은 백신 확보에 만족하지 않고 신속한 접종에 나설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정부에 자문하는 점성술사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이들 점성술사들은 “별의 움직임이 좋지 않다”며 “원숭이해에 태어난 이들만 먼저 접종을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국왕은 그사이 ‘평화의 수호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을 커버하는 오렌지색 유니폼을 입은 백신 접종 지원단을 꾸렸다. 점성술사들의 오케이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전국적 접종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다. 
 
실제로 이들 지원단은 전국에 1200개가 넘는 백신 접종 스테이션을 설치해 누구든 언제든 와서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전국적 접종이 시작되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었던 배경이다. 면적이 약 3만㎢로, 한국(10만188㎢)의 약 3분의 1 크기이지만, 1200개가 넘는 백신 접종 스테이션을 촘촘히 세운 것이다.  
 
젊은 국왕의 든든한 오른팔은 총리인 로테이트셰링이었다. 총리 그 자신이 심장이 전문분야인 의사 출신으로, 백신 접종 안내와 실행을 도맡았다. 이코노미스트는 “총리의 페이스북은 대부분 백신 접종 안내문으로 가득 차 있다”고 전했다.  
 
부탄 국왕 가족 사진. 노란색 천은 국왕만이 두를 수 있다고 한다. 부탄 왕실 공식 사진=AFP=연합뉴스

부탄 국왕 가족 사진. 노란색 천은 국왕만이 두를 수 있다고 한다. 부탄 왕실 공식 사진=AFP=연합뉴스

 
한편 부탄 국왕은 지극한 아내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부탄은 일부다처를 허용하지만, 그는 “나는 부인만 바라보며 일부일처로 살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아내는 평민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부탄 왕족과 교류가 있을 정도로 인맥이 좋았다. 부탄 국왕이 부인을 처음 만난 것도 가족 간 소풍이었다고 한다. 
 
당시 18세였던 국왕은 7세였던 여자아이였던 제선 페마를 보고 한눈에 반해 “너와 결혼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다는 얘기가 소문으로 돌았다. 부인 역시 재원으로 영국에서 유학했다. 둘은 2011년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부탄 국왕은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국가총행복(GHN)에 국정의 우선권을 두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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