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트코인 ‘김치 프리미엄’ 10~20%로 치솟아 거품 우려

중앙선데이 2021.04.10 00:02 731호 15면 지면보기
7800만원대까지 오른 비트코인 가격이 서울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표시됐다. [연합뉴스]

7800만원대까지 오른 비트코인 가격이 서울 업비트 라운지 전광판에 표시됐다. [연합뉴스]

암호화폐 비트코인에 1억원가량을 투자한 조모(42)씨는 지난 한 주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조씨는 이 경험에 대해 “한마디로 황당했다”고 말했다. 그의 황당함은 단순히 국내 비트코인 가격이 5일 1비트코인당 7877만원(업비트(암호화폐 거래소) 종가 기준)의 사상 최고가를 찍었다가, 불과 이틀 만인 7일 장중 10% 넘게 빠지면서 7000만원대 밑으로 내려간 데서만 비롯된 건 아니었다. 조씨는 “같은 기간 해외 거래소의 비트코인 가격은 6600만원에서 6300만원으로 떨어져 사실상 횡보세였다”며 “한국에서만 유독 변동성이 심했던 것”이라고 울분을 터뜨렸다.  
 

한국서 해외보다 비싸게 거래
안정권 3~8% 넘어 변동성 심해
천당과 지옥 오간 투자자 “황당”

가격 뛰자 ‘신중파’들 대거 투자
박스피 영향 증시서 자금 이동
중국 자본도 규제 피해 유입돼

실제로 해외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종가 기준 사상 최고 비트코인 가격은 지난달 13일의 6965만원이다. 국내 사상 최고가보다 1000만원 가까이 낮은 데다, 시점부터 전혀 달랐다. 비트파이넥스와 크라켄 등 다른 해외 거래소의 경우도 비슷했다. 한 달 사이 국내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에 거품이 유독 많이 끼어 있었다는 얘기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다. 예컨대 김치 프리미엄이 10%라면 해외 시세보다 국내에서 10% 비싸게 거래된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당황하게 만든 급격한 시세 변동도 이 같은 김치 프리미엄에서 비롯됐다. 석모(35)씨는 “10%나 비싸게 사면 손해 보는 기분일 것 같지만 매수세에 한창 탄력이 붙은 채로 시장이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면 속된 말로 눈이 돌아간다”며 “나만 관망하다간 큰 수익을 올릴 기회를 놓친다는 생각에 추매(추가 매수)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쌓인 김치 프리미엄은 지난주 한때 20%에 달했다. 통상 업계에서 보는 안정권인 3~8%를 크게 넘어선 것이다. 그나마 역사적인 수준까지는 안 갔다. 국내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처음 300만원을 돌파했던 2017년 5월엔 김치 프리미엄이 무려 63%까지 치솟았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지난해부터 비트코인 가격이 치솟는 중에도 안정권을 이탈하지 않던 김치 프리미엄이 최근 한 달 동안 급격히 오른 배경은 뭘까. 크게 네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이전까지만 해도 긴가민가하던 ‘신중파’들이 대거 거래에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지난달 초 미국의 1조9000억 달러(약 2125조원) 규모 경기 부양책 통과 소식이 이들을 자극했다. 1월만 해도 약 119만명이었던 업비트 앱 이용자 수는 2월 204만명, 지난달 320만명으로 급증했다. 다른 거래소 빗썸의 신규 회원도 기존보다 1~3월 평균 78%씩 급증했다.  
 
그 사이 국내 증시 등 다른 투자처가 지지부진했던 데 따른 반사이익도 작용했다. 연초 코스피 지수는 사상 첫 3000포인트대를 넘어서면서 기대를 모았지만 이후 외국인의 차익 실현 매물 범람, ‘큰손’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역대 최장(51거래일 연속) 순매도 행진 등으로 3200선을 넘지 못하고 석 달째 2900~3100대 박스권에 갇혔다. 이에 지난달 하루 평균 암호화폐 거래액은 18조7000억원가량으로 같은 기간 개인 투자자의 일평균 코스피 거래액(약 15조1300억원)보다 3조원 이상 많았다. 또 지난해 고공비행하면서 서학개미 투자 열풍을 일으켰던 미국 증시마저 주춤하다. 나스닥은 2월 중순에 사상 최고치를 찍고서 한 달 넘게 횡보 중이다.
 
이런 표면적인 원인 외에, 일각에선 두 가지를 더 제기한다. 하나는 이웃 나라 중국의 대규모 자본이 중국 정부의 고강도 규제 리스크를 피해 한국 거래소로 이동하면서 김치 프리미엄이 심화됐다는 시각이다. 익명을 원한 업계 관계자는 “2018년 초에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전면 폐지 등 규제 방침을 발표하면서 국내 자본이 해외 거래소로 빠져나간다는 분석이 많았고 실제 움직임도 잇따랐다”며 “비슷한 이치로 중국 자본이 현재 국내에 많이 유입된 걸로 보인다”고 전했다. 국내 거래소들은 외국인의 가입과 이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일부는 국내 미거주 외국인도 가입 후 여권 인증 절차만 거치면 거래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민감한 세금 문제가 선반영되고 있다는 시각이다. 내년부터 국내 거래소를 통해 암호화폐를 거래하는 국민 모두 연 250만원 이상 수익을 내면 이를 제외한 금액에서 22%(지방세 2% 포함)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암호화폐 시장의 큰손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매매 가격을 조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문성 한국조세정책학회장은 “국내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법인 투자가 최근 늘면서 가격 오름폭도 커지고 있다”며 “이들 법인은 법인세 과세 대상이라 10년간 이월 결손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김치 프리미엄이 심할수록 가뜩이나 변동성과 불확실성이 큰 암호화폐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표류하기도 쉽다는 점이다. 해외 시장이 조금만 휘청거려도 이번처럼 훨씬 큰 하락 폭에 직면할 수 있어서다. 블록체인 분석 업체 크립토퀀트의 주기영 대표는 “세계 암호화폐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해 (김치 프리미엄이) 글로벌 시세엔 별 영향을 못 미칠 것”이라면서도 “이더리움 등 알트코인(비트코인을 제외한 모든 암호화폐)까지 국내 시세만 너무 높아진 지금의 거품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의 자정 외엔 마땅한 해결책도 없는 상황이다. 외국환거래법상 해외에 유통 중인 비트코인을 국내로 대량 들여와 공급량을 늘리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김치 프리미엄 수준을 상시 확인하면서, 본인이 정한 적정선을 넘으면 빠르게 매도하는 식으로 리스크를 줄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