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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강병이 정권비판이라니"···'토전사' 임용한이 본 최악리더

중앙일보 2021.04.02 05:00
지난 28일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지난 28일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정수경PD

 
학자들은 대체로 두 부류다. 현실 문제에 목소리를 내거나, 학문에만 전념하거나.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史(토전사)’에 출연한 역사학자 임용한 한국역사고전연구소장은 둘 중 어디에 속할까. 방송·칼럼에서 역사에 빗대 현 정부를 비판했다는 논란이 많았고, 잘 나가던 ‘토전사’가 그의 정치 성향 때문에 폐지됐다는 의혹을 팬들이 제기한 것 보면, ‘현실참여’형 학자가 아닐까 했다. 하지만 그는 “양 쪽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했다. 본인 표현을 빌자면 “‘원칙론’과 ‘현실비판’의 가장 극단적인 경계선에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 넣을 뿐”이라고 했다. 임 소장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현실을 투영한 듯, 현실을 투영하지 않은 듯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전쟁사’를 연구한 이유는
원래 전공은 ‘여말선초(麗末鮮初)’ 국가체제 연구다. 고려말~조선 초기에 역사상 전례 없는 100년간의 전란(戰亂)이 조선 건국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조선 건국 배경 연구에선 이런 전쟁 이야기는 쏙 빠져있었다. 그래서 연구했다.
 
‘토전사’ 출연도 이런 연구 덕분인가.
국방TV에서 ‘토전사’ 패널 섭외가 왔을 땐 거짓말인 줄 알았다. ‘방대한 세계 전쟁사를 어떻게 한 사람이 전부 다루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역사 분야는 한 명이 (전공)하는 게 50년 정도다. 멀리 가야 ±100년인데, 남의 나라 수천 년 역사를 혼자 방송에서 다루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기왕 맡았으니 공부도 열심히 했고, 얼떨결에 고정 출연했다. 결과적으로 반응이 좋았는데, 세계사를 다루면서 ‘견강부회’나 ‘아전인수’식 해석은 경계했다. 양심상 (세계사를) 억지로 (국내) 현실에 끼워 맞추려 하지 않았다.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뤄보자고 생각했다.
 
‘토전사’에서 역사에 빗대 현실 비판했다고 하던데.   
강의에서 특정 정치이념이나 정당을 비판하지 않는 게 내 신조다. 다만 보편적인 원칙을 말할 때 묘하게 현실과 매칭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나도 신경 쓰인다. 그럴 땐 스스로 되묻는다. 내가 하는 이야기가 (강의에) 꼭 나올 내용인지, 정치적 상황에 맞춰 내 설명을 스스로 뒤집었는지 점검한다. 시세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래도 대중은 임 소장이 계속 현실 문제를 비판했다고 의심했다.
물론 나도 이 시대를 살고, 개성과 성격이 있으니 원초적인 어떤 영향은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이런 건 있다. 예를 들어 ‘부국강병’하자는 게 정권 비판 논쟁으로 번지면 이건 좀 심각하다. 태초부터 국가의 목적은 한결같이 부국강병이다. 외세 침략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떤 정책과 수단을 쓰고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건, 정치 상황과 상관없이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그런데도 비판하면 할 말 없지만, 이런 게 정치적 논란으로 번지는 건 사회가 다 같이 반성할 문제라고 본다.
'토크멘터리 전쟁史' . 국방TV 유튜브 캡쳐

'토크멘터리 전쟁史' . 국방TV 유튜브 캡쳐

 
학자의 현실 비판을 너무 경계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 고민도 많은데 (현실 비판은) 전문가한테 맡기는 게 맞다. 나는 선을 넘을 필요가 없다. 내 인생의 목표는 역사를 공부해서 이 사회에 ‘큰 그림’을 남기는 것이다. 디테일한 (현실) 개입은 왜곡을 부른다.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도 충분히 가치 있다.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원론’과 ‘현실’의 경계가 어딘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누가 ‘선 넘는다’고 비판하면 할 말 없지만 나는 원칙을 말하면서 현실이란 경계선에 닿을 듯 말듯 ‘초저공비행’을 할 뿐이다. 수없이 추락해도 가장 현실 가까이 날고 싶을 뿐이다.
 
보통 정치인들이 ‘원칙’과 ‘현실’을 뒤섞는다.
사회가 혼란스럽고, 잘못 돌아갈 땐 리더나 지도자들이 항상 ‘현실’을 갖고 ‘원칙’을 비판하고 부정한다. 가령 자본주의, 민주주의 같은 근본적인 원칙은 크고 넓게 봐야한다. 그런데 운영 상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며 이런 큰 원칙을 뒤흔든다. 이런 갈등은 결국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이분법, 내로남불과 증오로 이어진다. 역사에서 이런 극악한 희생을 너무 많이 치렀다. 지금 우리 사회도 많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걱정된다.
 
