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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아서 머리 다 빠진다"던 푸념, 사실이었다

중앙일보 2021.04.02 16:15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탈모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은 만성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탈모의 원인이라고 밝혔다. [중앙포토]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일하는 A 씨(39)는 매년 연말이면 머리가 평소보다 많이 빠진다. A 씨는 “인사평가 기간인 연말이면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게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까 봐 우울한 경우가 많다”면서 “그런데 탈모의 원인이 인사 평가 때문인지 계절적 요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른 요인을 배제한다면, A 씨의 탈모는 계절적 요인보다는 인사평가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가 원인일 확률이 높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이 만성 스트레스를 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이 탈모의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호르몬 주입했더니…

연도별 탈모증 환자 현황. 그래픽 김주원 기자

연도별 탈모증 환자 현황. 그래픽 김주원 기자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각) 하버드대 줄기세포 및 재생생물학과 연구진의 모낭(hair follicle) 줄기세포 연구를 소개했다. 모낭은 피부에서 머리카락이나 털이 자라나는 주머니 모양의 기관이다.  
 
모낭은 '성장기(머리카락이 매일 자라는 시기·2~8년)→퇴행기(머리카락이 빠지는 시기·2~3주)→휴식기(모낭 줄기세포가 활동을 멈추는 시기·休止其·3주)→성장기'를 반복하며 머리카락을 생성한다. 이를 조절하는 것이 모낭의 줄기세포다. 줄기세포가 활성화하는 성장기에는 머리카락이 매일 길어진다. 반대로 줄기세포가 새로운 조직을 재생하지 않으면 탈모가 발생한다.  
 
그런데 연구진이 생쥐의 모낭을 관찰한 결과, 만성 스트레스가 모낭 줄기세포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트레스 호르몬(코르티코스테론)을 생쥐에 인위적으로 주입했더니, 모낭 줄기세포가 새로운 조직을 재생하지 않는 기간이 증가한 것이다. 척추동물의 부신 피질에서 생성하는 코르티코스테론은 인간의 코르티솔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인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외부 자극에 맞서 혈압·포도당 수치를 높이는데, 이때 분비되는 물질이 코르티솔이다.
 
수야츠에 하버드대 줄기세포연구소 줄기세포·재생생물학 교수는 “스트레스가 줄기세포 활성화를 지연시키고, 모낭의 줄기세포가 조직을 재생하는 빈도를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며 “스트레스 호르몬이 모낭 줄기세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호르몬 제거했더니, 노화해도 발모 

원형탈모 환자의 임상증상.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원형탈모 환자의 임상증상. [사진 분당서울대병원]

연구진은 거꾸로 생쥐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차단했다. 그랬더니 모낭의 줄기세포가 휴식기를 갖는 시간이 극적으로 짧아졌다. 즉, 스트레스 호르몬을 차단했더니 생쥐의 모낭에서 계속 털이 났다는 뜻이다.  
 
통상 노화할수록 휴식기가 길어지는데, 스트레스 호르몬을 차단한 생쥐는 나이가 들어도 모낭이 성장기를 유지했다. 수야츠에 교수는 “스트레스는 본질적으로 모낭 줄기세포가 성장기에 진입하는 행위를 가로막는다”며 “하지만 스트레스 호르몬을 제거한 생쥐는 노화해도 성장기가 계속 되풀이됐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나아가 발모 과정도 규정했다. 모낭 뿌리 부분에 있는 특정 세포(모유두진피세포)의 특정 단백질(Gas6)이 모낭의 줄기세포 활성화를 조절했다. 즉, 이 단백질 분비를 조절하면 발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뜻이다. 수야츠에 교수는 “Gas6 단백질을 조절하자 생쥐의 모낭 줄기세포가 활성화하고 모발 성장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국내 탈모 인구는 100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연구는 1000만 탈모인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모낭 줄기세포의 휴식기가 길어질 때 탈모가 발생한다는 점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즉, 모낭 줄기세포가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면 탈모를 치료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버드대 기술개발사무소는 이번 연구와 관련한 지식재산권을 확보했고 사업화를 모색 중이다. 다만 생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실험은 향후 인체에 안전하고 유효하게 적용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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