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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선 완패에도 '플랜'이 없다···"노무현과 다른 文 샌님 정치"

중앙일보 2021.04.09 16:59

“배는 가라앉는데 선장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9일 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현재 상황을 침몰하는 배에 비유했다. 세월호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런 비유법은 문재인 정부에선 금기(禁忌)에 해당된다. 선거 참패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을 지켜본 이 관계자는 “선거 패배 자체보다 민심을 확인하고도 손을 놓고 있는 게 더 문제”라며 “변화 의지도, 계획도, 사람도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 중앙포토

◇"의지가 없다"

 
문 대통령은 선거 다음날인 8일 “낮은 자세로 보다 무거운 책임감으로 국정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떻게 위기를 돌파할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야당에서 '사죄 코스프레'라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또 문 대통령은 입장문에서 "코로나 극복, 경제 회복과 민생 안정, 부동산 부패 청산 등 국민의 절실한 요구를 실현하는 데 매진하겠다"며 늘 말해온 내용을 또 반복해 언급했다. 선거 전과 선거 뒤가 달라진 게 없다. 국정 운영 기조를 전환할 의지가 전혀 읽히지 않는다는 비판도 그래서 나온다.        
 
익명을 원한 여권 관계자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책기조는 대통령이 방향타를 틀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며 “여당이 174석을 확보하고 있지만, 여론이 돌아선 상태에서 어떤 법안도 강행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폭풍우속에서 기존의 기조를 고집하는 것은 다 같이 죽자는 말과 같다”고 했다.  
 
민주당에선 “제대로 된 인식이 있었다면 하루이틀 안에 최소 쇄신용 개각이라도 발표됐어야 했다”,“시간만 보내고 있다는 것은 준비가 없었다는 뜻이고, 결국 변화 의지 자체가 없었음을 시인한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실제로 쇄신의 시발점이 될 개각의 시기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개각은 정세균 국무총리의 사퇴와 맞물려 이뤄질 가능성이 큰 데, 정 총리 주변에선 “즉각 사의 표명을 하려고 했지만, 11~13일 순방 때문에 무산됐고, 19~21일 대정부질문까지 잡히며 더 미뤄질 것 같다”는 말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9일 경남 사천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고정익동에서 열린 한국형전투기 보라매(KF-21) 시제기 출고식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플랜이 없다"

 
선거 참패로부터 이틀이 지난 9일에도 청와대는 조용했다. 지도부가 총 사퇴한 여권에선 "대통령이 길을 제시하지 않는데 당이 어떻게 움직이느냐"는 말이 나왔다.
 
과거 정권들은 위기와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국면에서 뭔가 돌파구를 만들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엔 2005년 재·보선 패배로 여당의 과반 의석이 무너지자 야당에 내각 구성권을 주는 내용의 '대연정' 카드를 꺼냈다. 임기 말에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기존의 기조를 뒤집는 결정에 여권에서도 반발이 나왔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진영내 반발을 진압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 및 여야정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건배를 하고 있다.

청와대에서 열린 국회 및 여야정당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건배를 하고 있다.

반면 선거에 참패한 뒤 나온 문 대통령의 지시는 기존의 일을 더 열심히 하자는 사실상의 '마이웨이 선언'이 전부였다.
 
또 다른 인사는 “2030의 이탈이 문제였다면 40대 총리론을 꺼내든, 부동산 정책이 문제였다면 실기를 인정하고 완전한 방향전환이라도 선언했어야 했다”며 “그런데 청와대는 아직 컨셉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부에서는 ‘이번 패배가 대선의 약이 될 것’이라는 말만 나오는데, 이대로 조용히 넘어갔다가는 내년엔 조용히 정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안병진 경희대 교수는 “비록 실패했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연정 등 레임덕을 돌파해보려는 시도라도 했다”며 “반면 문 대통령은 바꾸려하지 않는다. 고집만 부린다. 비유하면 ‘샌님 정치’에 가깝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람이 없다"

  
청와대 안팎에선 차기 총리 인선과 관련해 "사람이 없다"는 푸념이 나온다.
 
현재 통합형으로는 김부겸 전 행정안전부 장관, 원혜영 전 의원, 박지원 국장원장 등이 거론된다.  또 경제 전문가로는 김영주 전 산업자원부 장관과 홍남기 현 경제부총리가 하마평에 올랐다. 여성 총리로는 김영란 전 대법관, 유은혜 사회부총리, 이미경 전 의원의 발탁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거론된 인사들을 두고는 "선거 참패 전이나 참패 이후나 후보들의 면면이 바뀐 게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기 진영 사람이 아닌 파격적인 인재 발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현재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접근법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하마평에 오른 인사 중에서도 본인이 완강하게 사양하는 사례가 있다”며 “변화에 대한 확신 없이 임기말 정부에 누가 승선하려고 하겠느냐”고 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등 지도부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등 지도부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4.7 재보궐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를 발표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책임이 없다"

  
선거 참패가 확정된 뒤 청와대와 정부, 여당에선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모습도 연출됐다. 일부 청와대 관계자들은 선거 직후 “여당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느냐”며 당에 책임을 넘겼다. 반면 당에선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 등 참모진의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신현수 민정수석 패싱', 김상조 전 정책실장의 전셋값 인상 등 이번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악재들이 청와대발로 터졌음에도 청와대 참모들중엔 아직 사의를 표시한 이가 없다.  
 
제14회 국무회의가 30일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정부세종청사에서 화상연결 방식으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제14회 국무회의가 30일 청와대와 정부서울청사, 정부세종청사에서 화상연결 방식으로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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