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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성’ 설계한 홍장표 KDI행 유력, 정책 ‘알박기’ 우려

중앙선데이 2021.04.03 00:02 730호 8면 지면보기

국책연구기관장 낙하산 논란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설계자인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홍 교수는 KDI 차기 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설계자인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 홍 교수는 KDI 차기 원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에서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을 정책·이론적으로 뒷받침했던 학자들의 국책연구기관행이 잇따르고 있다. 정권 말 낙하산 인사가 국책연구기관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장기 정책을 설계하는 국책 ‘싱크탱크’에까지 정치색을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권 말에 한국경제에 큰 상처를 남긴 정책 책임자를 ‘알박기’하듯 국책연구기관장에 임명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으로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 연구기관을 친정부 인사가 장악하면 정책의 왜곡이나 편향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 실패 책임자가 싱크탱크 맡아
학자들 “국민 우롱하는 처사” 비판

황덕순·정해구 등 정권 말 인사
국책기관의 독립성·객관성 위협
임기 만료 기관장 많아 늘어날듯

한국개발연구원(KDI) 차기 원장 유력 후보로 문재인 정부 첫 경제수석을 지낸 홍장표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가 거론되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최근 원장후보자심사위원회를 열고 홍 교수 등 3명을 지난달 임기가 끝난 최정표 원장 후임자로 이사회에 추천했다. 연구회는 이달 중순께 이사회를 열어 3명 중 1명을 선임할 예정이다. 홍 교수는 노동경제학자로 국제노동기구(ILO)의 ‘임금주도성장’ 이론을 한국식으로 변형시킨 소주성 이론의 설계자로 알려져 있다. 소주성은 임금 인상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이면 내수가 살아나고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라 정부는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렸고, 이 탓에 한국경제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자영업 종사자를 비롯한 취약계층이 일자리를 잃고 최악의 소득분배 참사까지 벌어졌다. 이 여파로 한국경제는 2018~2019년 호황기를 누린 세계경제와 달리 극심한 고용 대란을 겪어야 했다. 자영업자는 코로나 사태까지 겹치면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원인이 됐다. 이 같은 정책 실패의 책임자가 KDI 수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KDI에 재직했던 원로 학자 19명은 지난달 29일 “망국적 경제정책 설계자가 대한민국 최고 싱크탱크 수장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경제학계에선 노동경제학자인 홍 교수의 KDI 원장행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KDI는 거시경제정책 연구에 집중해야 하는 데 홍 교수의 전공과도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KDI 원장은 거시경제학자나 관료 출신이 맡았다. 고(故)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현정택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관료 출신 원장이었고 김중수 한림대 총장과 김준경 전 원장은 거시·계량경제학자로 KDI 내부 인사 출신이었다.
 
홍 교수 외에도 소주성 정책 라인의 알박기 낙하산 인사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4일엔 대통령 직속 정책위원회 위원장 출신의 정해구 전 성공회대 교수가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에 선임됐다. 연구회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KDI 등 26개 정부 출연 연구기관을 관리하는 업무를 한다. 이사장의 임기는 3년이며 산하 연구기관의 원장 등 임원에 대한 임면권을 가진다. 앞서 1월엔 황덕순 전 청와대 일자리수석비서관이 한국노동연구원장에 올랐다. 황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세 번째 일자리수석으로 소주성 맞춤형 일자리 정책을 입안했다. 그는 인천국제공사 비정규직 보안검색원의 정규직 전환으로 인한 청년층 반발(이른바 인국공 사태)에 대해 “취업준비생 분들께서 여러 가지 취업 사정이 어렵기 때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민간 연구원이지만 정부 금융정책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금융연구원에는 박종규 전 청와대 재정기획관이 취임했다. 분배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소주성 계열’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2013년엔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 저축의 역설’이라는 논문에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후 경제는 성장하는 데 근로자의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학계에선 정부의 ‘정책 알박기’가 연말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당장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새 원장엔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기획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한 이태수 꽃동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교수는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등으로 활동했고, 2016년 20대 총선에선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과 장지상 산업연구원 원장의 임기가 4월 말에 끝나는 등 굵직한 국책연구기관장의 임기 종료가 다가온다. 한국행정연구원은 5월, KDI국제정책대학원은 6월 각각 원장 임기가 끝난다. 지난 2월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차기 정권에서는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할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도 흐른다. 낙하산 인사를 하지 말라는 판결을 현 정부가 낙하산에 대한 ‘임기 보장 방패막’으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국책연구원에 소주성 계열 등 특정 성향 학자들이 몰려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정부 정책이 경제 현실에 맞지 않은 방향으로 편향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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