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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심기 건드렸나…52년만에 홍콩에서 오스카 중계 못본다

중앙일보 2021.04.06 05:00
홍콩에서는 1969년 이후 처음으로 오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중계되지 않는다. [AP=연합뉴스]

홍콩에서는 1969년 이후 처음으로 오는 25일(현지시간)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중계되지 않는다. [AP=연합뉴스]

홍콩에서 52년 만에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중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례적 상황에 대해 홍콩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가 후보에 오르는 등 시상식의 내용이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거스른 탓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홍콩 최대 방송사인 TVB는 지난달 29일 “오스카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TVB는 1969년부터 매년 오스카 중계를 도맡아왔다. TVB뿐만 아니라 홍콩 내 어느 방송국도 오는 25일에 개최되는 오스카 중계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TVB는 “이건 단순히 상업적인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지난달 중국 당국이 내린 지시와 관련 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17일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공산당 선전부가 본토 모든 매체에 “오스카를 실시간 중계하지 말고, 시상식 보도도 축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익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홍콩 헌법인 홍콩기본법은 기본적으로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어, 이번 공산당의 지침을 홍콩 방송사가 따를 의무는 없다. 하지만 홍콩보안법 이후 방송사들도 중국 당국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화 매거진 버라이어티(Variety)나 WP 등은 후보에 오른 영화 중 ‘두 낫 스플릿(Do Not Split)’과 중국 출생 감독인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가 문제가 됐다고 보고 있다. 오스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오른 ‘두 낫 스플릿(Do Not Split)’은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다룬 35분짜리 다큐멘터리다.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다룬 영화 '두 낫 스프릿(Do Not Split)'이 오스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트위터 캡처]

2019년 홍콩 민주화 시위를 다룬 영화 '두 낫 스프릿(Do Not Split)'이 오스카 단편 다큐멘터리 부문 후보에 올랐다. [트위터 캡처]

노매드랜드는 감독상·작품상·여우주연상 등 오스카 6개 부문에 후보에 올랐다. 이 영화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붕괴된 도시민의 삶을 담아냈다. 문화 전문 매체인 버라이어티(Variety)에 따르면 당초 중국 언론들은 자오 감독이 제77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등 유수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자 “중국의 감독” “중국의 자랑”이라며 추켜세웠다.
 
하지만 2013년 ‘필름메이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해 “사방에 거짓말이 가득한 곳”이라고 언급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중국 내 민족주의자들이 그를 공격하고 나섰다. 이와 동시에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선 ‘#노마드랜드’와 ‘#노마드랜드개봉일’ 해시태그가 갑자기 사라졌다.
 
클로이 자오가 감독한 '노매드랜드'는 오스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이미 제77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제78회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 올 시즌 210개가 넘는 상을 휩쓸었다. [트위터 캡처]

클로이 자오가 감독한 '노매드랜드'는 오스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은 이미 제77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과 제78회 골든글로브 작품상 등 올 시즌 210개가 넘는 상을 휩쓸었다. [트위터 캡처]

 

석경민 기자 suk.gyeo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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