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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서 전례없는 34조 블록딜···월가 뒤흔든 한국계 '새끼호랑이'

중앙일보 2021.03.30 16:56
한국계 헤지펀드 투자자 빌 황(한국명 황성국)이 촉발한 블록딜 소식을 다룬 파이낸셜타임스(FT) 캡처

한국계 헤지펀드 투자자 빌 황(한국명 황성국)이 촉발한 블록딜 소식을 다룬 파이낸셜타임스(FT) 캡처

 
지난 26일(현지시간) 세계 금융의 중심지 미국 월가(街)는 혼란에 빠졌다. 이날 뉴욕 증시에서 전례 없는 블록딜(대규모 매매) 물량이 쏟아진 여파 때문이다. 개장 전 시작된 블록딜은 장중에도 계속됐고, 관련 매도 물량은 최소 300억달러(약 34조 3500억원)로 추정됐다. 모든 일이 금요일 하루에 벌어지면서 굴지의 글로벌 투자 은행들까지 휘청였다. 이번 사태의 배후로 지목된 이는 한국계 헤지펀드 투자자 빌 황(57·한국명 황성국)이다.
 
주말 사이 경제 전문매체들은 빌 황과 그가 촉발한 대규모 블록딜 쇼크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이코노미스트는 29일(현지시간) “빌 황이 대표로 있는 아케고스(Archegos)가 미 주식 시장을 뒤흔들었다”며 “앞으로 상황이 계속 나빠지거나 강한 여진이 있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8일(현지시간) “아케고스의 주식 매각 규모와 속도는 이전엔 없었던 수준”이라고 전했다. 최근 십수 년 간 월가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빌 황이 어떻게 하루 아침에 주식시장을 뒤흔든 걸까.
 
빌 황이 대표로 있는 아케고스가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의 빌딩. 로이터=연합뉴스

빌 황이 대표로 있는 아케고스가 위치한 것으로 알려진 미국 뉴욕의 빌딩. 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타임스(FT)와 블룸버그 등 외신들이 전한 전말은 이렇다. 빌 황의 아케고스는 실제 자산의 최대 5배에 달하는 레버리지(외부 자본을 지렛대처럼 이용하여 자기 자본의 이익률 극대화하는 것)를 일으켜 공격적인 투자를 해왔다. 실제 자산 규모는 50~100억달러로 추정되지만, 은행들로부터 거액의 투자를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아케고스가 투자했던 기업의 주가가 크게 떨어졌다. 미국 미디어 기업 바이어컴CBS과 중국 바이두 등이 대표적이다. 
 
이때문에 빌 황에게 투자한 은행들은 현금을 추가로 요구했다. 펀드의 투자 원금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될 경우, 이를 보전할 수 있도록 증거금을 더 요구하는 이른바 ‘마진 콜’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아케고스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WSJ은 “아케고스가 손실에 따른 극심한 압력에 시달리다가 결국 주식을 매각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번 사태로 타격을 입은 건 스위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와 일본 최대 투자은행 겸 증권사인 노무라다. 크레디트 스위스는 “미국의 한 대형 헤지펀드가 마진콜을 이행하지 못해 포지션을 강제 청산하면서 1분기에 상당한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성명을 냈다. 손실 규모는 밝히지 않았지만, FT는 최대 40억달러(약 4조 53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했다. 노무라는 약 20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보게 됐다고 공개했다. 2조6000억원이 훌쩍 넘는 대규모 손실이다. 소식이 전해지면서 노무라의 주가는 14%, CS는 12% 가까이 빠졌다. 
 
빌 황의 블록딜 쇼크로 글로벌 투자은행인 노무라와 크레디트스위스가 수조원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두 은행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코노미스트 캡쳐]

빌 황의 블록딜 쇼크로 글로벌 투자은행인 노무라와 크레디트스위스가 수조원대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두 은행의 주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코노미스트 캡쳐]

 
반면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은 발빠르게 대처해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CNBC는 이들이 지난주 금요일 선제적으로 포지션 정리를 마쳐 손실을 피했다고 전했다.
 
이번 폭풍을 몰고 온 빌 황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금융 거래를 할 수 없던 신분이었다. WSJ에 따르면, 그는 지난 2012년 내부 정보를 이용해 펀드를 운용했다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4400만달러(약 500억원)를 배상하고 발생 이익 1600만달러를 몰수당했다. 그러다 지난해 4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가 금융거래 제한 조치를 해제하면서 월가에 다시 등장했다.
 
빌 황은 2000년대 초반 미 증시의 대표적인 플레이어였던 ‘타이거 매니지먼트’ 출신이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를 졸업한 뒤 카네기멜런대 MBA 과정을 거쳤다. 이후 국내 증권사의 미국 지사에서 일하다가 ‘헤지펀드계의 선구자’로 불리는 줄리언 로버트슨의 눈에 들어 타이거 매니지먼트에 합류했다. 로버트슨의 수제자로 통하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했던 빌 황은 이후 아시아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타이거아시아펀드를 운영하며 ‘새끼 호랑이(Tiger Cub)’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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