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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상대가 세계 1위라도 따질 건 따지는 게 맞다

중앙일보 2021.03.31 00:03 경제 7면 지면보기
케빈 나. [AFP=연합뉴스]

케빈 나. [AFP=연합뉴스]

“주여, 제게 용기를 주시어 50야드 밖으로 가버린 더스틴 존슨을 다시 불러 훈계할 수 있게 하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게 해주소서.”
 

존슨, WGC 경기서 셀프 컨시드
상대 우습게 본 뒤 지적받자 사과
케빈 나, 오만에 당차게 맞서 눈길

한 미국 기자가 더스틴 존슨과 케빈 나의 컨시드 사건을 두고 트위터에 쓴 글이다. 사건은 지난 27일(한국시각)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델 매치플레이에서 일어났다. 11번 홀에서 버디 퍼트가 홀을 돌아 나오자 존슨은 상대인 케빈 나 허락 없이 공을 집어 그린 밖으로 나갔다. 케빈 나는 홀 아웃 후 존슨을 불러놓고 “이 정도는 컨시드 거리지만, 내가 컨시드를 준다고 말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따졌다. 그리곤 존슨의 어깨를 두드렸다. 존슨은 사과했다.
 
존슨은 남자골프 세계 1위다.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역대 최저타 기록으로 우승했다. 존슨의 키는 1m93㎝, 케빈 나는 1m78㎝다.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는 존슨이 313야드이고 케빈 나는 288야드다. 건물주와 세입자, 기호 1번 여당 후보와 기호 5번 군소정당 후보, 골리앗과 다윗의 차이다.
 
존슨이 케빈 나를 만만하게 생각했다고 본다. 컨시드는 명쾌하게 들려야 한다. 조던 스피스는 “컨시드를 줬는지 모호할 때는 확실하냐고 다시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존슨이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상대가 뭐라 할 새도 없이 공을 바로 집어 들었다. ‘네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이런다고 네가 어떻게 할 건데’라는 뜻은 아닐까.
 
만약 케빈 나가 아닌 다른 선수였더라도 존슨이 동의 없이 공을 덥석 집었을까. 라이더컵에서 로리 매킬로이와 매치플레이 중이었다면, 성격 깐깐한 브라이슨 디섐보와 경기했다면, 그래도 그랬을까. 그러지 못했을 거라 본다.
등에 워크인 퍼트 로고를 단 케빈 나(왼쪽)가 존슨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JTBC골프]

등에 워크인 퍼트 로고를 단 케빈 나(왼쪽)가 존슨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JTBC골프]

2년 전 이 대회에서 벌어진 세르히오 가르시아-매트 쿠차 컨시드 사건과는 좀 다르다. 가르시아는 공을 집으려 한 게 아니고 홀에 넣으려 했다. 그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상대를 무시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쿠차가 경기위원을 불러 “컨시드를 주려면 어떻게 하냐”고 해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정을 소급할 수 없고, 다음 홀을 양보할 의사도 없으면서 물어보니 마치 약을 올리는 상황이 되어 가르시아의 감정이 상했던 거다.    
 
존슨은 큰코 다쳤다. 골프계의 웃음거리가 됐고, 매치에서는 역전패했다. 참가신청했던 이번 주 대회에 갑자기 불참키로 했다. 이번 사건과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기자가 트윗에 올린 "주여, 제게 용기를 …” 글은 뜻 없이 그냥 쓴 게 아니다. 존슨같은 스타 선수는 종목 내에서 권력자다. 서슬 퍼런 세계 1위 앞에서 그의 오만과 규칙 위반을 따진 케빈 나가 당차다.
 
케빈 나의 옷 로고들이 눈에 띄었다. 먼저 등에 붙은 퍼트한 공을 집어 드는 로고다. 공이 홀로 구르는 동안 홀을 향해 걸어가는 케빈 나의 트레이드 마크 ‘워크 인(walk-in) 퍼트’를 형상화한 거다. 공 줍는 모양이 이날 사건을 연상시킨다. 그의 가슴에 붙은 귀여운 악마 모양의 한국 의류 브랜드 로고는 작지만 단단한 케빈 나를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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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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