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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감세 미국의 불평등, 레이건이 불 댕겨

중앙선데이 2021.04.10 00:20 731호 20면 지면보기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

최상위 91%였던 소득세율
88년 여·야 합의 28%로

저커버그 소득세율 0% 가까워
노동자가 절대 불리한 사회

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
노정태 옮김
부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참패한 원인을 두고 여러 각도의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세금 문제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따른 공시지가의 급격한 인상으로 재산세 등 관련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유권자들이 분노의 표를 행사하는 대열에 대거 참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어찌 보면 정치의 요체는 ‘세금’일지도 모르겠다. 큰 정부니, 작은 정부니 또는 좌파니 우파니 하는 것도 세금을 걷고 집행하는 방법과 규모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국가에서 특히 선거 때마다 세금을 두고 치열한 공방이 벌어진다.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는 최상위 수퍼리치들이 노동계급보다 사실상 세금을 덜 내는 미국의 불공정한 현실을 고발한다. 우리와는 조세제도가 많이 달라 수평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문제와 해법을 심도 있게 고민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1년 미국 고소득층의 도덕적 해이에 반발해 거리로 나온 월가 점령 시위대. 미국의 부자 감세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AFP=연합뉴스]

2011년 미국 고소득층의 도덕적 해이에 반발해 거리로 나온 월가 점령 시위대. 미국의 부자 감세는 1980년대에 시작됐다. [AFP=연합뉴스]

1951년부터 1963년까지 미국 최상위 구간의 소득세율은 ‘압류나 다를 바 없는’ 91%에 달했다. 극단적으로 높은 세율은 비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최상위층의 소득을 억제해 불평등을 줄여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정부 시절인 1988년 이 세율은 28%로 뚝 떨어졌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민간 영역의 이윤 극대화에서 나오기에 세율을 최소화하고 정부의 주된 역할은 소유권을 옹호하는 데 그쳐야 한다는 이른바 ‘작은 정부론’이 힘을 얻던 시기였다. 집권 공화당은 물론 야당인 민주당까지 가세해 압도적인 다수로 세법 개정을 통과시킨 결과다. 지은이들은 이 과정을 미국 누진세의 종말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고 봤다.
 
미국 국민은 현재 평균적으로 소득의 28%를 연방세, 주(州)세, 지방세 등 각종 세금으로 내고 있다. 매년 1만8500달러를 벌고 소득 하위 50%를 차지하는 노동계급은 소득의 25%를, 상위 10% 계층은 28%를 세금으로 내지만 정작 최상위 400명은 23%밖에 내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소득 최고 계층에 누진세가 아니라 역진세가 적용되는 것이다. 트럼프 일가, 페이스북(페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와 그 가족,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집안사람들이 여기에 속할 텐데 이들은 평범한 철강노동자나 교사 같은 이들보다 낮은 세율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저커버그는 페북 주식 20%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페북은 200억 달러의 이익을 냈는데 저커버그는 40억 달러의 소득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페북은 배당을 전혀 하지 않은 관계로 저커버그의 경우 단 한 푼도 소득세 과세 대상에 잡히지 않았다. 다른 억만장자들과 마찬가지로 저커버그의 실질적 개인소득세율은 0%에 근접할 것이다. 케이먼제도로 법인을 돌려놓은 페북은 법인세조차 내지 않아도 됐다. 2008년 이래 매년 40%씩 재산을 증식해 현재 재산 규모가 600억 달러에 달하는 억만장자가 완전히 합법적으로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것이 과연 있을 법한 일인가.
 
세계화와 조세회피가 대단한 노하우가 되고 있는 시대에 법인세가 12.5%밖에 되지 않는 아일랜드를 애플이나 구글이 외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뿐 아니라 화이자, 씨티그룹, 나이키, 피아트, 케링 같은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조세회피에 동참하고 있다고 이 책은 고발한다.
 
2018년 트럼프는 미국의 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내렸다. 기업들을 독려해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묘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세정의를 외면한 처사라는 비판도 뒤따랐다. 법인세 인하로 부자들은 어렵지 않게 법인을 만들어 그 뒤에 숨어 소득의 큰 부분을 아낄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이 노동과 자본에 골고루 세금을 부과했던 제도에서 이탈해 근로소득보다 자본소득에 더 우호적인 시스템을 만들면서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고 불평등한 사회가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법인세율, 소득세율 인상 등 증세와 재산세 폭탄이 문제가 되고 있는 한국에선 조세정의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풍부한 조세 관련 데이터, 더욱 정교한 논리와 설득력으로 무장한 한국판 『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의 출판을 기다려 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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