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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익 보장” 다단계 투자 유혹, 노후자금 2억 날리기도

중앙선데이 2021.04.03 00:20 730호 10면 지면보기

암호화폐 투자 사기 극성

2일 MBI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큰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2일 MBI의 암호화폐에 투자했다가 큰 피해를 본 피해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수사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은퇴 후 노후자금으로 마련해 놓은 2억원을 날려 살길이 막막합니다”
 

“말레이시아 기업 투자에 속아”
전국 8만여 명, 5조원대 피해
경찰 “다단계 운영 100% 사기”

보물선 사기범, 계속 범죄 행각
당국 규제·안전망 미미해 문제

‘가치가 절대 떨어지지 않는 암호화폐’라는 말을 듣고 말레이시아 기업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업에 투자한 A(62)씨의 하소연이다. A씨 등 피해자들은 말레이시아 기업인 MBI에 투자하면 성장성이 큰 암호화폐를 지급한다는 말에 속았다고 했다. 이들은 “전국적으로 피해자가 8만여명에 5조 원대의 피해를 봤지만 지방 각 관할서 차원에서 수사가 이뤄지다 보니 사기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MBI 피해자연합회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전국 통합수사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국가수사본부에서 통합해 제대로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MBI는 자신들이 개발한 사회관계망서비스 ‘엠페이스’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다단계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모집책들은 1계좌당엠페이스에 광고 투자금을 내면 ‘GRC’(Good Redemption Coin)라는 암호화폐를 수당으로 주겠다면서 투자자를 꾀었다. 이들은 GRC의 가치가 6개월마다 2배, 4배, 8배, 16배 등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유혹했다. 투자금의 약 70%는 GRC로 환전되고 나머지 30%는 여러 사업비 명목으로 빠져나갔다.
 
몇 년 전 이른바 ‘안양세미나’에 참석해 투자 설명을 들었다는 B(55)씨 역시 말레이시아를 방문한 뒤 대박을 확신했다고 한다. 이들은 GRC 등 포인트로 MBI 거래처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숙박 시설을 이용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또 MBI가 추진한다는 주택사업 현장도 방문해 사업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했다. 하지만 2017년 MBI의 모든 계좌가 동결되며 금융기능이 막히면서 피해는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MBI가 내세운 수익 사업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거액의 투자금은 이미 다 빼돌린 상태였다. B씨는 “다시 말레이시아를 찾았을 때는 MBI 간판만 덩그러니 달려있을 뿐 이들이 내세운 화려한 성과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MBI 한국인 총책도 해외로 도피했다.
 
2018년 여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 사기 사건의 피해도 현재 진행형이다. 당시 사기범들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면 150조원의 금괴를 확보할 수 있다고 투자자를 모았다. 투자자들에게는 자신들이 개발한 암호화폐를 지급하고, 나중에 금으로 바꿔주겠다고 꾀었다. 하지만 모두 허위였다. 당시 이 사건에 연루된 국내 총책 등 사기범들은 구속돼 처벌을 받았다. 해외에서 이 사기극을 총괄 지휘한 류승진씨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경찰은 류씨를 붙잡기 위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령을 내린 상태다. 피해자 성모(51)씨는 “류씨는 지난 2년 동안 송명호 회장이라는 가상의 인물 행세를 하며 암호화폐를 바꿔가며 발행해 지금도 투자자를 모집하고 있다”며 “류씨에게 협력하는 국내 지사장들이 다단계 형식으로 암호화폐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있어 피해자는 점점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류씨 일당은 한 포털사이트의 밴드를 통해 회원을 유치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오랫동안 수사해 온 경찰 관계자는 “백서를 대충 짜깁기한 뒤 암호화폐 발행하고 여기에 투자하면 10배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식으로 선전하는 것이 이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라며 “다단계로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사기의 공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또 “정상적인 암호화폐 투자 방식과 달리 다단계 회원제로 운영하는 것은 100% 사기로 보면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들의 상당수는 50~70대 노장년층이라고 한다. 이들은 암호화폐에 이용되는 블록체인 기술 자체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을 뿐 아니라 ‘대박’을 꿈꾸는 은퇴 세대인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암호화폐 하루 거래금액은 8조원에 육박한다. 올해 들어 비트코인 등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면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갈수록 높아졌지만 당국의 규제나 안전망은 미미한 실정이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암호화폐는 금융자산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금융당국이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일본은 암호화폐 업체도 매년 감사보고서를 당국에 제출하는 등 수시로 관리·감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사기 사건은 해외 각국에서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6월 중국 공안당국은 워토큰(WoToken)이라는 암호화폐가 사기로 드러나 투자자 71만여명이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의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워토큰은 일종의 암호화폐를 보관하는 지갑으로 1000달러 이상 가상자산을 지갑에 담아두면 월 6~20%의 배당금을 나눠준다며 투자자를 유혹했다. 유럽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난해 영국 재정청(FCA)은 국가 사기·사이버범죄 신고센터가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매년 1000만 달러에 육박하는 암호화폐 사기 피해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또 사이버 사기 피해 건수 중 절반가량은 암호화폐 사기 범죄라고 덧붙였다. 2019년 프랑스 금융안전위원회는 2016년 18건에 불과하던 암호화폐 사기 관련 문의가 3년 사이에 2600여건으로 대폭 늘어 투자자 주의를 촉구하기도 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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