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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구경만 vs 돗자리 깔고 떠든다, 한·일 벚꽃놀이 비교

중앙일보 2021.04.01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55)

일본으로 이주한 후 30년에 가까운 세월. 평상시 조용한 사람이 벚꽃 철만 되면 나무 밑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먹고 마시며 떠드는 모습이 신기했다. 벚꽃놀이 때만은 특별히 허가라도 받은 듯 마음껏 발산한다. 시기를 놓쳐 꽃나무 아래서 놀지 못한 사람은 속상해했다. “올해는 꽃놀이를 못 했어”라고.
 
길거리의 벚꽃을 구경한 것으로는 놀았다 하지 않는다. 벤치에 앉아서라도 주먹밥을 먹거나 커피라도 마셔야 꽃놀이가 된다. 나는 아이들 때문에 도시락을 들고 공원을 찾곤 했지만, 진정으로 벚꽃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1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우에노 공원의 모습. 벚꽃길을 반으로 나누어 우측 일방통행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양은심]

우에노 공원의 모습. 벚꽃길을 반으로 나누어 우측 일방통행제를 실시하고 있다. [사진 양은심]

 
일본인에게 벚꽃은 왜 그리도 특별할까. 왜 전국에 ‘관측 벚나무’까지 정해놓고 개화 선언까지 하는가. 그저 예뻐서라기에는 뭔가 설명이 부족했다. 무슨 의미가 있을 것만 같았다.
 
30년 가까이 살아오며 막연히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다. 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피는 꽃이라는 점. 새 출발을 축복이라도 하듯 일제히 피어난다는 점 정도다. 일본의 회계연도는 4월부터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입학 혹은 졸업을 앞둔 아이를 가진 부모들 사이에서는 벚꽃 시즌이 화제가 된다. 졸업식이 한창인 3월 말에 필지, 입학식이 있는 4월 초에 필지. 축복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벚꽃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싶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벚꽃의 인연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쿠라’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민속학에서는 논을 의미하는 ‘사(さ)’와 신의 자리를 의미하는 ‘쿠라(くら)’에서 왔다는 설이 있다. 만발한 벚꽃에 논의 신이 찾아와, 모내기에서 수확까지 지켜주는 고마운 존재라고 여겨졌다고 한다.
 
가마쿠라(1185~1333) 시대의 기록을 보면, 귀족은 우아하게 벚꽃을 감상하고,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은 술을 마시고 노래를 하며 시끄럽게 놀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에도시대(지금의 도쿄. 1603~1868)에는 처음으로 벚꽃길이 생겼고, 도쿠카와(徳川) 8대에 이르러서는 서민의 오락을 위해 에도의 곳곳에 벚꽃 명소를 만든다. 더 나아가 벚꽃 놀이 행사 때에는 지위나 신분에 상관없이 어울려도 좋다는 허락까지 내려졌었다고 한다. 부레이코(無礼講)라고 한다.
 
메구로 강 모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벚꽃놀이를 하고 있다.

메구로 강 모습.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유람선을 타고 벚꽃놀이를 하고 있다.

 
부레이코 풍습은 지금도 남아있다.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되는 4월 초, 신입 사원을 포함한 회사원들은 벚꽃놀이 행사를 기획한다. 정장 차림의 젊은 회사원이 자리를 잡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공원으로 향한다.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며 상사 부하의 관계를 떠나 친목을 도모하는 것이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그런 풍경은 볼 수 없게 되었다.
 
벚꽃이 전국적으로 퍼지게 된 것은 품종개량으로 ‘소메이요시노’라는 벚꽃이 생긴 후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국의 개화 선언은 소메이요시노가 기준이다. 매해 기상청 관계자가 망원경을 들고 관측을 하는 모습은 뉴스가 된다. 다섯 송이가 핀 게 확인되면 개화 선언을 한다. 올해 도쿄에서는 한 송이가 어중간하게 피었는지 담당자들이 핀 것으로 볼 것인지를 놓고 의논하는 모습이 뉴스로 전해졌다. 일본인은 이제나 저네나 개화 선언을 기다린다.
 
먼 옛날 농경 사회 때부터 일본인의 삶 속에 존재했던 벚꽃. 그들의 유전자에 벚꽃에 대한 그리움이 새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벚꽃에 대한 나의 감성과 일본인의 감성이 다름은 분명하다.
 
2020도쿄올림픽 패럴림픽의 성화 토치도 벚꽃 문양을 하고 있다. 3월 25일부터 성화 봉송이 시작되었다. 해프닝과 비판 속에서도 개막식을 향해 이어지고 있다. 마침 벚꽃 시즌이다. 벚꽃이 만발한 거리를 벚꽃 문양을 한 성화 토치가 달린다. 코로나가 종식되었더라면 더없는 이벤트였을 것이다.
 
요즘은 한국에도 벚꽃 축제가 많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벚꽃 축제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은 없다. 지금은 제주대학 입구가 벚꽃의 명소가 되었지만, 내가 다닐 때만 해도 벚꽃을 보러 사람이 몰리는 일은 없었다. 그때는 벚꽃 나무가 젊어 지금처럼 터널을 만들지도 않았다. 물론 벚꽃이 피었다고 설레던 기억도 없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진해 군항제의 역사가 가장 긴 것 같았다. 1963년부터 있었다는데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는 몰랐다. 언제부터 진해 군항제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일본의 벚꽃 축제를 접한 후에 한국에도 벚꽃 축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 벚꽃 축제를 즐기는 지금에 와서는 확실한 기억인지 가물가물하나, 벚꽃은 일본 꽃이라는 느낌이 커 특별히 사랑받는 꽃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코로나19로 2020년과 2021년의 벚꽃 축제는 축소되거나 아예 취소되기도 했다. 벚꽃의 명소 도쿄의 우에노 공원에서는 ‘우측 일방통행’을 실시하고 있다. 대면 접촉을 예방하기 위해 벚꽃이 피어있는 길을 2차선으로 나눈 것이다. 많은 이들이 벚꽃을 보며 코로나 시대의 피로를 잊으려 한다. 비록 한순간의 위안이라 할지라도.
 
한일자막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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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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