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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양살이 설경구·이정은 로맨스…'자산어보' 어디까지 실화?

중앙일보 2021.04.10 13:00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선 흑산도에 귀양 온 정약전(설경구)이 그를 살뜰히 살펴주는 여인 가거댁(이정은)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는 내용이 나온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스토리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선 흑산도에 귀양 온 정약전(설경구)이 그를 살뜰히 살펴주는 여인 가거댁(이정은)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얻는 내용이 나온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한 스토리다. [사진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200년 전 서해 흑산도에 귀양살이 간 실학자 정약전(1758∼1816)과 그의 벗이 된 섬 청년 창대의 삶을 수묵화처럼 그려낸 흑백영화 ‘자산어보’. 지난달 31일 극장 개봉한 이 영화는 ‘사극 장인’ 이준익 감독이 수년간 고증‧연구한 사료들을 탁월한 영상미로 담아냈다. 흑산도 풍광에 빠져든 관객이라도 영화가 끝날 즈음 이 같은 드라마가 실제 역사와 얼마나 부합하나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정약전의 어류학서 『자산어보』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현산어보를 찾아서 1~5』(청어람미디어)’를 펴낸 이태원 세화고 생물학교사의 도움말을 통해 영화 속 사실과 허구를 알아보자.

영화 ‘자산어보’ 속 사실과 허구 알아보니

 
정약전(설경구)과 가거댁(이정은)의 로맨스, 실화인가?
=영화에선 서학(천주교) 죄인으로 쫓겨온 정약전이 흑산도 여인 가거댁의 집에서 의탁하다 사랑이 싹터 자녀도 낳는 것으로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실이다. 다만 여인의 이름은 기록된 바 없다. 김훈의 소설 『흑산』에선 순매라는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정약전은 전남 신안 우이도와 흑산도 등에서 16년간 유배생활을 했고 동생 정약용(1762년~1836)과 달리 유배에서 풀려나지 못한 채 우이도에서 죽었다. 일종의 ‘첩’이었던 흑산도 여인과 그 자녀의 생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없지만 흑산도에서 계속 살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태원 교사에 따르면 이들의 관계는 정약전과 아내(평산 김씨)가 주고받은 편지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정약전이 귀양 살 동안 아들 학초가 병으로 사망하자 아내는 양자를 들이길 희망했다. “당신은 그곳에서 첩을 두고 자식까지 낳았는데 나는 자식도 없이 어떻게 사느냐”라는 항변이었다. 애초에 법도 등을 이유로 반대했던 약전‧약용 형제는 결국 뜻을 굽혔고 아내는 친척 아이를 양자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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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첩을 얻다니, ‘무늬만 귀양살이’ 아닌가.
=조선시대 유배는 사형 다음의 중형이었고 기본적으로 종신형이었다. 한양(서울)에서 멀수록 중죄인을 보냈는데 흑산도는 1급 수형지에 해당했다. 내륙에서 살던 선비가 환경이 척박한 바닷가 생활이 익숙할 리 없었고 먹고 살기 힘든 섬 주민들로선 죄인을 떠맡는 게 탐탁치 않았다. 흑산에서 “죄인을 더 이상 보내지 말라”는 상소가 올라올 정도였다. 이 교사는 “정약전 뿐 아니라 많은 유배인들이 현지에서 여자를 얻어 생활했다. 먹고 사는 걸 의탁하면서 마을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에도 나온, 정약전이 차린 서당 복성재(復性齋)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요즘 흑산도 사리마을에 가면 복성재를 복원한 ‘유배문화공간’이 조성돼 있다.
 
