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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하지 않은 색감·질감 조합, 미래의 빈티지 추구

중앙선데이 2021.04.10 00:20 731호 18면 지면보기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 레지나 표.

한국인 패션 디자이너 레지나 표.

H&M 그룹의 여성복 브랜드 앤아더스토리즈(& other stories)가 런던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디자이너 레지나 표(Rejina Pyo·표지영·37)와 협업한 ‘코랩(Co-Lab) 컬렉션’을 15일 공개한다. 2014년 시작된 코랩 컬렉션은 전 세계 주목할 만한 라이징 스타들과의 협업이 특징이다. 2016년 파리 패션 디자이너 로다르테, 2017년 미국 시각 예술가 킴 고든 등과 작업했고 한국인으로는 레지나 표가 처음이다.
 

패션 디자이너 레지나 표
‘앤아더스토리즈’ 협업 13일 공개
우아한 스타일에 장난기 반전
“덜 사되 더 좋은 옷 사는 게 중요
여성스러움 축하하는 옷 만들고파”

홍익대 섬유디자인학과를 졸업한 레지나 표는 국내 패션 회사에서 일하다 런던의 유명 패션학교 세인트 마틴으로 유학을 떠났다. 2014년 세례명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고, 이듬해 LVMH 선정 ‘톱 50 디자이너’로 꼽히면서 차세대 주자로 이름을 알렸다.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연속 2회 선정, 2019년 영국패션협회 ‘런던 패션 어워즈’ 여성복 신인상을 수상했다.
 
서울 명동에서 의상실 디자이너로 일했던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스케치를 따라 그리고 원단을 오리며 놀이처럼 옷을 만들었던 그이기에 컬러와 소재 선택부터 남다르다. 앤아더스토리즈에서 브랜드·크리에이티브를 총괄하는 로키 에킨스탐 아프 브렌니케는 “레지나 표는 색감과 질감에 대한 독보적인 센스로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을 만들어낸다”며 “모든 옷에서 많은 생각과 노력이 느껴진다”고 협업 파트너 선정 이유를 밝혔다. 다음은 레지나 표와 서면으로 진행한 일문일답.
  
여성 잠수부·채집가 등에게서 영감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스웨덴 유일의 잠수부 로타 클레밍스.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스웨덴 유일의 잠수부 로타 클레밍스.

‘동시대 여성의 스타일을 잘 표현한 디자인’이라는 평가가 많다.
“대부분의 여성은 값비싼 옷보다 실용적이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옷을 원한다. 또 입을 때마다 특별함, 즐거움, 당당함을 느끼길 원한다. 이런 바람들을 만족시키는 동시에 여성이 여성스러움을 축하할 수 있는 옷을 만들려고 한다.”
 
‘레지나 표’ 디자인의 키워드는 뭔가.
“무심한 듯 우아한 스타일에 더해진 장난기 가득한 반전이다. 나는 뻔하지 않은 색감과 질감의 조합을 좋아한다. 대담한 컬러, 강렬하면서도 아름다운 실루엣, 유니크한 프린트, 특별한 디테일의 버튼 장식 등을 통해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미래의 빈티지(시간이 지날수록 돋보이는)’를 추구하는 나의 패션 철학이기도 하다.”
 
그의 옷은 현실적이다.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으면서 신체 변화를 실감했다”는 그는 일·육아·살림의 1인 3역을 하면서도 옷 잘 입는 여성이고 싶은 현대 여성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런던패션위크 쇼 때 각각 다른 체형의 일반인 모델을 등장시킨 것도 같은 이유다. 이번 코랩 컬렉션을 준비하면서도 잠수부·채집가·플로리스트 등으로 활동 중인 일반 여성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일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야생 식재료 채집가 포피 오코챠(회색 반바지 슈트)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일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야생 식재료 채집가 포피 오코챠(회색 반바지 슈트)

협업 디자인을 고민하면서 잠수부·채집가·플로리스트의 삶을 조명한 이유는.
“그들의 강인함과 창의성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로타 클레밍스는 스웨덴 유일의 여성 굴 채취 잠수부로 그녀의 강인함과 자연과 깊이 하나 되는 삶에서 큰 인상을 받았다. 브리타니 애쉬는 LA에서 활동하는 플로리스트인데 상상을 초월하는 독창적인 컬러와 사용 방식이 감명 깊었다. 포피 오코챠는 야생 식재료 채집가로 작은 보트에 살며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 모델로 활동한 적도 있는 그녀의 유기농 재배 기법과 지속 가능한 삶, 그리고 패션에 대한 열정에 동질감을 느꼈다.”
 
