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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전 떠난 딸의 유산 달라는 사위, 한푼도 주기 싫다면

중앙일보 2021.04.11 08:00
신탁재산은 유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 이후 금융사의 '유언대용신탁'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pixabay

신탁재산은 유류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결 이후 금융사의 '유언대용신탁'을 문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사진 pixabay

 
중소기업을 운영하다 5년 전 은퇴한 김기철(82ㆍ가명) 씨는 요즘 상속 고민으로 밤잠을 못 이룬다. 아들과 첫째 딸에게 재산을 나눠줄 속내를 비치자 막내 사위가 크게 반발하면서다. 막내딸은 5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금융SOS]유류분 분쟁 막는법
신탁은 '유류분' 대상 제외 판결
유언대용신탁 찾는 자산가 증가
상속 플랜 짜고, 연속 세대 상속
최고 1% 수수료 등 비용 부담돼

 
김씨는 막내 사위가 대습상속인 자격으로 죽은 딸 몫의 상속재산 일부분(유류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당초 계획대로 아들과 첫째 딸에게 재산을 물려줬다가는 막내 사위가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할 게 불 보듯 뻔했다. 하지만 그는 “생전 수년간 막내딸이 사위 때문에 마음고생 한 걸 생각하면 사위에게 한 푼도 안 주고, 외손녀만 챙기고 싶다”고 토로했다. 
 
김씨가 막내 사위를 제외한 상속을 하면서 유류분 분쟁을 막을 방법이 있을까. 전문가들은 가족 간 갈등 없이 재산을 상속ㆍ증여하는 방법으로 유언대용 신탁을 꼽는다. 
 
유언대용 신탁은 신탁자(유언자)가 보험을 제외한 전체 자산을 맡기면 금융회사가 피상속인 생전에는 자산을 관리하고, 사후에 집행을 책임지는 서비스다. 특히 지난해 금융사의 유언대용 신탁에 맡긴 신탁자산은 ‘유류분’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유류분은 피상속인 의사와 상관없이 상속인이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유산 비율이다. 
상속인별 청구 가능한 유류분 비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상속인별 청구 가능한 유류분 비율.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신탁재산은 유류분에 포함 안 돼  

현재 민법상 유류분의 범위는 피상속인 생전에 증여한 재산이나 상속이 이뤄지는 시점에 고인이 갖고 있던 재산 또는 사망하기 1년 이내에 제3자에게 증여한 재산으로 본다. 하지만 유언대용 신탁에 1년 이상 맡긴 신탁재산은 유언자 사후에 수익자(상속인) 소유가 되기 때문에 증여로 보기 어렵고, 소유권은 이미 은행이 갖기 때문에 상속재산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었다. 
 
방효석 법무법인 우일 변호사는 “앞으로 판결이 뒤바뀌지 않는 한 신탁재산은 유류분 다툼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언대용 신탁 서비스(상품)는 2010년 하나은행의 ‘리빙트러스트’를 시작으로 은행과 증권사에서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배정식 하나은행 100년 리빙트러스트 센터장은 “유류분 판결 영향으로 지난해 (유언대용 신탁 관련) 상담 건수는 1025건으로 1년 전보다 2배로 늘었다”고 했다.  
 
유언대용 신탁은 구체적인 유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금융사가 신탁자의 재산을 맡아 집행하기 때문이다. 앞선 사례 속 김씨도 외손녀에게 재산이 안전하게 상속될 수 있도록 설계할 수 있다. 손녀에게 매년 학비 등을 제공하다 서른살이 되면 신탁 계약을 해지해 재산을 물려준다는 식의 조항을 넣으면 된다. 
 
원종훈 KB국민은행 WM투자자문 부장은 “요즘 자산가들은 자녀가 상속재산에 기대 안일해지지 않게 학업이나 취업 등 성과 달성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주는 경우가 많다”며 “한마디로 유언대용 신탁을 통해 피상속인 의지대로 유언을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자녀 거쳐 손자까지 '대물림' 상속 설계 

[사진 Pxhere]

[사진 Pxhere]

유언장과 달리 ‘세대 연속’ 상속도 가능하다. 유언장은 최초 상속인만 지정할 수 있지만 유언대용 신탁은 피상속인 사망 이후에도 유산이 자녀를 거쳐 손자에게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자녀에게 매달 300만~400만원씩 생활비를 지급하다 손자가 성년이 되면 신탁 계약을 해지하고 손자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방식이다.
 
그뿐만 아니다. 유언대용 신탁은 오래 살 것을 대비한 자산 관리에도 유용하다.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 등으로 갑자기 건강이 나빠질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치매에 걸리면 본인을 돌보는 것은 물론 자녀끼리 재산 다툼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배 센터장은 “나이 들어 건강이 나빠졌을 때도 매달 병원비를 포함한 생활비가 나오도록 하고, 사망한 뒤 남은 재산을 자녀에게 골고루 나눠준다고 설계하면 노후 걱정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유언대용 신탁은 편리하지만, 비용 부담이 따른다. 수수료는 재산 규모와 관리 방식에 따라 차이는 있다. 금융 자산은 맡긴 금액의 연 0.2~1%를 떼간다. 상가나 오피스텔 등 부동산을 신탁으로 맡기면 연 300만~400만원 수준의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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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지현 염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