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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53억 대금 안 줬다" 北기업 첫 소송, 한국 법원 판단은···

중앙일보 2021.04.07 05:00

“5·24 조치가 시행된 11년 동안 남북 경협 기업인들의 고통이 해결되지 않아 법정까지 오게 됐다”

 
6일 오전 10시 19분쯤 서울중앙지방법원 앞. 국내 기업을 상대로 11년간 밀린 아연 대금을 달라며 소송을 제기한 북한 기업 측이 패소하자 김한신 남북경제협력연구소 소장이 한 말이다. 

국내 최초 北기업, 南기업 상대 소송

 
김 소장은 북한 기업과 함께 국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다. 2010년 2월 북한의 남북경협 사업을 총괄하는 민족경제협력연합회(민경련)와 명지총회사로부터 사건을 위임받아 공동 원고 자격으로 소송에 참여했다.

 
6일 남북경제협력연구소 김한신 소장이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남북경제협력연구소 김한신 소장이 공판을 마치고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27단독 김춘수 부장판사는 북한 경제단체 민경련과 명지총회사, 남북경제협력연구소 김 소장이 H산업 등 국내기업 4곳을 상대로 제기한 물품대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북한기업이 한국기업 측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부족하다”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중개무역 특성상 계약 당사자가 아닌 북한기업에 대금을 직접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본 것이다. 북한기업이 국내기업을 상대로 낸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北 기업이 南 기업에 소송 제기한 사연?

북한 민경련 산하 명지총회사는 지난 2010년 2월 국내 중견기업 H사와 원료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북한산 아연 2600여t을 약 600만 달러(약 67억원)에 구매한다는 게 계약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사건에 대한 대응 조치로 5·24 대북 제재를 시행하면서 남북 교류가 단절됐고 북한기업의 송금이 불가능해졌다. 
 
이에 명지총회사는 “계약대로 아연을 공급했지만 전체 대금 중 일부인 474만달러(약 53억원)를 돌려받지 못했다. 미지급대금 중 일부인 1억원을 배상하라”며 2019년 8월 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H기업 측은 거래를 중개한 중국기업 B사에 대금을 모두 지급했다며 반박에 나섰다.
 

北기업에 대한 南법원 판단은?

법원은 먼저 대한민국 헌법과 남북관계 발전에 대한 법률 등에 따라 이 사건의 경우 국제사법 규정에 준거해 국내 법원이 재판관할권을 가진다고 봤다. 이어 재판부는 "민경련이 김한신 소장에게 보낸 문서에 의하면 김 소장이 소송대리권을 수여할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김 소장이 소송에서 북한기업을 대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명지총회사가 국내기업인 H사와 직접적인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청구를 기각했다. 명지총회사가 김 소장을 통해 법원에 제출한 자료가 근거가 됐다. 선하증권(화물의 인도청구권을 문서화한 증권)에는 북한기업이 아닌 중국기업 B사가 운송계약 당사자로, 명세서에는 판매자로 명시돼있었다. 중국기업이 북한기업으로부터 아연을 매입해 한국기업에 매도할 당시 적용단가가 달라 수수료만 취하는 ‘중개업자’로 보기 어렵다고도 했다.
 
법정 이미지. 연합뉴스

법정 이미지. 연합뉴스

 
재판부는 “H사는 중국기업이나 북한기업이 지정한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보이는데 명지총회사도 (국내기업이 중국기업 계좌로 송금한) 일부 대금 수령을 인정하고 있다”며 “(이런 점을 고려하면) 명지총회사가 국내기업과 계약을 체결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고 오히려 중국기업이 북한기업에 해당 물품을 매수해 한국기업 측에 매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코로나로 자료 제출 못해…항소할 것”

선고를 마치고 나온 김 소장은 패소 이유로 5·24 조치가 있었다고 설명하며 “남북경협의 필수인 3통(통행, 통신, 통관)을 5·24조치가 막고 있다”며 “이에 대한 실행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그걸 안 하면서 남북경협을 재개한다는 건 통일부가 올바른 조치를 못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서 중개인인 중국기업과 민경련의 관계를 증명하라고 요구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북한과) 접촉이 중단돼 법원에서 요구하는 자료를 충분히 제출하지 못했다”며 “변호인과 상의해 항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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