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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진박감별사와 친문후보론

중앙일보 2021.04.07 00:30 종합 27면 지면보기
서승욱 정치팀장

서승욱 정치팀장

안양교도소에 수감중인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근황을 들었다. 마음이 불편한 거야 당연하겠지만, 최근엔 건강도 많이 안 좋다고 한다. 식사가 입에 맞지 않는지 체중은 줄고 온몸이 야위었는데, 유독 얼굴만 퉁퉁 붓는 증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신장기능에 문제가 생긴 거로 짐작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교도소와 외부 병원을 오가야 하는 처지라 치료에 불편함이 많다고 한다. 진찰을 받았지만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관련 검사를 받을 수 있는 일정 때문에 아직 병명도 특정하지 못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측근들은 “과거와 달리 병원 측이 MB의 사정을 조금도 배려해주지 않아 고령의 전직 대통령이 정말 힘들어한다”고 했다. 정권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고, 누구에게나 특혜없이 원칙을 지켜야 하는 병원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예우를 모두 박탈당한 80세 전직 대통령의 사정까지 봐주긴 쉽지 않을 것이다.
 

5년 전 총선 강타했던 진박 논란
요즘 여당내 친문후보론과 닮아
“권력 잃으면 낭떠러지” 위기감

하지만 같은 현실에선 180도 다른 논란도 벌어지고 있다. 야당 의원은 대통령 외손자의 병원 특혜 진료 의혹을 제기했고 대통령의 딸은 해당 의원을 고소했다. 대통령 외손자에 대한 병원 측의 특혜 제공은 없었다고 믿지만, 이런 논란을 지켜보며 MB는 처지의 곤궁함을 제대로 실감했을 것이다. ‘권력 무상’이란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비정하고 잔인한 권력의 속성 말이다.
 
권력의 비정함은 수많은 역설과 아이러니도 만들어내고 있다.
 
소위 ‘적폐 수사’로 MB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던, ‘보수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금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MB와 박 전 대통령을 배출했던 보수의 심장 TK(대구·경북)는 윤 전 총장의 아성이 되어간다. 심지어 MB의 청와대 고위 참모를 지낸 정치인조차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총대를 메겠다”고 다짐한다. 적의 적은 동지요, 현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과거의 원수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심정인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분노로 보수 세력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반면 권력의 단맛을 알아버린 여권은 쫓기는 입장이다. 이 사람들은 한 번 잡은 권력을 놓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너무나 잘 안다.
 
서소문 포럼 4/7

서소문 포럼 4/7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가 세상을 떠난 1800년 이후 22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 집권 10년을 빼고는 개혁세력이 집권한 적이 없다. 편향성에 대한 복원을 시도하려면 20년은 꾸준히 집권해야 한다” “앞으로 민주당이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는 이해찬 전 대표 발(發) ‘20년 집권론’ ‘50년 집권론’ 역시 그런 위기감의 다른 이름이다. 20년, 50년은 커녕 이제 고작 4년을 누렸을 뿐인데 정권을 놓치는 순간 천길 낭떠러지가 펼쳐질 것을 이들도 MB만큼 잘 안다.
 
특히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성적표를 기다리는 ‘친문(친 문재인)’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회고록 집필에 한창이라던 이해찬 전 대표도 재·보선을 앞두고 이미 링에 재등장했다. 당내에선 “이재명이나 이낙연 대신 문재인 대통령에 끝까지 충성할 진짜 친문파 대통령 후보를 옹립하겠다”는 소위 ‘친문 제3후보론’이 곧 불붙을 모양이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경수 경남지사가 ‘예비 후보군’으로 거론되더니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며 정계은퇴를 시사했던 인사의 이름까지 언급된다.
 
국민들과는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걸까. 대통령 지지도는 30% 초반까지 추락하고, 4년간 쌓인 국정 운영의 짐은 재·보선 여론조사 수치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친문 제3후보론’에 박수치며 공감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비슷한 광경을 5년쯤 전에 지켜본 적이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소위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사’란 완장을 찬 이들이 마치 염라대왕처럼 무서운 얼굴로 기세를 올렸다. 자신들은 모두 옳고, 다른 이들은 모두 틀렸다는 소름 끼치는 이분법이었다. 그해 총선 결과가 어땠는지, 그들이 왕처럼 모셨던 분과 그들 앞에 곧바로 어떤 운명이 펼쳐졌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겠다. 5년 전 ‘진박 감별사’와 지금의 ‘친문 제3후보론’을 관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역사는 결국 반복되고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무섭게 느껴진 적이 없다.
 
서승욱 정치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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