『자산어보』 집필을 도운 창대는 실제로 과거에 합격했나?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서 조선 학자 정약전(설경구)이 동명의 바다 생물 도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흑산도 청년 어부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서 조선 학자 정약전(설경구)이 동명의 바다 생물 도감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흑산도 청년 어부 창대를 연기한 변요한.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자산어보』 서문엔 창대를 가리켜 ‘어려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였으나 집안이 가난하여 책이 많지 않았다’고 소개하면서 그의 도움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전한다. 영화에선 창대가 어부이고 양반의 핏줄인 ‘상놈’으로 나오지만 실제 신분은 명확치 않다. 이태원 교사는 “책을 즐겨 읽은 걸로 봐서 어부라고 보긴 힘들고 해양생물에 해박했던 평민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현산어보를 찾아서』를 집필하면서 흑산도에서 창대 가계를 추적했고, 인동 장씨 족보를 소장한 어부 장복연씨를 통해 장창대(장덕순)의 실제 계보를 확인했다. 족보에 따르면 창대는 1792년생으로 정약전이 흑산도에 머물렀던 시기로 유추할 때 정약전과 만날 당시 16~23세 정도로 추정된다. 집안에서 전해지는 얘기로 하룻밤에 사서삼경을 다 외울 정도로 총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과거에 합격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집안 얘기론 창대가 어느 순간 총기를 잃고 편지도 남의 손으로 빌려 쓸 정도가 됐다고 한다. 이와 관련, 이 교사는 정약전이 남긴 『자산어보』에 주석을 붙인 제자 이청의 예를 들었다. 아전 아들이었던 이청은 공부를 계속하며 과거를 봤지만 끝내 합격하지 못하고 예순 넘어서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이 교사는 “평민인 창대보다 이청이 나은 상황이었는데도 벼슬길에 못 나갔으니 당시 과거제도가 일부에게 제한된 등용문이었단 얘기”라고 풀었다.
 
영화에서 변요한이 잡은, 사람 몸집만한 돗돔은 실제인가?
= 돗돔은 『자산어보』 첫머리에 ‘대면(큰 민어)’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이 교사는 실증을 통해 이 어류가 돗돔이라고 밝혀냈다. 돗돔은 대형일 경우 길이가 2m 남짓하고 무게가 300㎏에 이르기도 한다. 우리나라 연안에 살고 있는 물고기 중에 독보적인 크기다. 연한 복숭아빛을 띤 두툼한 살집이 담백한 데다 비린내도 거의 나지 않아 회나 구이감으로 최상급이라고 한다. 다만 1년에 몇 마리 잡히지 않는 희귀 어종이다. 영화에서처럼 상어 낚시 중에 잡히는 것도 맞다. 다만 창대가 상어를 미끼처럼 쓰지만, 실제론 낚시에 걸려 옴쭉달싹못하는 상어를 먹으려던 돗돔이 상어 등지느러미 쪽 가시에 걸려 덩달아 잡히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이 교사는 “나아가 영화에선 돗돔 미끼로 철갑상어를 썼는데, 철갑상어는 이름과 달리 상어와는 관계없고 돗돔보다 더 귀한 어종”이라며 “영화제작팀에서 오해한 것 같다”고 웃었다.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서 사람 몸집만한 돗돔을 잡아서 나타난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실제 돗돔은 국내 연안에 사는 물고기 중에 독보적인 크기로 1년에 몇마리 잡히지 않는 희귀 어종이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에서 사람 몸집만한 돗돔을 잡아서 나타난 청년 어부 창대(변요한). 실제 돗돔은 국내 연안에 사는 물고기 중에 독보적인 크기로 1년에 몇마리 잡히지 않는 희귀 어종이다. [사진 메가박스중앙 플러스엠]

 
영화 속 어류 묘사 중에 또 다른 ‘옥에 티’가 있다면?
= 정약전과 창대가 짱뚱어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눈(目)’이 ‘볼록(凸)’하게 튀어나왔으니 ‘철목어(凸目漁)’라고 이름 짓는 장면이 있다. 이 때 짱뚱어가 넓고 깨끗한 모래밭에 등장하는데, 실은 기름진 뻘밭에서 먹이를 구하는 어종이다. 게다가 파도가 세고 암벽으로 된 해안선을 가진 흑산도에선 짱뚱어가 서식하기 적합하지 않아 좀처럼 만나기 힘들다. 또, 정약전이 말미잘을 막대기로 누르다 말미잘이 뿜어낸 물줄기에 얼굴이 젖는 에피소드에선 바닥에 놓인 말미잘이 뒤집어져 있는 상태다. 이 교사는 “말미잘은 입과 항문의 구별이 없는 강장동물이라서 촉수 사이에 있는 입구로만 물을 뿜어낼 수 있는데, 영화에선 반대편에서 물줄기가 나오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영화 자문위원을 맡아 이준익 감독 사무실에 방문했을 때 빼곡한 자료에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여서 열성적으로 연구한 걸 봤다”면서 “기본적으론 탄탄한 사료 위에 흥미로운 상상력을 덧붙인 좋은 영화”라고 평했다.
 

'미스터 션샤인' 함안댁 못지 않은 새 흑백 사극 영화 '자산어보'(감독 이준익) 가거댁의 매력. 9일 공개된 팟캐스트 '배우 언니'(https://news.joins.com/Jpod/Channel/7)에서 배우 이정은의 사랑꾼 기질을 집중 조명했다. [사진 배우 언니]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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