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H 사태에 ‘기획부동산’ 등 민간 투기 세력 조준한 경찰 칼끝

중앙일보 2021.03.31 18:01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부동산 투기'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이 30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기자실에서 '부동산 투기' 정부 합동특별수사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땅 투기 사태로 불이 붙은 부동산 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경찰이 ‘기획부동산’ 등 민간 투기세력도 살펴보기로 했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30일 “내부정보를 이용하거나 차명 거래 등을 통한 부동산 투기뿐 아니라 기획부동산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개발 호재’ 미끼 던지는 기획부동산 

송철호 울산시장 부인 홍모씨가 2009년 사들인 경기도 용인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 땅 근방. 해당 지번은 산이라 쉽게 찾을 수 없다. 용인=채혜선 기자

송철호 울산시장 부인 홍모씨가 2009년 사들인 경기도 용인 처인구 양지면 평창리 땅 근방. 해당 지번은 산이라 쉽게 찾을 수 없다. 용인=채혜선 기자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기획부동산은 부동산 업계에서 통용되는 말이다. 보통 기획부동산 업체들은 일반 투자자를 상대로 그린벨트 지역의 땅이나 임야를 놓고 “개발 가능성이 있다”고 현혹한다. 업체들은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에게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땅을 팔기 때문에 투자자 입장에서는 소액으로 투자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 하나다. 하지만 개발 호재 등 허위 정보를 미끼로 개발이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한 땅을 팔기 때문에 투자자가 금전적 손해를 볼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된 송철호 울산시장의 부인 홍모(68)씨가 2009년 부동산중개업체를 통해 산 땅도 해당 지역(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에서는 “기획부동산 업체의 솜씨”라는 말이 돌았다. 당시 이 중개업체는 홍씨 등 91명에게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임야를 팔았다. 이 업체는 현재 폐업한 상태라고 한다. 
 
한 용인 주민은 “2000년대 초반 기획부동산이 이 근방에서 활개를 치면서 자기 땅이 뭔지 모르고 산 사람들이 뒤늦게 와서 내 땅이 어디에 있냐고 묻던 ‘웃픈(웃기고 슬픈)’ 일이 많았다”며 “그렇게 속은 사람들이 또 주변 사람을 속여 땅을 팔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만 20년 넘게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한 공인중개사 A씨는 “이 근방 산은 대부분 기획부동산 업체들이 팔아넘긴 땅이라고 보면 된다”며 “기획부동산에 속았다는 걸 알아도 땅이 팔리지 않으니 다들 끙끙 앓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 

(부동산적폐청산시민행동 활동가들이 29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 폐지, 부동산 적폐 LH 해체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부동산적폐청산시민행동 활동가들이 29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 폐지, 부동산 적폐 LH 해체 촉구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기획부동산 업체에 속은 피해자는 부동산 개발이 수년간 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바로 알아차리기 어렵다. 뒤늦게 안다고 해도 업체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라 피해 보상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전문가들은 계약 때부터 꼼꼼히 따지는 등 처음부터 기획부동산 업체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기획부동산 업체가 말하는 개발 정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직접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지역의 시청·구청 도시개발과 등에 문의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이어 “반드시 현장에 직접 나가 살펴보며 지역 분석을 해야 한다”며 “등기사항증명서·토지대장·도면(지적도·임야도) 등 부동산 관련 공적 장부를 다 떼봐야 한다”고 말했다. 
 
지분 공유자가 많다는 것도 의심 지점 중 하나다. 지분 공유자가 늘어날수록 분쟁 해결이나 합의가 힘드니 지분 등기를 강요한다면 기획부동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제삼자가 투자를 권유할 때 2~3배처럼 황당한 수익률을 약속한다면 현혹되지 말고 의심해야 한다”며 “실현 가능성이 있는 개발인지 등을 따져보고, 주변에 믿을만한 부동산 전문가가 있다면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했다. 
 
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