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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사건 수사정보만 통제한다"…박범계의 '내로남불'

중앙일보 2021.04.07 16:49
대검찰청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변필건)와 수원지검 형사3부(부장 이정섭)에 수사 관련 보도에 대한 진상 확인을 지시했다고 7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의 ‘윤중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유출 및 청와대발 기획사정 의혹을, 수원지검 형사3부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긴급 출국금지(출금) 및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전날(6일) “피의사실 공표를 묵과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은 데 따른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청와대가 연루된 사건에만 ‘선택적’으로 피의사실 공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진상 확인 대상 두 사건, 청와대 연루 가능성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당시 각종 비위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로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한 가운데, 대검이 7일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에 각각 진상확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왼쪽)와 서울중앙지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연루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당시 각종 비위 의혹 사건 수사와 관련한 보도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로 묵과할 수 없다"고 경고한 가운데, 대검이 7일 서울중앙지검과 수원지검에 각각 진상확인을 지시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왼쪽)와 서울중앙지검 청사의 모습. 연합뉴스

‘진상 확인’의 대상이 된 두 사건은 모두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당시 선임행정관)의 연루 가능성이 농후한 것들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윤중천 면담보고서’를 작성한 당시 대검 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가 윤중천(구속) 씨를 면담할 때마다 이 비서관과 통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원지검 형사3부는 차규근(불구속 기소)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이 2019년 3월 22일 이 비서관의 소개로 이 검사와 통화한 뒤, 다음날 이 검사의 김 전 차관 긴급 출금 요청을 사후 승인한 것으로 보고 청와대 개입 여부를 캐고 있다. 이 비서관은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 업무를 맡았다.
 
박 장관은 이날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의심하며 “대검은 대검대로 서울중앙지검은 서울중앙지검대로 조치가 있을 것으로 알고 있고, 그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치로 수사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엔 “피의사실 공표까지 포함해 수사 기법이 떳떳하면 외압으로 느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날 “(대검 진상조사단 활동)보고 과정에 이광철 당시 선임행정관(현 민정비서관)이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사실상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상황에서 박 장관이 재차 이 비서관 관련 사건 보도에 제동을 건 셈이다.
 

박준영 “사법 농단 수사 ‘생중계’ 때는 침묵” 

박준영 변호사(사진)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진상조사 등에 참여했다. 연합뉴스

박준영 변호사(사진)는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에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 접대 진상조사 등에 참여했다. 연합뉴스

법무부와 대검의 지시에 따른 수사 관련 보도 경위 파악은 서울중앙지검·수원지검 인권감독관실이 맡았다. 각 청 인권감독관실은 수사팀을 대상으로 지난달 26일 대검이 일선 지검·지청에 하달한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 등 철저 준수 지시’를 어겼는지 등을 따져볼 계획이다. 수사팀에 대한 징계 목적의 감찰은 아니지만, 사실상 감찰에 버금가는 조사 행위다. 박 장관은 전날 “자체 조사를 확인하고 후속 조치를 고려하겠다”고 경고했다.
 
법조계에서는 피의사실 공표 적용이 ‘고무줄 잣대’로 이뤄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검 진상조사단에 몸담았던 박준영 변호사는 이날 페이스북에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가 진행되는 도중 과거사 조사 내용과 관련한 무책임한 유포가 꽤 있었고 ‘단독’ 기사 형식으로 보도됐다”며 “이 보도들이 지금 수사의 대상인데 당시 여당·법무부·청와대에서 이와 관련해 조사단에 어떤 유감 표명도 없었다. 이 정권에 유리한 보도였기 때문”이라고 썼다.
 
박 변호사는 “2017, 2018년 사법 농단 수사 과정에서는 수사 상황이 거의 생중계되듯 언론에 보도됐는데 이때도 침묵했다. 침묵하던 사람들이 2019년 조국 전 장관 수사 때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다들 알 것”이라며 “한참 침묵하다가 거세게 반발한 건 정치적 입장과 진영 논리가 반영된 모순”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피의사실 공표 금지의 원칙은 여러 이해관계에 따라 때로는 침묵, 때로는 강조가 원칙 없이 이뤄지고 있다”며 “권력형 수사가 생중계되는 것도 문제지만, 깜깜이로 진행되는 것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수사와 재판 결과가 진영논리 등 각종 이해관계에 따라 인용되고 해석되는 우리 사회의 여론 형성 구조를 이대로 둔 채, 권력형 사건의 수사 정보를 통제만 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박범계 ‘내로남불’ 지적에 “그땐 장관 아니었는데”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과 관련해 여권을 겨냥한 수사 내용이 보도되는 것이 4·7 재·보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는 박 장관의 모습. 뉴스1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최근 2019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활동과 관련해 여권을 겨냥한 수사 내용이 보도되는 것이 4·7 재·보선과 무관하지 않다고 의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1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로 출근하는 박 장관의 모습. 뉴스1

박 장관은 이 같은 ‘내로남불’ 지적에 “그때(2017~2019년)는 내가 (법무)장관이 아니지 않았느냐”고 반박했다. 그는 이날 법무부 기자실을 찾아 “피의사실 공표는 장관이 되기 전 야당 할 때부터 자주 얘기를 한 것이라 일관성이 없다고 얘기하긴 곤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장관이 취임 이후 꾸준히 선택적 태도를 보여왔다는 비판도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장모 사건이나, 채널A 사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에 대한 모해위증 의혹 수사지휘 때의 피의사실 공표는 왜 진상 확인 범위에 포함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또 다른 현직 검사는 수사 관련 정보 접근을 원천 차단해 검찰의 자의적 공보가 가능하도록 한 구조는 그대로 둔 채 권력형 사건에만 형사사건 공개금지 원칙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살아있는 권력 수사 보도에만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준호·김수민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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