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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고난의 행군" 고립선언…文 '평화구상' 답이 안보인다

중앙일보 2021.04.09 18:05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를 통해 '고난의 행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경제난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외부 지원에 기대기보단 '허리 조이기'를 바탕으로 자력갱생에 대한 의지를 다진 셈이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당 세포비서대회 폐회사를 통해 '고난의 행군'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경제난이 극심해진 상황에서 외부 지원에 기대기보단 '허리 조이기'를 바탕으로 자력갱생에 대한 의지를 다진 셈이다. [연합뉴스]

북한이 수백만명의 아사로 이어진 19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까지 꺼내들며 사실상의 자발적 고립을 선언했다. 
9일 조선중앙통신 보도에 따르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8일 당의 최말단 책임자들이 모인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며 내부기강 잡기에 나섰다. 수해와 대북제재에 더해 코로나19까지 겹치며 경제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외부 지원이 아닌 자력갱생으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김정은 '고난의 행군' 선언
"어디에 기대 걸거나 바라볼 것 없다"
고립 택한 北, 갈길 먼 남북대화
文 대북정책 '빈 손'으로 끝나나

 
김 위원장의 의지는 “그 어떤 우연적인 기회가 생길 것을 절대로 믿지 않는다. 그 어디에 기대를 걸거나 바라볼 것도 없다”는 입장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르면 4월 중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이나 남북 협력에 대한 기대감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발언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차덕철 통일부 부대변인은 9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지난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과업 관철에 대한 의지를 독려하고 강조하는 차원”이라며 “이런 내부적인 흐름과 노력들이 대외나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의 이같은 태도가 한국의 대북정책 기조인 인도적 지원 강화과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 노력과 불협화음을 낼 것이란 점이다. 임기를 1년여 남기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을 목표로 설정한 문재인 정부 입장에선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기조차 쉽지 않은 악조건에 놓이게 됐다.
 

악재만 쌓이는데 통일부 "한반도 정세 새 국면"  

지난 8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 [뉴스1]

지난 8일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 [뉴스1]

북한의 이같은 기조는 사실 지난 6일 도쿄올림픽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때부터 예견된 수순이었다. 북한은 코로나19 상황과 관련한 선수 보호를 올림픽 불참 사유로 언급했지만, 그 이면엔 도쿄올림픽에 참가해봤자 정치·외교적 실익이 없을 것이란 고려가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정부는 여전히 희망적 사고를 바탕으로 대북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 “한반도 정세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며 “북한이 그동안의 관망 기조를 벗어나 정세 탐색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발언한 것 역시 최근 북한의 움직임과 상반된다는 지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간 수차례에 걸쳐 ‘한반도 비핵화’가 대북 정책의 확고한 목표라고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7일 “북한에 대한 일정한 형태의 외교를 준비하고 있다”면서도 북한이 비핵화로 향하는 수순이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미국을 향해 먼저 움직이라며 ‘강대강 대치’를 선언한 북한에 원칙으로 맞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한국이 기대했던 ‘북미대화 조기 재개’를 통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 역시 공염불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마음 급한 文, 원칙 강조하는 바이든

문재인 정부에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지만 북핵 문제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력 강화에 나서며 '한반도 비핵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에선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남북미 판문점 회동 등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지만 북핵 문제는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은 핵무력 강화에 나서며 '한반도 비핵화'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출범 4개월 차에 접어든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과의 협상 국면에서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지만 임기 5년차의 문재인 정부에는 남은 시간이 길지 않다는 점 역시 남북관계의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이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북·미 정상회담과 판문점 남북미 회동 등의 역사적 만남을 중재하고도 결과적으론 북핵 문제에 있어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임기 종료를 맞이할 수 있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다급함에도 바이든 행정부는 실무 협상에 기반한 단계적 비핵화와 이에 따른 단계적 제재 완화 기조를 강조하며 장기적 안목에서 원칙에 따라 북한 문제를 다루려는 분위기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재가동의 첫 걸림돌은 북핵 문제를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미국과 단기간 내에 성과를 도출하려는 한국의 ‘대북 접근 시간표’가 다르다는 점”이라며 “특히 한국 정부가 '우리가 양보하고 선의로 다가가면 북한이 이에 응해줄 것'이라는 대북정책의 대전제 자체를 재점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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