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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동포는 민주당 찍는다?···오세훈 발언에 거세진 투표권 논란

중앙일보 2021.03.31 05:00 종합 8면 지면보기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연설하던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2월 15일 중국 베이징대학교에서 연설하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6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유세 현장에서는 선거 때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한국 국적을 갖지 않은 화교(華僑)가 연단에 올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지지 연설을 한 것이다. “1930년도에 중국 산동(山東·산둥)에서 할아버지가 건너와 정착해서 살고 있다”고 소개한 장영승 전 화교협회 사무국장은 “대한민국과 서울시에 납세의 의무를 다 하며 살아왔다”며 “나날이 늘어가는 다문화 가족, 외국인 가족도 잘 포용하고 지원함으로써 모든 시민이 잘 사는 선진 국제도시 서울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영주권 취득 3년 지나면 선거권
민주당 투표 독려가 공방 키워
동포측 “진보·중도·보수 다 있다”


 
한국에 있는 화교는 보통 1949년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기 이전에 한국 땅으로 건너온 중국 혈통을 뜻한다. 하지만 온라인에선 정작 화교가 아닌 흔히 ‘조선족’으로 불리는 재한 중국 동포가 4·7 재·보궐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대한 공방이 벌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의 대부분은 “왜 외국인이 한국 선거에 참여하느냐”는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부터 ‘3년 이상 거주 영주권자’ 투표권 

 
외국인이 한국 선거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15년 전인 2006년 지방선거 때부터다. 지방선거에 한해서는 ‘영주의 체류자격 취득일 후 3년이 경과한 19세 이상의 외국인’에게도 선거권을 주도록 2005년 8월 공직선거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는 선거는 ‘국민(國民)’으로서의 권리이기 때문에 외국 국적자에게는 투표권을 주지 않지만 지방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을 뽑는 선거는 그 지역 ‘주민(住民)’으로서의 권리이기 때문에 영주권을 획득하고 3년 이상 거주할 경우 국민과 동등한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만, 외국 국적자에게는 여전히 직접 선거에 나가 후보가 되는 피선거권은 제한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4·7 재·보선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은 모두 4만2246명이다. 그 중 서울에만 3만8126명이 집중돼 있다. 최근 서울시장 선거 중 가장 접전이었던 2010년 지방선거 때 당시 오세훈 한나라당 후보와 한명숙 후보의 표 차이가 2만6412표였던 걸 감안하면 승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숫자다. 서울시 등록외국인의 절반 이상이 중국 국적자이고, 그 중 70% 가까이가 조선족 동포인 걸 고려하면 무시하기 어렵다. 
 

서울시장 선거 외국인 유권자 3만8000명 

 
여기에 최근 한국 사회에 퍼진 ‘반중(反中) 정서’까지 겹치면서 논란은 커지고 있다.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은 최근에는 김치가 중국식 채소 절임인 ‘파오차이(泡菜)’라고 주장해 “음식 문화마저 찬탈하려 한다”는 강한 반발을 불렀다. 급기야 지난 26일에는 중국식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고 역사를 왜곡했다는 이유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전격 폐지됐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가 그동안 상대적으로 친중(親中) 성향을 보여왔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반발심도 논란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2017년 12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은 작은 나라지만 책임 있는 중견 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 할 것”이라고 연설한 것 등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이 공개적으로 중국 국적 영주권자의 투표를 독려하자 온라인에선 ‘재한 중국 동포=민주당 지지자’라는 취지의 글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4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중국인 영주권자의 지방선거 투표권을 박탈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청와대가 “투표권 부여 여부는 국회의 법 개정 사안”이라고 답했던 적도 있다.
 

오세훈, “조선족 90% 이상 친민주당 성향” 논란

 
논란이 격화된 배경에는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의 발언의 영향을 끼쳤다. 오 후보는 지난 1월 17일 자신이 지난해 4·15 총선 때 서울 광진을에서 고민정 민주당 의원에게 패한 이유 중 하나로 “(광진구에) 조선족 귀화한 분들 몇 만 명이 산다. 이 분들이 90% 이상 친민주당 성향”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었다. 이를 두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섰던 우상호 의원은 “‘오세훈법’의 주인공이 어쩌다 ‘일베’ 정치인으로 변질됐는지 개탄스럽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용선 중국동포한마음연합총회 명예회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동포가 민주당 지지 성향’이라는 시각에 불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는 “중국 동포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생각을 가진 게 아니고 진보·중도·보수 성향을 다양하게 갖고 있다”며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시절에는 중국 동포가 당에 가서 선거를 돕기도 했는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1월 29일 조선족 동포들이 단식 농성을 하던 서울 구로동의 조선족교회를 방문해 농성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 가장 왼쪽은 서경석 당시 조선족교회 담임목사, 그 옆은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11월 29일 조선족 동포들이 단식 농성을 하던 서울 구로동의 조선족교회를 방문해 농성자의 손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 가장 왼쪽은 서경석 당시 조선족교회 담임목사, 그 옆은 문희상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중앙포토

 
일각에선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조선족 동포의 인연에 주목하기도 한다.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1월 불법체류자로 몰린 조선족 동포들이 국적 회복을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던 서울 구로동의 조선족교회를 전격 방문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국적 회복은) 국가 간 주권 문제가 있어 대통령이나 한국의 마음대로 할 수 없고 국제 법질서에 따라야 한다”며 농성자들을 위로했다. 노무현 정부는 이후 ‘외국인 고용허가제’와 ‘방문취업비자(H-2)’ 제도를 도입해 조선족 동포가 불법체류자로 전락할 위험을 줄여줬다.

 

“일자리 줄어 민주당 지지 않는 사람 많다”

 
서경석 전 서울 조선족교회 담임목사는 “노 전 대통령은 조선족을 동포의 마음으로 대해줬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조선족 동포가 특별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봉하마을로 내려갈 때 나와 100여명의 조선족 동포가 서울역에 배웅을 갔고, 서거 때는 직접 봉하마을에 가서 조문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지만 조선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민주당을 지지할 거란 생각은 오해”라며 “최근 일하던 식당이 문을 닫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먹고 사는 문제가 힘들어져서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고 말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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