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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 내고 못쓴 1조 있는데···연 1조대 '한·미 방위비' 또 서명

중앙일보 2021.04.08 17:20
한‧미가 8일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에 정식 서명했다. 향후 5년동안 매년 1조원이 넘는 돈을 미국 측에 건넨다. 하지만 새 협정과 별개로 이미 앞선 협정에 따라 지급한 분담금 중 1조원에 이르는 돈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방위비 분담금 제도의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오늘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문에 정식 서명했다. [외교부]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오늘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문에 정식 서명했다. [외교부]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 대사대리는 이날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방위비 분담금 협정문에 서명했다. 이르면 이달 중 국회 비준 동의를 거쳐 협정이 공식 발효된다. 앞서 한‧미는 지난달 7일 올해 방위비 분담금을 지난해에 비해 13.9% 인상하고 향후 4년동안 매년 국방비 증가율에 연동해 분담금을 올리는 데 합의했다. 

"2019년 기준 미집행 분담금 9천 989억원"
지난해 예산서 군사‧군수 분야 '약 4천억원'도 집행
"총액형의 근본적 한계...소요형 전환 논의 시급"

국방중기계획상 국방비는 매년 평균 6.1% 증가할 예정이라 이를 적용하면 협정 마지막해인 2025년에는 한국 측 분담금 총액이 1조 4896억원으로 뛸 가능성이 있다. 기존 연간 인상률의 기준은 물가상승률로 매해 2% 안팎이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특히 이번 11차 협정에서도 기존의 총액형에서 소요형으로 제도를 전환하는 데 대해서는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이 택한 총액형은 방위비의 총액부터 우선 합의한 뒤 지출 세목을 정하는 방식이고, 소요형은 지출 항목을 합쳐 방위비 총액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일본이 택하고 있다.
 
한국은 꾸준히 제도 전환을 요구해왔으나 미국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게 거액의 미집행금 문제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오늘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문에 정식 서명했다. [외교부]

최종건 외교부 1차관과 로버트 랩슨 주한미국대사 대리가 오늘 제11차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합의문에 정식 서명했다. [외교부]

국방부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0차 SMA가 만료된 2019년 12월 31일을 기준으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미집행현물 지원분은 9989억원 상당에 달한다. 2019년과 2020년에 한국이 내는 1년치 방위비 분담금 1조 389억원의 약 95% 수준이다. 이에 한 해 분담금에 육박하는 돈을 쓰지도 않고 그대로 쌓아 두면서도 정부가 새 협정에서 2002년 5차 협정 이후 최대 인상폭을 받아들였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외교가에선 이렇게 대폭 인상해줘봤자 주한미군이 어차피 다 쓰지 못할 것이란 회의적 시각까지 표출된다.
 
또 방위비 협상 공전으로 주한미군은 협정 공백 상태로 2020년을 보냈는데, 지급 근거가 되는 협정이 없어서 정부가 예산으로 별도로 집행한 돈이 있다. 주한미군 한국인 근로자들의 인건비(3144억원)과 군사건설비(3306억원), 군수지원비(1001억원)이다. 언뜻 보면 올해 지급하기로 한 지난해분 분담금 1조 389억원 중 이미 지출한 3개 항목 7451억원을 제외한 잔액만 주는 것이 맞다. 
 
하지만 정부는 이 중 인건비로 이미 지출한 3144억원만 보전받기로 했다. 정부가 군사건설 및 군수지원비로 쓴 4307억원은 주한미군 측에 이중지급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2020년 12월 국방부 세출예산운용상황에 기재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중 군사시설개선, 군수분야 항목 [국방부]

2020년 12월 국방부 세출예산운용상황에 기재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중 군사시설개선, 군수분야 항목 [국방부]

이에 국방부와 외교부는 "지난해 정부가 지출한 군사‧군수분야 지원비 약 4307억원은 과거 합의액 중 아직 집행하지 않은 미집행현물을 집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선 협정에서 주한미군에 현물로 지원하기로 합의했지만, 실제 집행되지는 않은 미집행현물 중에 지급된 것이라 이중지급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주한미군이 추진하는 군사‧군수분야 사업은 여러 해에 걸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협정이 끝나더라도 이미 진행 중인 사업에 대해서는 꾸준히 돈이 나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지급한 군사·군수분야 4307억원은 향후 한‧미 간 협의를 통해 미집행현물 9989억원에서 제할 것"이라며 "그러면 미집행도 5000억원대로 줄어들고, 이중지급이란 오해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 집행 상황에 대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측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 내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제공]

지난해 방위비 분담금 집행 상황에 대한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측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국방부의 답변 내용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 제공]

하지만 해당 연도에 예산을 다 소진하지 못하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이월된 금액만 다음 해에 쓸 수 있도록 한 정부 예산과 달리 한‧미 방위비 분담금의 경우에는 '미집행'이라는 명목으로 기한없이 돈이 쌓여만가는 구조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는 8일 기자회견에서 "거의 매년 미집행 분담금이 발생하고 있지만 미측이 이에 대한 지급을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도 없고, 한국 정부가 이를 위한 예산 편성 절차를 제대로 밟은 적도 없다"고 지적했다.
 
결국 차기 방위비 협상에선 투명성 등 확보를 위해 총액형을 소요형으로 바꾸는 구조적 전환을 이루는 게 가장 큰 과제라는 지적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집행금을 근거로 예산을 집행했다는 게 편법이나 불법은 아니지만, 주한미군 측이 돈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는 계속 줄 돈이 쌓여만 가는 애초부터 불합리한 제도상의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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