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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막 오늘도 훼손" 선거날까지 혐오와 싸운 군소후보 3인

중앙일보 2021.04.07 14:17
“현수막은 오늘도 훼손 중.”

4ㆍ7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오전, 오태양 미래당 후보가 훼손된 본인의 현수막 사진과 함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거대 양당이 기자회견과 라디오 방송 출연으로 막판 호소를 나선 이 날에도, 이처럼 군소 후보들은 혐오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오태양, 20여개 벽보ㆍ현수막 훼손돼

오태양 후보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우리가 파악한 것만, 7개 자치구에서 20여개 넘는 현수막과 벽보가 훼손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후보는 “혐오 범죄가 커질수록, 오히려 우리를 더 응원해주는 분들이 많이 생겼다”며 “지금까지 어떤 정치인들도 혐오에 전면적으로 맞선 적이 없었는데, 용기를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지지자들 응원을 보며 나도 힘이 났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걸려있던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훼손된 현수막. 오태양 캠프 제공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홍대 인근에 걸려있던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훼손된 현수막. 오태양 캠프 제공

 
성 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겠다며 나온 오 후보는 지난달 25일 공식 선거 운동 첫날부터 유세 방해에 시달렸다고 한다. 오 후보는 “서울 대한문 광장에서 첫 유세를 비롯해서, 강남 유세 등 이어진 대부분의 유세 현장에서 ‘동성애 반대’, ‘에이즈(AIDS) 반대’ 등을 외치는 방해 세력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오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낙선하겠지만, 당장 내일(8일) 오전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예정돼있다. 약자들도 당당하게 살 수 있을 때까지 정치 활동을 멈추지 않겠다. 혐오가 만연하지만, 이번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 커버 문구를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라고 바꿨다.
 

신지혜, “후보로서 존중 못 받아”

마찬가지로 벽보 훼손에 시달려온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는 “벽보 훼손도 훼손이지만, 거대 양당이 우릴 경쟁자로 존중해주질 않아 힘들었다”고 말했다.  
 
5일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의 벽보가 강동구에서 훼손된 채 발견됐다. 후보의 얼굴 부분이 날카로운 물체로 찢겨 있다. 신지혜 캠프 제공

5일 신지혜 기본소득당 후보의 벽보가 강동구에서 훼손된 채 발견됐다. 후보의 얼굴 부분이 날카로운 물체로 찢겨 있다. 신지혜 캠프 제공

신 후보는 “우리가 유세를 위해 전날 밤부터 자릴 맡아놔도, 다음날 뒤늦게 온 거대 정당 사람들이 ‘자리를 내놓으라’ 협박을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서로 미리 유세 자리를 협의한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아무런 협의도 없이 당일 나타나 ‘깡패’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용혜인 신지혜 캠프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6일 페이스북에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선거 방해를 주장하며 “거대정당의 횡포, 더 이상 참지 않겠다”고 썼다.

 
신 후보는 하지만 선거 운동 기간은 “보람찬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선거가 거대 양당의 횡포와 ‘생태탕’ 공방으로 흘러간 건 아쉽지만, 지난해 9월 출마 선언 후 7개월간 청년ㆍ당원들과 직접 공약을 만들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평등한 서울을 구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도 도전하겠다”고 했다. “선거 기간 만난 시민단체를 세보니 46개였다. 이들이 우리에게 해준 조언을 4년 임기 시정 활동에 충실히 반영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신지예, 세 번째 출마 세 번째 테러당해 

페미니스트 신지예 무소속 후보는 2018년 지방선거(서울시장), 2020년 총선(서울 서대문갑)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출마다. 그리고 벽보ㆍ현수막 훼손도 세 번째다. 신 후보는 통화에서 “그때나 지금이나 여성 혐오가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다. 날 선 비난들이 분명히 있다”면서도 “절대 굴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5일 훼손된 채로 발견된 신지예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 벽보. 신지예 캠프 제공

5일 훼손된 채로 발견된 신지예 무소속 서울시장 후보 벽보. 신지예 캠프 제공

 
현재 나타나고 있는 벽보 훼손의 피해 원조 격이 신 후보다.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단발머리 사진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란 문구가 적힌 그의 벽보는 커터칼로 눈이 파인 적이 여러 번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신 후보의 벽보 중 일부가 찢어지고 뜯겨나갔다.  
 
신 후보는 페미니즘과 반페미니즘 대결을 넘어 연대하자고 했다. 캐치프레이즈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2018년)에서 ‘당신의 자리가 있는 서울’(2021년)로 바꿨다. 신 후보는 “제 이념만 강조하는 것보단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로 선거 운동을 했다”며 “지금의 반목을 넘어 서로 비난하지 말고 연대의 감정을 갖자”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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