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승욱 정치팀장
5년 전 총선 강타했던 진박 논란
요즘 여당내 친문후보론과 닮아
“권력 잃으면 낭떠러지” 위기감
권력의 비정함은 수많은 역설과 아이러니도 만들어내고 있다.
소위 ‘적폐 수사’로 MB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던, ‘보수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금 보수층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있다. MB와 박 전 대통령을 배출했던 보수의 심장 TK(대구·경북)는 윤 전 총장의 아성이 되어간다. 심지어 MB의 청와대 고위 참모를 지낸 정치인조차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총대를 메겠다”고 다짐한다. 적의 적은 동지요, 현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과거의 원수와도 손잡을 수 있다는 심정인 것 같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분노로 보수 세력은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다.
반면 권력의 단맛을 알아버린 여권은 쫓기는 입장이다. 이 사람들은 한 번 잡은 권력을 놓쳤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너무나 잘 안다.

서소문 포럼 4/7
특히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성적표를 기다리는 ‘친문(친 문재인)’세력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회고록 집필에 한창이라던 이해찬 전 대표도 재·보선을 앞두고 이미 링에 재등장했다. 당내에선 “이재명이나 이낙연 대신 문재인 대통령에 끝까지 충성할 진짜 친문파 대통령 후보를 옹립하겠다”는 소위 ‘친문 제3후보론’이 곧 불붙을 모양이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김경수 경남지사가 ‘예비 후보군’으로 거론되더니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 운동에 매진하고 싶다”며 정계은퇴를 시사했던 인사의 이름까지 언급된다.
국민들과는 다른 현실을 살고 있는 걸까. 대통령 지지도는 30% 초반까지 추락하고, 4년간 쌓인 국정 운영의 짐은 재·보선 여론조사 수치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오는 ‘친문 제3후보론’에 박수치며 공감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비슷한 광경을 5년쯤 전에 지켜본 적이 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소위 ‘진박(진실한 친박) 감별사’란 완장을 찬 이들이 마치 염라대왕처럼 무서운 얼굴로 기세를 올렸다. 자신들은 모두 옳고, 다른 이들은 모두 틀렸다는 소름 끼치는 이분법이었다. 그해 총선 결과가 어땠는지, 그들이 왕처럼 모셨던 분과 그들 앞에 곧바로 어떤 운명이 펼쳐졌는지는 새삼 언급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겠다. 5년 전 ‘진박 감별사’와 지금의 ‘친문 제3후보론’을 관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있다.
역사는 결국 반복되고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말이 요즘처럼 무섭게 느껴진 적이 없다.
서승욱 정치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