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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택시기사가 女사장에 욕했다"···'양아치 현수막' 카페 무슨 일

중앙일보 2021.04.09 05:00
A씨가 지난 2월 카페 앞에 내건 '양아치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가 지난 2월 카페 앞에 내건 '양아치 현수막'.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여사장 "양아치 손님 더 활개 칠 것"

전북 전주에서 택시 기사가 카페에 혼자 있는 여사장에게 욕설을 한 사건을 수사해 온 경찰이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카페 여사장이 경찰에 이의신청을 했다. 반면 경찰은 "택시 기사가 먼저 시비를 걸고 욕은 했지만, 일부러 영업을 방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건추적]
경찰 "업무방해·협박죄 무혐의 송치"

지난 2월 전주의 한 가게 앞에 '양아치 아저씨들에게 더 이상 자비는 없다'는 현수막을 내건 카페 여사장 A씨는 지난 2일부터 6일까지 닷새간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난 1일 경찰로부터 "A씨가 업무방해와 협박 혐의로 고소한 택시 기사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고 2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는 전화를 받은 뒤였다. A씨는 "경찰이 택시 기사의 거짓말만 믿고 사건을 덮었다"고 주장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월 18일 전주 덕진경찰서에 고소장을 냈다. "택시 기사가 A씨 혼자 있는 가게에 찾아와 영업을 방해하고 욕설을 퍼부었다"면서다.
 
A씨는 해당 택시 기사를 고소하기 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삶에 대해 지킬 게 없는 채로 나이만 먹으면 저런 진상 민폐쟁이가 된다"며 사진을 올렸다. 사진 속 현수막에는 "여자 혼자 장사한다고 툭하면 와서 시비 걸고 욕하는데 더 이상 자비는 없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A씨는 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경찰이 택시 기사에게 '혐의없음' 결론을 내린 것은 가게에 그동안 지속적으로 시비 건 사람들을 가만두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성 혼자 있는 1인 매장에서 욕하고 행패를 부려도 죄가 안 된다면 '양아치' 같은 손님은 더 활개를 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 8일 전주시 팔복동에 있는 A씨 카페. '양아치 현수막'은 전날 밤 뗐다고 한다. 김준희 기자

지난 2월 8일 전주시 팔복동에 있는 A씨 카페. '양아치 현수막'은 전날 밤 뗐다고 한다. 김준희 기자

"심한 욕설…울며 1시간 장사 못해"

A씨는 지난 6일 경찰에 이의신청을 했다. 여사장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경찰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 1월 30일 오전 8시20분쯤 전주시 팔복동 A씨 카페에서 발생했다. 택시 기사가 커피를 주문한 뒤 "B씨와 박 터지게 싸웠다며?"라고 말하자 A씨가 "싸운 게 아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당한 피해자"라고 맞서면서 말다툼으로 번졌다.
 
A씨는 "택시 기사가 먼저 시비를 건 뒤 'XX 같은 X' 등 모욕적인 욕설을 내뱉어 나도 욕하며 맞대응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한 뒤 1시간 넘게 장사를 못했고, 하도 분해 이튿날 현수막을 걸었다"고 했다.
 

"동네 남성들 행패…1명 모욕죄 벌금형"

A씨는 "택시 기사가 사건 당일 계획적으로 내게 해코지를 하려고 카페에 왔다"고 주장했다. A씨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동네에 사는 B씨 등 남성 4명이 술에 취한 채 카페에 와서 A씨에게 욕하며 행패를 부렸다. A씨는 "당시 2명을 경찰에 고소했는데 B씨만 모욕죄로 벌금을 냈다고 들었다"며 "이후 B씨와 주변 사람들이 카페에 와서 괴롭혔고, B씨에게 고소 사건을 들은 택시 기사가 찾아 왔다"고 했다. 
 
A씨는 "내 진술은 일관됐지만, 택시 기사는 대질 조사 때 1차 진술을 번복하고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며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사람 말만 믿고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아울러 "사건 이후 택시 기사가 가게 근처에 주차한 것을 보고 공포를 느껴 경찰에 세 차례 알렸지만, 아무 조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전주 덕진경찰서 전경. 사진 전북경찰청

전주 덕진경찰서 전경. 사진 전북경찰청

경찰 "CCTV 확인…물리적 충돌 없어"

이에 대해 경찰은 "사건을 면밀히 살펴봤지만, 당시 모습이 찍힌 카페 폐쇄회로TV(CCTV)와 양측 진술 등을 종합했을 때 업무방해와 협박죄가 성립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CCTV 영상은 5분 분량이지만, 다툼이 발생한 건 4분가량"이라며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 택시 기사는 A씨와 계산대를 사이에 두고 가만히 서 있었다"고 했다. 그는 "업무방해죄가 성립하려면 위력(유형력)의 행사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물리적 충돌이나 기물 파손 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협박 의도 없어" VS "계획적 해코지"  

경찰은 ▶두 사람이 카페 업주와 손님 관계라는 점 ▶택시 기사가 일부러 시비를 걸려고 한 정황이 명확하지 않은 점 ▶사건 이전 택시 기사가 카페에 두세 차례 방문한 점 ▶택시 기사가 카페에 머문 시간이 길지 않은 점 ▶A씨가 컵을 던지는 등 과도하게 반응한 점 등을 감안했다고 전했다. 이에 A씨는 "택시 기사가 계속 욕을 해 무서워서 그가 주문한 테이크아웃 커피를 싱크대에 던졌다"고 반박했다.
 
택시 기사는 경찰에서 "협박할 의도가 없었고, 단지 (B씨에게) 들은 내용을 말했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판례상 단순히 감정적인 욕설 내지 일시적 분노를 표시한 것은 형사적으로 다툴 부분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판례상 감정적 욕설은 형사 대상 아냐"  

경찰은 거짓말탐지기 조사도 진행했다. 그러나 A씨는 판단 불능이 나왔고, 택시 기사는 도중에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조사를 마치지 못했다. A씨는 "조사 전 형사가 당시 택시 기사가 했던 욕설을 자세히 물어봐 너무 치욕스러운 나머지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가 거짓말했다'는 A씨 주장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택시 기사가 욕설의 세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일부 혼동이 있었지만, 당시 사실관계를 부인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택시 기사가 카페 근처에 주차했는데도 경찰이 외면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지구대에서 A씨 오전 출근 시간에 맞춰 가게 주변을 순찰했고, 계속 연락도 주고받았다"며 "택시 기사에게 가게에 가지 말라고 했고, 다시 간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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