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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하필 선거 앞두고…교사·경찰·군인 상여금 당겨 뿌렸다

중앙일보 2021.04.01 05:00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이모(39)씨는 31일 갑작스레 상여금을 받았다. 아직 지난해 성과 평가도 안 끝났는데 상여금을 받는 게 이상해 인트라넷을 열어봤더니 공문이 올라와 있었다. 일단 ‘B등급’에 해당하는 상여금을 이날 먼저 주고, SㆍA등급을 받은 교사에게 4월 16일 차액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1년에 한 번 주던 상여금을 굳이 한 달 새 두 번 나눠주는 건 교사생활 15년 만에 처음”이라며 “4월 선거를 앞두고 상여금을 푸는 것 아닌가 하는 말이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교사 성과급을 3월 말까지 일괄 지급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 4월에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의 서울시교육청 공문. 공문 캡처

교사 성과급을 3월 말까지 일괄 지급하고 좋은 평가를 받은 경우 4월에 추가 지급한다는 내용의 서울시교육청 공문. 공문 캡처

정부가 예산 조기 집행 명목으로 교사ㆍ경찰ㆍ군인은 물론 지방자치단체까지 광범위하게 공무원 상여금ㆍ수당의 조기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일부 직역에선 일단 3월 중 먼저 지급한 뒤 4월 중순 이후 실제 정산한 차액을 지급하는 식으로 변칙 적용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선심성 재정 살포란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뿌린 건 초ㆍ중ㆍ고 교사 상여금이다. 예년에는 5월 스승의 날을 앞두고 교사 상여금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상여금을 지급하는데, 3월 개학하다 보니 이르면 4월, 늦으면 5월에 일괄 지급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올해는 일단 3월에 먼저 최하등급 상여금을 모두에게 주고 차액은 4월에 지급하는 식으로 바꿨다. 엄동환 서울시교육청 예산담당관은 “교육부가 지난달 10일 전국 17개 시ㆍ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예산 조기 집행 협조 요청’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공무원들이 인근 식당가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25일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에서 점심시간에 맞춰 공무원들이 인근 식당가로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경찰은 ‘초과근무 수당’을 지난달 31일 먼저 지급했다. 경찰청은 최근 일선 지방 경찰청을 통해 3월만 초과 근무수당을 31일까지 지급한다고 공지했다. 경찰은 업무 특성상 초과 수당이 많은 편이다. 매달 말까지 초과 근무 현황을 취합해 다음 달 급여일(20일)에 지급하는 식이다. 그런데 지난달에만 3월 20일까지 낸 초과 근무 추정치를 바탕으로 한 수당을 월말에 지급했다. 교사처럼 역시 차액은 4월 급여일에 주기로 했다.
 
일선 경찰서에서 일하는 김모(42) 경위는 “일단 초과근무할 만큼 내라고 해서 냈는데 다 못 채워 4월 급여에서 오히려 차감할 것 같다”며 “이미 일한 만큼 받는 게 아니라, 일단 먼저 주고 나중에 따져보자는 식으로 지급하는 게 옳은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월말까지 근무한 날짜를 따져 초과 수당을 지급하는 게 맞지만, 정부 차원의 예산 조기 집행 방침에 따라 선지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군인이나 지자체도 ‘공무원 달래기’에 나선 건 마찬가지다. 서울시청은 최근 5급 팀장급 공무원의 지난해 성과 평가등급 중 ‘C등급(하위 10%)’을 폐지한다고 발표했다. 상여금을 받을 수 없는 C등급을 폐지한 건 올해가 처음이다. 국방부는 장교ㆍ부사관에게 보통 4월에 전년도 평가에 따른 상여금을 지급해왔다. 하지만 지난해ㆍ올해는 3월에 상여금을 지급했다.
 
인사혁신처 ‘2021년 공무원 보수 등의 업무지침’에 따르면 공무원 상여금은 일시 지급하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소송 장관 재량으로 예외를 둘 수 있도록 했다. 안보홍 인사혁신처 성과급여과장은 “선거 일정과 관계없이 지난해 이어 올해도 3월까지 성과 평가를 마치고 늦지 않게 지급해달라는 식으로 일선 부처에 안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재정관리점검회의. 예산 조기집행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뉴스1

지난달 2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긴급 재정관리점검회의. 예산 조기집행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뉴스1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 따른 경제 위기 극복 차원에서 예산을 당겨 집행했다고 설명했다. 김완수 기획재정부 재정집행관리과장은 “매달 열리는 재정관리점검회의에서 ‘올해 예산 63% 상반기 집행’ 원칙을 강조해왔다”며 “선거를 고려해 ‘3월 말’이란 시점을 지정해 집행을 독려한 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 차원이라면 굳이 3월 말을 ‘데드라인’으로 둬야 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업무평가위원회 민간위원장을 지낸 이해영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절차상 하자가 없더라도 선거를 앞두고 오해를 살 수 있는 시기에 원칙을 흔들었다”며 “LH 사태로 공적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평가, 근무 상황과 관련한 공무원 급여마저 코로나19를 이유로 당겼다, 미뤘다 한다면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우려했다.
 
교사(71만여명)ㆍ경찰(12만여명)ㆍ군인(24만여명) 등 지급 규모도 만만치 않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예산 조기 집행은 위기에 처한 취약계층에게 시급한 도움을 주자는 취지지, 집행하기 쉽다는 이유로 신분이 안정된 공무원부터 예산을 뿌리는 식은 아니다”라며 “공무원에게 선거 전 당겨 지급한 상여금ㆍ수당이 경기 부양에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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