‘토전사’ 폐지도 이런 센 발언들 때문 아니었나. 묘하게 들린다.
우리 사회가 ‘갈라치기’가 횡행한다. 다른 생각을 용납 못 하는 상황이 거의 8부 능선까지 갔다. 내가 생각한 10부 능선은 옛날 캄보디아 ‘킬링필드’ 같은 거다. 물론 사회가 민주화되고, 인권 수준이 높아졌으니 '킬링필드'식 폭력은 없겠지만, 마인드는 비슷하다. 점점 확증편향이 강해진다. ‘토전사’때 (갈라치기 비판을) 직접 겪어보니, ‘정말 어렵구나’ 싶더라. 하지만 맹세코 (토전사 폐지는) 내가 아는 선에서 정치적 문제 때문은 아니었다. 내적 문제였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본게임' 유지와 박창식 국방홍보원장 경질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본게임' 유지와 박창식 국방홍보원장 경질을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곧 선거가 계속 있다. 어떤 리더십이 필요할까
리더에게 가장 중요한 건 미래 비전이다. 두 가지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우선 자신의 비전이 잘못됐을 때, 과감하게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지도자가 나라를 운영하면서 자신의 원칙을 추상화하고 ‘절대 틀리지 않는다’고 합리화한다. 이건 큰 착각이고 실수다. 자신이 세운 원칙이 시대·미래가치·사회변화와 안 맞으면 바꿔야 하는데 잘 안 그런다. 차라리 사악한 지도자면 모를까, 정직한 사람이 그럴 때 더 위험하다. 현실은 ‘반죽’이다. 이걸 ‘타협’이나 ‘타락’이라고도 하는데, 가만 보면 우린 다 주먹질하면서도 어울려 살지 않나. 불건전한 비판도 받아들여야 한다. 지도자가 이런 걸 용납 못 하고 이념이나 가치에 자신을 의탁해서 ‘불통(不通)’을 합리화하면 안 된다. 본인은 양심적이고 정의롭다고 생각할지라도, 역사적인 결과는 결국 독재나 타락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리더는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갈등을 던지는 지도자다. 옛날 중세 사이비 의사들이 제일 많이 쓴 치료 방법이 수은을 먹인 거다. 이걸 먹으면 종기·궤양 같은 게 갑자기 낫는다. 근데 이런 방법은 수은 중독을 일으켜 사람이 죽는다. 당장 치료 효과가 있더라도 쓰면 안 되는 치료법이다. 정치 지도자도 마찬가진게 당장 정치적 목적만 이룰 수 있다고 씻지 못할 갈등을 만드는 정책이나 판단을 해선 안 된다. 모든 역사에 공통으로 이런 리더가 있었다.
 
현실에선 분열과 선동이 잘 먹힌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또 마음대로 생각할 테니 역사적인 사례를 보자. 고려 태조 왕건이 남긴 훈요 10조에 ‘특정 지역 사람을 쓰지 말자’는 말이 있다. 차별을 선동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내용이다. 위작설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가 이 구절에서 착각하는 게 있다. ‘훈요 10조’에 언급된 그 지역 말고 다른 지역은 모두 차별 없이 공평하게 살았을까. 절대 아니다. 권력은 항상 모든 지역과 사람을 조금씩 차별하며 다스렸다. 다만 그 차별을 좀 더 세련되고, 고차원적으로 쓰면서 조금씩 줄여왔다. 인류가 수백, 수천 년을 노력해서 차별을 줄여오며 발전한 거다. 그런데 이걸 역행해서 21세기에 고려·조선 시대처럼 차별하고 분열 조장하면 될까. 분열이 화해 불가능한 갈등이 되면 안된다. 국가의 흥망성쇠가 걸린 문제다. 
 
최근 중국 역사 왜곡에 분노가 크다. 역사학자가 보기엔 어떤가.
전쟁사를 공부하며 현실정치와 가장 맞닿아 있다고 본 건 국제 관계다. 특히 우리는 외교 역사가 짧다. 현란한 외교도 못 해봤다. 일단 주변국들이 별로 안 변했고, 속성들이 비슷하다. 중국도 그렇다. 중국이 과도한 민족주의와 패권의식을 드러내며 주변국에 이런 문화적 갈등을 일으켜서 감정싸움을 부추기면 주변국들은 결국 똑같이 대응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강 대 강’으로 맞붙으면 우린 중국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중국은 단일 민족 국가가 아니다. 연방이나 제국 같은 나라다. '쇄국을 표방하는 제국’에 맞서 (우리가) 쇄국으로 (싸움을) 붙으면 문화·경제적 대응력이 떨어진다. 물론 그렇다고 한복, 김치 같은 걸 그냥 뺏기고 인정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는 그런 수준을 넘어섰다’, ‘성숙한 어른의 대응을 봐라’는 식의 대응이 필요하다. 그래야 그들의 싸움방식에 안 말려들고 이긴다.
중국 OTT 아이치이에서 제작한 드라마 '소주차만행'의 한 장면. 아이치이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중국 OTT 아이치이에서 제작한 드라마 '소주차만행'의 한 장면. 아이치이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감정적 분노는 어쩔 수 없지 않나.
내 생각에 (감정적 대응은) 중국이 제일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대응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도 반성하고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그런데 감정적 분노가 거기서 끝나면 안 되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앞으로 드라마에서 ‘짜장면 먹는 장면도 나오면 안 돼’라는 식의 감정대응으로 가면 우리 자신을 옭아매고 죽이는 거다. 감정을 극복하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다. 예술 할 땐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맞지만, 대외정책을 세우거나 전쟁이나 외교를 할 땐 감정은 억누르고 이용할 대상이다. 종속될 게 아니다.
 
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조은재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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