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원 평행이론② 천리포수목원 vs 남이섬
수목원은 풀과 나무가 있는 정원이다. 인간이 부러 흉내 낸 자연이란 뜻이다. 하여 수목원에는 사람이 있다. 꽃과 나무를 심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전국의 이름난 수목원 중에는, 인연으로 이어진 수목원이 있다. 각별한 인연으로 연결된 전국의 수목원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마침 신록의 계절이다. 수목원 가기에 좋은 계절이다.
수목원의 원조 천리포수목원

수선화 만발한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국내 최초 민간 수목원이다. 손민호 기자
천리포수목원은 민병갈(1921~2002) 박사가 평생을 가꾼 나무 낙원이다. 1945년 광복 직후 한국에 들어온 그는 1970년 천리포 해안 민둥산에 나무를 심기 시작해 2002년 숨지기 전까지 수목원을 지켰다. 마침 오는 4월 8일이 19주기다.

천리포수목원은 목련으로 유명하다. 전 세계 목련 500여 종 중에서 400여 종이 천리포수목원에 있다. 손민호 기자
나무섬 남이섬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의 주인공은 나무다. 사진 남이섬
애초의 남이섬은 섬도 아니었다. 북한강이 차오르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뭍이 되는 모래밭이었다. 남이섬은 1944년 청평댐이 완공되면서 비로소 섬이 되었다. 이 섬을 1965년 수재 민병도(1916∼2006) 회장이 샀고, 수재는 돌아가기 전까지 나무를 심었다.

강원도 춘천 남이섬의 봄날. 남이섬에는 1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있다. 사진 남이섬
의형제

남이섬의 봄 풍경. 남이섬은 자전거 타고 산책하기에 좋다. 사진 남이섬
둘의 인연은 1947년 시작됐다. 민 박사가 미 군정청 재정담당관 시절 당시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민 회장을 만났다. 두 사람은 이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다. 민 회장이 민 박사보다 형이었지만, 먼저 나무를 심은 사람은 동생이었다. 동생이 형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뜰 때까지 둘은 서로 의지하며 나무를 심었다. 민 회장은 1979년부터 1997년까지 동생의 천리포수목원 이사로 참여했고, 민 박사는 천리포수목원에서 키우던 묘목을 형의 남이섬에 여러 차례 전해 주었다.
민병갈 박사의 원래 이름은 칼 페리스 밀러(Carl Ferris Miller)다. 1979년 귀화하면서 형 민병도 회장의 이름을 본 따 개명했다. 형의 성(姓) ‘민(閔)’을 따라 민씨가 됐다. 본관 ‘여흥’도 따라 돌림자로 쓰이는 이름 ‘병(丙)’ 자도 빌렸다. 민 박사는 여흥 민씨 명예 회원 자격으로 문중 원로를 수목원으로 초청해 종친회를 베풀기도 했다.

천리포수목원 창립자 민병갈 박사 흉상. 손민호 기자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