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지 않는 민심 역풍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부동산·LH 사태로 복합 위기
건성으로 하는 사과는 안 통해
부동산 도그마 솔직히 반성하고
광화문서 “우리가 틀렸다” 해야
이에 비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인식은 2018년 한 좌파 신문에 잘 표현돼 있다. “일부에서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투기 세력에 좋은 일만 시켜 주는 꼴이 된다. 국토연구원 통계를 보면 서울의 주택보급률이 2006년 94.1%에서 2016년 96.1%로 높아졌다. 100%에 육박하고 있다. 반면 자가보유율은 같은 기간 51.4%에서 45.7%로 되레 떨어졌다. 늘어난 주택이 무주택 서민이 아닌 다주택자에게 돌아간 것이다.” 좌파는 공급 확대 요구를 보수진영과 토건족의 ‘공급 만능주의’라고 매도했다.
문 대통령을 둘러싼 김수현 전 정책실장,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등은 부동산에 관한 3가지의 교조적 교리를 설파하고 다녔다. 이른바 부동산 3대 도그마다. ①부동산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집값 안정보다 주거 안정이다. ②이미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 ③민간 주도는 악(惡)이고, 공공 주도 개발이 선(善)이라는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좌파는 부동산을 경제 문제로 보기보다 정치·이념적으로 접근했다. 이런 신기루 같은 신념에 사로잡혀 결국 부동산을 망가뜨렸다.
‘집값 안정보다 주거 안정’ 허황한 구호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그래픽=신용호
이런 논리에 따라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2017년 임대사업 활성화 법안을 만들었다. 다주택자들이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면 파격적으로 세금을 깎아주었다. 하지만 ‘임대사업자=다주택자’라는 현실을 간과했다. 임대 사업을 격려하고 응원할수록 다주택자들의 주택 쇼핑이 기승을 부렸다. 2017년 211만명이던 다주택자는 2019년 228만명으로 급증했다. 덩달아 집값은 치솟고 전·월세까지 폭등하는 악몽이 닥쳐왔다. 허황되고 독선적인 이념에 따른 중대한 패착이었다. 불로소득의 과실은 고스란히 다주택자들에게 돌아가고 무주택 서민들은 벼락 거지 신세가 돼 버렸다.
주택공급은 충분하다는 잘못된 신화
김현미 전 장관은 2020년 11월까지 3년 반 동안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장담했다. “서울에 연간 4만 가구 이상 아파트가 공급되는데 2020년에는 5만3000호로 2008년 이후 가장 많다”고 큰소리쳤다. 공급 부족을 우려하는 지적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다 작동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3대 도그마
2002년에도 주택 보급률 100%라는 낙관적 통계만 믿었다가 부메랑을 맞은 적이 있다. 1인 가구와 주택 멸실·교체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반쪽 통계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은 5년 내내 집값과 전셋값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홍역을 치렀다. 똑같은 실패가 문재인 정권에서도 되풀이됐다. 아집과 착각에 빠져 주택 공급이 충분하다는 잘못된 신화에 사로잡힌 것이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대표는 뒤늦게 1인 가구 급증 등을 헤아리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수요 억제의 외눈박이 대책과 공공 주도
부동산 대책은 공급과 수요의 두 축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공급이 충분하다고 우긴 만큼 남은 것은 수요 대책뿐이었다. 집값이 오를 때마다 20여 차례 대출 규제, 세금 강화, 투기지구 지정, 분양권 전매 제한 등 똑같은 내용을 쏟아냈다. 집을 사기 어렵게 만드는 외눈박이 수요 대책뿐이었다. 집을 살 때의 취득세, 보유 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팔 때의 양도소득세를 일제히 올렸으며 주택담보대출에 이어 신용대출까지 옥죄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원죄도 적지 않다.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수요가 집중되는 곳에 양질의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공공개발을 강조하면서 최선호 지역인 서울의 주택 공급을 가로막았다. 민간 주도의 재건축·재개발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조합원 주택 공급 수 제한(2017년 6월)→ 조합원 지위 양도 금지(2017년 8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시행(2018년 1월)→ 안전진단 강화(2018년 2월)로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아파트 35층 이상을 강력히 규제했고 152개 뉴타운 현장 중 112개(75%) 사업장을 종료시켰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2012년~2018년에 재개발·재건축 취소로 아파트 24만8889가구가 사라졌다고 추정했다. 박 전 시장의 고집으로 위례신도시(4만4877가구) 5개에 버금가는 새 집 공급이 증발한 것이다.
이번 변창흠 표 2·4대책도 마찬가지다. 공공주도의 역세권 개발로 헛다리를 짚고 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가장 시급한 게 자녀를 가진 3~4인용 아파트 부족인데 역세권 개발로 웬 원룸, 빌라 타령이냐”며 싸늘한 반응이다.
부동산 역풍에 제대로 된 고해성사를
지난주 한 좌파 신문은 현 상황을 “문재인 정부가 처음 맞는 복합 위기”라고 진단했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직면한 도덕성 위기, 검찰과의 갈등으로 인한 피로감, 부동산 정책실패에 대한 깊은 불신, LH 사태가 불 지핀 공정성의 위기가 겹치면서 통치 능력 전반에 대한 신뢰가 급락했다.” 날카로운 분석이다. 그러면서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해도 부동산 민심이 악화되면서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라며 극도의 위기의식을 전했다.
문 대통령도 부동산 민심의 역풍에 놀라 전세 스캔들이 보도된 김상조 전 정책실장을 하루 만에 경질했다. 그제는 1시간 48분간 반부패 회의를 주재하면서 “부동산 부패가 부끄럽다, 야단맞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여전히 무엇이 근본 문제인지, 그리고 이 정권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공무원들과 산하 공기업의 투기만 나무라는 유체이탈 화법을 하고 있다. 만약 시장 흐름을 제대로 읽고 미리 주택 공급을 넉넉히 했더라면 LH 투기는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설사 투기가 적발되었어도 지금처럼 엄청난 사태로 비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실패를 솔직하게 반성하고 제대로 된 사과를 할 때가 됐다. “집값을 잡으려던 정책들이 현실에선 정반대 결과를 낳았다”, “주거 안정이 불안해져 송구하다”는 식의 건성으로 하는 사과는 서민들의 분노와 고통에 와 닿지 않는다. “국민들의 화가 풀릴 때까지 반성하고 혁신하겠다”는 다짐도 공허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부동산 3대 도그마부터 반성하는 게 우선이다. 진정한 고해성사라면 “우리가 틀렸다. 잘못된 도그마에 빠져 너무 큰 고통을 안겨드려 죄송하다”는 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처럼 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회의에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서 송구하다”며 A4 용지를 읽는 방식은 곤란하다. 너무 성의가 없어 보인다. 적어도 부동산 책임자였던 김수현 전 실장·김현미 전 장관과 함께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석고대죄하는 모습 정도는 연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4년간 부동산 실패로 쌓인 국민적 분노와 고통이 너무 크고 심대하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