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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文이름 지워졌다, 예외없는 5년차 '고난의 행군'

중앙일보 2021.04.04 05:00
4.7 재ㆍ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5일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연합뉴스

4.7 재ㆍ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달 25일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앞에 더불어민주당 박영선·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연합뉴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여당이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시작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1일 “정부·여당이 주거의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부동산 정책을 공식으로 사과했다. 당 대표 시절엔 아파트 가격 폭등에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옹호하던 그였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 28일 “서울 강남 재개발·재건축은 공공주도만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공공주도 공급 원칙’과 배치되는 발언이다. 박 후보의 선거현수막엔 문 대통령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 2018년 지방선거, 지난해 총선 때 민주당 후보들이 선거공보물 등에서 문 대통령과의 인연을 과시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문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집권 5년 차 ‘고난의 행군’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10월 5일 여의도 민자당사에서 탈당 선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10월 5일 여의도 민자당사에서 탈당 선언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임기 말 여당의 ‘대통령 이름 지우기’는 이번 정부만의 현상은 아니다. 차기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여당에 지지율이 추락한 대통령은 짐과 같은 존재였다. 집권 5년 차엔 예외 없이 당·청 관계가 멀어졌고, 대통령은 여당 지원 없이 ‘고난의 행군’을 했다. 1987년 개헌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가 도입된 후 나타난 공통적인 모습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당·청 갈등은 대통령의 여당 탈당으로 나타났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충남 연기군 관권선거 파동으로 임기를 6개월여 남겨두고 탈당했다. ‘관권선거 개입의 폐습을 청산하겠다’가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김영삼 당시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와의 갈등 때문에 떠밀리듯 당을 떠났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집권 5년 차에 차남 김현철씨(현 김영삼민주센터 상임이사)가 수사를 받으며 본격적인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시작됐다. 그러자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대선 후보가 기자회견까지 열어가며 탈당을 요구했다. 결국 김 전 대통령도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노·김 전 대통령 탈당을 이끈 이가 모두 차기 여당 대선 주자였다.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가 1997년10월 2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명예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과 검찰의 김대중 총재 비자금 수사를 촉구하였다. 중앙포토

이회창 당시 신한국당 총재가 1997년10월 22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갖고, 명예총재인 김영삼 대통령의 탈당과 검찰의 김대중 총재 비자금 수사를 촉구하였다. 중앙포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임기 말은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게이트로 얼룩졌다. 결정타는 세 아들의 각종 비리 의혹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면서 동시에 여당 총재였는데, 여당 의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탈당 요구도 나왔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은 차기 대선을 7개월여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었다.

  

여당 의원들의 찬성표로 탄핵당한 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당·청 관계에서 삐걱거렸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임기 7개월 만에 새천년민주당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임기 말 열린우리당에서도 외면받는다. 부동산 정책 실패, 친형인 건평씨의 땅 투기 의혹 등으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임기 4년 차 말에 10%대까지 추락했기 때문이다. 여당 의원들의 탈당 요구에 결국 노 전 대통령도 차기 대선을 10개월 정도 남기고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했다.

 
임기 말 대통령의 탈당 관행이 끊어진 건 이명박 전 대통령 때다. 내곡동 사저 의혹 등으로 여당인 한나라당 내에서 이 전 대통령 탈당 요구가 있었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통령 탈당이 해법이 아니다”라고 반대하면서, 탈당 관행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임기 말 당·청 관계가 좋았던 아니다. 정책 추진 과정에서 당·청이 계속 부딪혔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 주도권이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넘어가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2월 28일 정태호 당시 정무비서관을 통해 송영길 사무 총장에게 제출한 열린우리당 탈당 신고서.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2월 28일 정태호 당시 정무비서관을 통해 송영길 사무 총장에게 제출한 열린우리당 탈당 신고서. 중앙포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4년 차인 2016년 후반부터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면서 레임덕에 들어갔다. 정국이 악화하자 2016년 11월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주도해 만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그해 12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234표의 찬성으로 통과된다. 새누리당 의원 128명이 투표를 했는데, 이 중 최소 62명이 탄핵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된다. 
 
윤성민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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