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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건너뛰고 中 향하는 정의용…패권경쟁 속 ‘줄타기 외교’

중앙일보 2021.03.31 09:05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4월 2~3일 중국을 방문한다. 취임 후 첫 해외 대면외교다. 사진은 2019년 12월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대통령 접견차 청와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대화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4월 2~3일 중국을 방문한다. 취임 후 첫 해외 대면외교다. 사진은 2019년 12월 당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대통령 접견차 청와대를 방문한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대화하는 모습. [청와대 사진기자단]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다음달 2~3일 중국을 방문해 왕이 외교부장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연다. 외교부 장관의 방중은 2017년 11월 강경화 장관의 중국 방문 이후 3년 5개월 만이다. 
 

정의용 장관 4월 2~3일 방중
왕이 부장과 외교장관 회담

외교부는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정 장관은 왕이 외교부장의 초청으로 중국 푸젠성 샤먼을 실무 방문해 4월 3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라며 “한·중 양자관계 발전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한반도 및 국제문제 등에 대해 심도있는 의견을 교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의 이번 방중은 지난 2월 취임한 이후 첫 해외 대면외교 일정이라는 점에서 상징적 의미가 있다. 정 장관은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에 이어 지난 25일 한·러 외교장관 회담을 소화했지만 모두 상대국 카운터파트가 한국을 방문해 성사된 일정이었다. 게다가 정부 고위급 인사 대부분이 코로나19로 해외 출국을 자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 장관이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  
 

미·중 패권경쟁 속 '동시관리' 시도 

역대 외교부장관은 미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의용 장관은 미국에 앞서 중국을 선택했다. 한미 간에는 이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가 개최된 상황이지만,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AFP=연합뉴스]

역대 외교부장관은 미국을 첫 방문국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정의용 장관은 미국에 앞서 중국을 선택했다. 한미 간에는 이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가 개최된 상황이지만, 첫 방문국으로 중국을 선택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AFP=연합뉴스]

실제 외교부 장관이 미국에 앞서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역대 외교부 장관은 대부분 취임 후 미국 방문을 고위급 외교의 시작점으로 삼았다. 전임 강경화 장관의 경우 취임 직후인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했고, 그로부터 약 5개월 후인 11월 중국으로 가 왕이 외교부장과 회담을 가졌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 역시 취임 한 달만인 2013년 4월 미국에서 한·미 외교장관 회담을 연 뒤 중국을 방문했다.
 
정 장관의 방중은 지난 2월 왕이 외교부장의 초청 이후 실무 협의를 거쳐 성사됐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3월 중순부터 한·중 간 회담 일자와 의제 등을 둘러싼 본격적인 협의가 진행됐다고 한다. 지난 17일 방한한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을 맞이하던 시점에 이미 한·중 외교장관 회담과 관련한 일정을 조율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외교 소식통은 “왕이 외교부장의 공식 초청 이후 정의용 장관이 중국 방문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이며 회담 일정과 의제 등을 조율하는데 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친중(親中)' 시그널 우려도

이처럼 한국 정부가 '동시관리' 외교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미·중 패권경쟁 구도가 본격화하고 있어서다. 지난 18일 한·미 외교·국방(2+2) 장관 회의가 한·미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였다면, 정 장관의 이번 방중은 한국이 미국에 치우쳐있다는 중국 측 우려를 달래기 위한 일정으로 평가된다.  
 
정의용 장관의 이번 방중이 최근 중국과의 경쟁을 본격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사진 공동취재단]

정의용 장관의 이번 방중이 최근 중국과의 경쟁을 본격화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를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진은 지난 18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사진 공동취재단]

다만 외교가에선 미·중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는 가운데 이뤄질 정 장관의 이번 방중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한·미 동맹은 우리 외교의 근간”이라는 메시지와 미국을 건너뛴 채 중국을 방문하는 행보 사이의 간극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국과 밀착하고 있는 러시아의 외교장관·국방차관이 방한한 데 이어 정 장관이 다시 방중해 외교장관 회담을 갖는 것은 중국에 대한 견제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를 자극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의 경우 지난해부터 왕이 외교부장의 초청을 받았으나 아직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이 대만과 인접한 푸젠성 샤먼에서 개최된다는 점도 주목을 받는 요소다.  대만은 최근 미국과 정치·군사적 협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중국으로부터 군사적 위협을 받는 등 미·중 경쟁의 요충지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존 헤네시닐랜드 팔라우 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 28일 단교 후 42년 만에 대만을 방문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이튿날 군용기 10대를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시켜 무력 시위를 벌였다.  
 
이같은 상황에서 한·중 외교장관이 대만을 코앞에 둔 샤먼에서 회담을 갖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한국이 대만 문제 등 미중이 갈등하는 사안에 대해 중국 측과 밀착하고 있다는 신호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19로 대면외교가 제한되는 상황인데다 지난해 11월 왕이 외교부장이 방한한 지 5개월만에 전용기를 타고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이같은 우려는 한층 짙어진다. 전임 강경화 장관의 경우 외교장관 회담 등을 위한 해외 방문시 전용기를 이용한 적이 없었다.
 
정 장관은 이번 회담에서 최근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하는 등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 문제에 대한 협력을 중국 측에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ㆍ사드) 체계 배치 이후 이뤄진 중국의 경제 보복조치 해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등도 정 장관이 풀어야 할 과제다. 외교부 당국자는 “회담 의제는 한·중 간 최종 조율 중"이라면서 "최근 한반도 정세와 관련한 깊숙한 논의가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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