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저 신도시’에 설 자리 뺏긴 부산 명물 ‘대저 토마토’

중앙일보 2021.03.31 00:03 16면
부산 강서구 대저1동에서 35년째 짭짤이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철규(65)씨가 28일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김철규씨]

부산 강서구 대저1동에서 35년째 짭짤이 토마토 농사를 짓고 있는 김철규(65)씨가 28일 토마토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김철규씨]

“평생직장으로 여기던 토마토 농장이 신도시 개발 부지로 수용된다니 황당합니다.”
 

당도 높고 특유의 짠맛에 가격 2배
재배면적 20%가 개발부지 포함돼

코로나로 직장 잃고 귀농한 60농가
투자금 1억 회수못한 채 쫓겨날 위기

28일 부산 강서구 대저1동에서 35년째 ‘대저 짭짤이 토마토’ 농사를 하는 김철규(65)씨가 한숨을 쉬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부산연구개발특구와 공공주택 사업 부지에 김씨를 비롯해 40여 토마토 농가(45㏊)가 포함돼서다. 그는 “10년 전부터 아들도 함께 농사를 짓고 있는데 대를 이어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부산지역 대표 특산물인 대저 짭짤이 토마토가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30일 부산 강서구에 따르면 대저 1·2동에서 짭짤이 토마토를 기르는 농가는 이달 기준 320곳으로 총 재배 면적은 242.7㏊(73만평)다. 총 재배 면적의 20%에 달하는 45㏊(약 4만평)가 일명 ‘대저 신도시’ 개발 부지에 포함됐다.
 
대저 짭짤이 토마토는 일반 토마토보다 당도가 높고, 특유의 짭짤한 맛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른 지역 토마토보다 가격이 2배 정도 비싸다. 2.5㎏에 약 2만~3만원에 팔려나간다. 지난 2012년에는 지역 특산물로 인정받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지리적 표시제’에 등록됐다.
 
이듬해인 2013년 에코델타시티 사업으로 대저 짭짤이 토마토 재배지 250㏊ 중 절반가량인 115㏊가 수용되면서 한 차례 위기를 맞았다. 에코델타시티는 낙후된 서부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부산시가 낙동강 수변구역에 산업단지와 주거공간 등을 조성한 사업이다. 대저농협에 따르면 약 80개 농가가 에코델타시티 부지에서 토마토를 키우고 있었다. 당시 45개 농가는 대저동을 떠나 김해 등에서 농사를 지었고, 20개 농가는 대저1동으로 옮겨 농사를 지었다. 나머지 15개 농가는 농사를 접었다. 민병존 대저농협산지유통센터 소장은 “김해에서 생산된 토마토는 ‘대저 짭짤이’ 명칭을 붙일 수 없어 ‘으뜸 토마토’로 판매했다”며 “아무리 홍보해도 소비자가 찾지 않자 일부 농가는 다시 대저동으로 돌아오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직장을 잃은 30~40대가 귀농해 대저 짭짤이 토마토 농사를 지으면서 재배 면적은 빠르게 회복했다. 하지만 대저신도시 개발로 대저동에 터를 잡은 농민은 또다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민 소장은 “지난해 60여 농가가 귀농했는데 농사를 시작하자마자 개발 계획이 발표돼 허탈한 상황”이라며 “초기 투자금이 8000만~1억원인데 회수도 못 한 채 떠나야 한다니 다들 망연자실한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저동 농민들은 지역 특산물을 살리기 위한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나섰다. 김철규 씨는 “구청에서 아직 별도의 이전 요구를 하진 않았다”며 “농지 수용 계획이 구체화하면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안으로 대저동 내 자연녹지를 토마토 농장 부지로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민 소장은 “자연녹지에 스마트팜 농장을 크게 지어서 토마토 농가에 임대를 내주면 대저 토마토 명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제안했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이주 단지 조성 계획에 대체 토마토 농장 부지 마련 등은 포함돼 있지 않다”면서도 “대저 짭짤이 토마토 재배 농가는 먼저 정부 보조사업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토마토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