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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부개척 시대 연 골드러시 vs 신도시 투기 광풍

중앙일보 2021.04.06 00:33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경서 번역가 겸 영문학 평론가

박경서 번역가 겸 영문학 평론가

골드러시(Gold Rush)는 미국 서부 개척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골드러시는 1848년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 밸리에 있는 존 서터(Sutter)의 제재소 방수로에서 제임스 마셜(Marshall)이 우연히 사금을 발견한 데서 시작됐다.
 

일확천금 노린 투기라는 공통점
프런티어 정신과 불공정은 달라

제재소 주인 서터와 마셜은 동업자가 되어 금 발견 사실을 절대 누설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소문은 바람처럼 빠르게 퍼져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이듬해 본격적인 골드러시가 시작됐다. 1849년에 8만여명이 노다지를 캐는 일확천금의 꿈을 꾸며 캘리포니아 금광지대로 몰려들었다. 49년에 캘리포니아로 몰려왔다고 해서 이들을 ‘49년의 사람들’을 뜻하는 ‘포티 나이너스’(forty-niners)라 일컫는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를 홈구장으로 하는 미식 축구팀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
 
‘캘리포니아 아니면 버스트’(California or Bust)라는 말까지 생겨났는데 ‘한탕하든지 망하든지’ 혹은 ‘대박 아니면 쪽박’으로 번역된다. 그럴 정도로 포티 나이너스 세대는 어차피 인생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한탕을 꿈꾸며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골드러시는 극소수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었지 정작 포티 나이너스는 대부분 금광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리다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가거나 캘리포니아에 남아 열악한 노동자의 삶을 살았다.
 
2021년 대한민국에는 ‘투웬티 워너스’(twenty-oners)가 황금의 땅으로 달려가고  있다. 포티 나이너스와 투웬티 워너스는 한탕을 노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포티 나이너스가 지도 한장 없이 맨손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서부로 갔다면, 한국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투웬티 워너스는 공공 정보를 도둑질해서 한 몫 챙기려고 황금의 땅으로 몰려들었다.
 
포티 나이너스는 프런티어 정신(Frontier spirit)의 구현이었고, 미국식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했다. 반면 한국의 투웬티 워너스는 불법 투기를 실행해 투기 공화국의 불의와 불공정 확산에 일조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점에 투웬티 워너스의 존재가 폭로되면서 문재인 정부와 여당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은 3기 신도시 투기 의혹이 터지자 “국가수사본부가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면서 부동산 적폐 청산 의지도 밝혔다. 정세균 총리는 “이번 LH 사태는 그동안 쌓여 온 구조적 부동산 적폐의 일부분”이라고 규정했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이번 부동산 투기 사태에 대해 검찰 책임론을 꺼냈다. 이들의 레토릭에는 ‘잘 되면 내 탓, 잘못되면 과거 정부 탓’이라는 자기 본위 편향이 엿보인다.
 
1955년 개봉한 ‘돌아오지 않는 강’은 골드러시를 배경으로 만든 서부영화다. 로버트 미첨(Robert Mitchum)과 메릴린 먼로(Marilyn Monroe)가 남녀 주인공으로 출연한 이 영화는 크게 흥행했다. 이 영화는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이 상징하는 물질과 대지가 상징하는 자연이라는 두 가치관을 절묘하게 대비한다.
 
영화 막바지 장면에서 영화 속 남자 주인공 콜더가 카운슬시티의 어느 가게에서 커피를 마실 때 가게 주인이 묻는다. “다 미친 것 같아. 이 시대 말이야. 백인은 금을 쫓고, 인디언은 백인을 쫓고, 군인들은 인디언들을 쫓아. 콜더, 자넨 뭘 쫓나?”
 
이 물음에 지금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투웬티 워너스라면 “투기하면서 정년까지 꿀 빨면서 다니렵니다. 꼬우면 니들도 (LH로) 이직하든가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블라인드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 가수 강산에가 부른 ‘와그라노’ 구절이 귓가에 맴돈다.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마 고마해라.”
 
박경서 번역가 겸 영문학 평론가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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