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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각설이 타령과 막걸리에 취했던 양평 5일장

중앙일보 2021.04.02 13:00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2)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들판에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코로나19와 추운 날씨로 움츠려 있던 몸이 바깥바람을 쐬자며 보챈다. 양평 장날을 맞아 오랜만에 나들이 한번 가자고 하자 아내는 좋아하며 따라나선다.
 
양평 5일장은 끝 숫자가 3일과 8일에 열린다. 날짜 맞추기가 쉽지 않은데 오늘은 마침 휴일이면서 장날이다. 시장 근방에 가니 나들이 나온 인파와 차량으로 주변 도로가 붐빌 정도로 활기가 넘쳐난다. 시골 장에는 카드결제가 안 될 것 같아 부근 은행에 들러 현금을 여유 있게 찾자 부자가 된 듯하다. 시장 입구에서 체온을 점검하고 이름을 적은 후에 시장 나들이를 시작했다.

 
인파로 붐비는 양평 시장. [사진 조남대]

인파로 붐비는 양평 시장. [사진 조남대]

 
시장 골목 양쪽에는 옷과 화장품, 잡화점과 같은 각종 가게가 있고, 중앙 통로에는 난전이 길게 펼쳐져 있다. 양평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채소와 과일, 콩, 마늘과 같은 식자재가 좌판과 손수레에서 싱싱함을 뽐내고 있다. 특히 호미, 낫 같은 농기구뿐 아니라 토끼, 닭과 같은 가축도 강제로 끌러와 눈을 크게 뜨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평소에는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양평역 인근의 넓은 공터에도 천막이 처져 있고 다양한 종류의 물건과 먹거리가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어릴 때 들렸던 고향의 시골 장터에 비하면 좀 더 정돈되고 주민들의 모습이 깔끔해진 것 이외에는 50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별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시장에 나온 사람들은 주변을 구경하며 걷느라 움직임이 느린 탓에 인파에 떠밀려 걸어간다. 시장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나온 사람도 있겠지만, 시골장의 모습을 구경 삼아 서울에서 온 사람도 많은 것 같다. 근처 용문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집에서 직접 기른 각종 채소 등 도시의 마켓에서 구경할 수 없는 다양한 물건을 살 수 있다. 마트보다 어수선하지만 깎아주기도 하고 덤도 있어 인정이 넘친다. 이런 매력 때문에 가끔 찾아오는데 오늘도 그런 기대를 충분히 만족하게 해준다.

 
3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말굽버섯을 비롯한 각종 약재.

300년 정도로 추정되는 말굽버섯을 비롯한 각종 약재.

 
시골 장에 오면 우선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가 없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만두와 찐빵을 파는 가게와 옛날 통닭집 앞에는 손님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조금 더 가자 아주머니가 손수레에서 메밀전병을 만들어 판다. 달구어진 넓은 프라이팬에 메밀 반죽을 얇게 펴고 그 안에 각종 재료로 속을 넣고는 둘둘 말아서 만든다. 지난해 원주 재래시장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나서 두 판을 주문했다. 구수하면서도 쫀득쫀득한 맛이 일품이고 가격 또한 착하다.

 
넓은 주차장에는 각종 음식을 비롯해 엿을 파는 각설이까지 와 시골 장날 분위기를 돋운다. 장구로 추임새를 넣으면서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간다. 남자는 재담을 하고 머리에 꽃을 꽂고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여자는 엿을 판다. 구경꾼이 하나둘 모여든다. 역시 시골 장에는 각설이가 있어야 흥이 살아난다.

 
각종 음식을 판매하는 간이식당.

각종 음식을 판매하는 간이식당.

 
한편에서는 족발, 돼지껍질, 순대와 국수를 비롯해 파전을 파는 간이 식당이 펼쳐졌다. 쉬엄쉬엄 걷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손님들이 많아 조금 기다리다 자리를 잡아 미니 족발을 주문했다. 아내가 재치있게 먼저 막걸리를 시킨다. 족발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안주가 부족해 순대를 추가로 주문했다.
 
옛날 어르신이 시골 장날이면 술에 한껏 취해 돌아오셨는데, 그 기분이 충분히 이해된다. 생활고에 쪼들리다 장날에 반가운 사람을 만나 막걸리 몇 잔에 모든 시름 잊고 홀가분해졌으니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술기운이 온몸에 퍼지자 내 마음도 두둥실 떠올라 부러운 것이 없다.

 
호박을 비롯하여 집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바닥에 펼쳐놓고 판매하는 모습.

호박을 비롯하여 집에서 수확한 농산물을 바닥에 펼쳐놓고 판매하는 모습.

 
코로나19로 인해 마땅히 갈 곳이 없자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데다 규모가 큰 양평 장을 찾은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경의중앙선 전철을 타고 도심을 벗어나면 지상으로 달리기 때문에 느긋하게 농촌 풍경을 감상하면서 올 수 있어 소풍 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한 시간 반 정도면 서울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닿을 수 있는 거리다. 시장을 찾는 대부분은 연세가 지긋하다.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바람 쐬기 위한 하루 나들이로는 적격일 것이다.

 
가끔 양평 장에 들르면 어릴 적 어머니를 따라 시골 장에 갔던 생각이 떠오르곤 한다. 더운 여름 시장에 따라가 땀을 뻘뻘 흘리며 풍물 장수 구경하던 일과 중국집에서 먹었던 우동 맛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요즈음 아무리 그 맛을 찾으려고 하여도 맛볼 수가 없다. 아마 5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입맛을 비롯하여 모든 것이 변했으니 그럴 것이다.

 
소의 코에 끼우는 코뚜레와 턱 밑에 다는 방울인 워낭.

소의 코에 끼우는 코뚜레와 턱 밑에 다는 방울인 워낭.

시골 장날의 흥을 돋우는 각설이 공연.

시골 장날의 흥을 돋우는 각설이 공연.

 
얼마 전에 고향의 장을 찾아 가 본 적이 있는데 왁자지껄했던 시장엔 인적이 드문드문해 쓸쓸했다. 어릴 때 20만 명이 넘던 인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든 데다 대형 마트가 들어선 때문인 듯하다. 농촌인구의 유출과 출산율 저하로 내 고향마저 이런 현상이 일어나다니 안타까웠다.

 
양평 장날은 언제 와도 고향처럼 푸근하고 정감이 간다. 어릴 적 추억이 깃든 것을 쉽게 볼 수 있으니 그런 모양이다. 토속적인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고 순박한 사람들의 훈훈한 체취가 몸속으로 스며들어 활력이 넘쳐나는 것 같다. 도시의 칙칙한 공기와 답답한 분위기에 젖어 있던 내 마음을 상쾌하게 뻥 뚫어준다. 앞으로도 고향이 그리워질 때면 이곳을 찾아와 향수를 달래 보아야겠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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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대 조남대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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