‘지속가능한 패션’이 업계의 화두다.
“아들을 임신했을 때 다음 세대에 남겨줄 세상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이후 디자이너로서 무엇을 만들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세상에 끼칠 영향력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쇼를 기획할 때도 10분 뒤면 철거돼야 할 임시 세트 대신 공간의 개성을 살려 활용할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려는 이유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앤아더스토리즈의 핵심 철학이기도 하다. 때문에 코랩 컬렉션 디자인 단계부터 오가닉 코튼, RWS(책임 있는 울 표준) 등을 사용해 오랫동안 잘 입을 수 있는 옷장 속 보물을 만들 수 있었다.”
 
소비자가 지속가능한 패션을 위해 평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덜 사되 더 좋은 걸 살 필요가 있다. 구매에 앞서 충분히 생각하고, 구매 후에는 아주 오랫동안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일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플로리스트 브리타니 애쉬(오렌지 원피스).

앤아더스토리즈와 협업한 ‘코랩 컬렉션’은 색다른 영역에서 맹활약 중인 일반 여성들과 광고 화보를 찍었다. 플로리스트 브리타니 애쉬(오렌지 원피스).

유학 이후 줄곧 런던에 살고 있지만 일을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한국적인 정서가 자연스레 반영되고 있다. 매건 마클이 들면서 유명해진 ‘나네 백’, 셰프이자 푸드 라이터인 남편 조던 버크와 함께 출간한 책 『우리의 한식 부엌』이 대표적이다.
 
‘나네 백’은 한국의 보자기를 연상시킨다.
“디자인할 때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빅토리아 앤 앨버트 뮤지엄에서 가방 전시회를 기획한다고 연락이 오면서 연관성을 깨달았다. 이처럼 나의 컬렉션에는 유년 시절과 한국 문화에서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받은 우연들로 가득하다.”
  
영국인 남편과 『우리의 한식 부엌』 출간도
 
‘레지나 표’ 2021년 봄여름 옷. ‘나네 백’은 한국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 앤아더스토리즈, 레지나 표]

‘레지나 표’ 2021년 봄여름 옷. ‘나네 백’은 한국 보자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사진 앤아더스토리즈, 레지나 표]

『우리의 한식 부엌』을 출간한 계기는.
“남편이 런던의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피터셤 너서리스’에서 일할 때 처음 만났다. 당시 그의 한식 경험은 김치·비빔밥 정도였는데, 나를 통해 다양한 한국 요리를 접하면서 한식에 푹 빠졌다. 한국에 가서 한식 셰프들에게 직접 요리를 배워와 런던에서 몇 차례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도 했는데 모두 매진되며 성황을 이뤘다. 이후 자연스럽게 한국 요리책을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2016년 영국 가디언이 뽑은 ‘올해의 책’에 올랐고, ‘포트넘 앤 메이슨’ 상과 ‘OFM 베스트 요리책 어워드’도 수상했다. 다국어로 번역됐는데 세계 각지에 살고 있는 한국 출신 입양아들이 ‘이 책을 통해 한국의 뿌리를 느끼게 됐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한다.”
 
레지나 표와 남편 조던 버크.

레지나 표와 남편 조던 버크.

집에서도 자주 한식을 요리하나.
“부담감을 갖고 요리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손님 초대 식사는 남편에게 맡기지만(웃음), 가족을 위해선 어릴 적 많이 먹었던 들깨수제비, 떡만두국 요리를 자주 한다. 나도 남편도 아들 루카에게 한국 음식과 문화를 가르치는 것을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이와 말할 때도 한국어만 쓰기 때문에 루카는 한국어와 영어를 완벽히 구사할 수 있다. 아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은 만두·김밥·수제비·전이다.”
 
한국 문화가 전 세계인에게 다가가려면.
“내가 처음 런던에 왔을 때만 해도 한식은 대중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지위가 달라졌다. 외국인 셰프들도 한국의 다양한 ‘장’과 발효 기법을 요리에 응용하고 있다. ‘기생충’ ‘미나리’ 같은 영화를 비롯해 K드라마, K팝의 세계적 인기 또한 한국 음식과 문화 인지도를 높이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좀 더 끈기를 갖고 다양한 문화 채널을 통해 한국의 멋진 문화를 지속적으로 선보인다면 더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서정민 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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