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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아이유 그려낸 김종관 감독 "연기만 한 배우와 다른 호흡"

중앙일보 2021.04.02 11:10
영화 '아무도 없는 곳' 포스터. [사진 엣나인필름]

영화 '아무도 없는 곳' 포스터. [사진 엣나인필름]

“‘밤을 걷다’란 제 영화에서 이지은 배우가 비현실적인 뭔가로 나왔잖아요. 유령의 이미지로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도 비일상적인 속도와 흐름을 가진, 어떤 연기를 보여주는 게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각본을 겸한 영화 ‘아무도 없는 곳’(3월 31일 개봉)에서 뮤지션 아이유, 아니, 배우 이지은과 두 번째 작업한 김종관(46) 감독의 말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아트나인 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31일 개봉 영화 ‘아무도 없는 곳’
낯선 아이유 그려낸 김종관 감독
정유미·한예리…새 얼굴 발굴해와

 
2년 전 4명의 감독이 이지은을 각기 다른 시선으로 풀어낸 넷플릭스 영화 ‘페르소나’(2018) 중 단편 ‘밤을 걷다’에선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한 남자의 꿈에 나온 그를 흑백 영상 속 밤 풍경에 담아낸 김 감독이다. 이번 영화는 7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소설가 창석(연우진)이 어느 봄 서울 종로 일대에서, 뭔가를 잃어버린 네 사람을 차례로 만나 사연을 들으면서 외면해온 자신의 아픔까지 마주하는 여정에 연우진‧김상호‧이주영‧윤혜리 등 배우들의 보지 못한 얼굴을 그려냈다.  
 

'페르소나' 잇는 아이유의 낯선 얼굴 

이지은은 시간이 멈춘 듯한 을지로의 오래된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미영을 연기했다. 마주 앉은 창석에게서 또 다른 사람을 추억하며 죽음과 세월을 넘나든 대사들을 담담하게 현실 속에 불어넣는다. 짧지만 속 깊은 연기로 “여기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 상태를 잡아내려 했다”는 김 감독의 연출 의도를 영화 초반 단단히 심어낸다.
 
“‘밤을 걷다’와 비슷한 시기에 쓰고 고민하며 나온 같은 세계관의 자매품 같은 이야기”라 설명한 김 감독은 “어떻게 보면 이어진 느낌의 캐릭터여서 영화적으로 재밌지 않을까, 이지은 배우에게 출연을 제안했고 그가 좋은 의미를 보태줬다”면서 “어떤 서글픔 같은 것도 시적으로 잘 표현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극 중 대사 자체가 일상어가 아닌 흐름이 있잖아요. 이지은 배우가 잘 소화했어요. 연기를 잘하기도 하지만, 연기자로서만 산 사람과는 다른 식의 호흡들이 있는 것 같아요. 시어나 가사를 읊조리는 것 같은 힘과 연기를 같이 붙여서 분위기를 만들었는데 그런 것들을 잘해주더라고요.”
페르소나 [사진 넷플릭스]

페르소나 [사진 넷플릭스]

작품을 만들 때 “얼추 이런 느낌의 캐릭터면 좋겠다. 어떤 것은 비워놓은 상태에서 배우들이 가진 개성과 캐릭터가 만나면 새롭게 뭔가 표현되지 않을까, 한다”는 그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로드무비 ‘최악의 하루’(2016)부터 정유미‧한예리‧정은채‧임수정 등 여배우들이 뭉쳐 하루 동안 어느 카페를 스쳐 간 네 커플의 사연을 그린 영화 ‘더 테이블’(2017), 지난해 12월 개봉한 한지민‧남주혁 청춘 멜로 ‘조제’ 등 일상 풍경을 틈새까지 섬세하게 포착하는 관찰자의 심미안으로 배우들의 낯선 매력을 발굴해왔다.  
 

17년 전 발굴한 정유미, 표정의 스펙터클  

그 대표적인 작품이 ‘보건교사 안은영’ ‘부산행’ 배우 정유미가 17년 전 첫 주연을 맡아 첫사랑의 설렘을 연기한 단편 ‘폴라로이드 작동법’이다. 김 감독은 “전에 제 단편 ‘사랑하는 소녀’(2003)에 단역으로 나왔을 때 제가 학교(서울예술대학 영화과) 선배니까 어려워하고 어색해하는 성격, 그 안에 되게 표정이 다양한 사람이라 생각했다”면서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표정의 스펙터클로 밀어붙여야 하는 영화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해줘서 저도 신기했다”고 돌이켰다. “한국영화의 중요한 배우 중 한 명이 됐다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럽죠. ‘폴라로이드…’ 때도 좋은 배우와 같이 시작했구나, 행복한 운이었단 생각이 자주 들어요.”
요즘 아카데미 후보작 ‘미나리’로 화제인 한예리도 김 감독의 ‘최악의 하루’에서 거짓말쟁이 배우 지망생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그전에 단편 목소리 출연으로 먼저 만났고 한국영상자료원 공식 트레일러에서 춤추는 연기로 다시 만났죠. 이 배우가 가진 차분한 어조의 말투, 사랑스러운 사람이란 점에서 한예리 배우가 잘해줄 것 같았어요. 시나리오를 잘 읽고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기 즐거운 배우죠.”
최악의 하루

최악의 하루

“배우가 기존에 했던 것을 내 영화 안에서 그대로 하는 것은 재미가 없다”는 그의 지론은 ‘아무도 없는 곳’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지은과 함께 가장 눈에 띄는 배우는 창석(연우진)이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는, 아픈 아내를 둔 사진가 성하 역 김상호다. “성하라는 캐릭터는 연민이 가고 삶에 대해 걱정도 되는 여러 면이 있으면서 그 많은 감정이 다 얼굴로 드러나는 에너지를 생각했는데 굉장히 좋았죠. 김상호 배우가 불같은 에너지가 있는데 연우진 배우는 물 같은 에너지의 사람이거든요. 그가 부드럽게 들어주면서 생기는 긴장감이 김상호 배우의 이야기에 더 귀 기울이게 되는 앙상블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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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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