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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의 시선]이 판국에 '박원순 마케팅' 띄우는 586 정치인들

중앙일보 2021.03.29 00:30 종합 28면 지면보기
2014년 6월 정무부시장에 영입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시 박원순 시장.[연합뉴스]

2014년 6월 정무부시장에 영입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당시 박원순 시장.[연합뉴스]

속칭 586그룹으로 꼽히는 유력 정치인들의 최근 언행을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많다. 특히 성범죄 때문에 서울·부산에서 시장 보궐선거를 치르는 와중에 가해자들을 대놓고 편드는 행태는 그들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의구심을 일으킨다. 
 먼저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우상호 전 원내대표다. 그는 지난달 10일 “고 박원순 시장은 내게 혁신의 롤 모델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던 동지였다. 박 시장의 정책을 계승하고 그의 꿈을 발전시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는 글을 SNS에 올렸다. 롤 모델 계승론은 곧바로 반발을 샀다. 비서 시절에 박 전 시장에게 성추행당한 여직원은 "참 잔인한 것 같다"며 2차 피해를 호소했다. 정영애 여성가족부 장관도 결국 국회에서 우 전 대표의 2차 가해임을 인정했다.

자기 정치 득실 따져 가해자 두둔
롤 모델·계승·재평가는 2차 가해
진짜 진보라면 성범죄 반성부터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공천 면접장에서 만난 우상호 후보와 박원순 후보. [중앙포토]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민주당 서울시장 공천 면접장에서 만난 우상호 후보와 박원순 후보. [중앙포토]

 보궐선거 본선으로 갈수록 기이한 언행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이번엔 대표적인 586 정치인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타석 말 폭탄'을 날렸다. 임 전 실장은 박원순 2기 시정에 정무부시장으로 1년 6개월간 함께했던 인연이 있다. 그는 지난 23일 "박원순은 내가 아는 가장 청렴한 공직자"라며 느닷없이 재평가론을 꺼냈다. '박원순 적폐' 때문에 보궐선거를 치르는 마당에 생뚱맞아 보였다.
 "주민센터·동사무소에서도 박원순의 향기를 느낀다"는 그는 "용산공원의 숲속 어느 의자에 박원순의 이름 석 자를 소박하게나마 새겨넣었으면 좋겠다"는 황당한 제안도 내놨다.
 급기야 정의당조차 등을 돌렸다. 정의당 정호진 수석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지낸 임 씨가 보궐선거가 어떤 이유로 치러지는지 모르지 않을 터인데 선거를 목전에 두고 대놓고 2차 가해를 하는 것은 매우 악의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원순이 정말 그렇게 몹쓸 사람이었나"라는 임 전 실장의 질문에 대해 정 대변인은 “(임종석은) 참으로 몹쓸 사람”이라고 되받아쳤다.
 파장이 커지자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직접 진화에 나섰다. 선거 악재를 의식한 듯 박 후보가 지난 24일 "피해 여성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상처를 건드리는 발언은 자제하자"고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다. 임 전 실장은 같은 날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 시절에는 속도와 효율이 강조됐다면 박원순 전 시장 시절에는 안전과 복지가 두드러졌다"면서 박 전 시장을 거듭 옹호했다. 
 임 전 실장의 연이은 박원순 두둔 발언은 '피해 호소인 3인방'을 선거 캠프에 영입해 2차 가해 지적을 받은 박영선 후보에겐 설상가상 악재다. 박 후보는 박 전 시장의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2차 가해 논란을 만든 남인순·진선미·고민정 민주당 의원을 선거 캠프에 영입한 당사자다. 비난 여론이 들끓자 지난 18일 박 후보가 3인방을 하차시키면서 "20만표가 날아갔다"고 언급해 진정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던 참이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TV토론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왼쪽)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 [중앙 포토]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TV토론 당시 박영선 민주당 후보(왼쪽)와 박원순 무소속 후보. [중앙 포토]

 이런 상황에서 임 전 실장의 발언이 꺼질듯한 불에 다시 기름을 끼얹은 셈이 됐다. 지금 '피해 호소인 3인방'은 서울 시내를 동분서주하며 박 후보를 위한 선거 운동에 열심이라고 한다. 캠프 직책 사퇴는 위기 모면을 위한 쇼였던가. 
 정의당 대변인이 "2차 가해가 민주당의 선거 전략인가"라고 따끔하게 일침을 놨을 정도로 임 전 실장의 박원순 감싸기 발언의 배경을 놓고 진보 진영에서도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런데 궁금증을 증폭시킨 임 전 실장의 언행에 대해 4선의 노웅래 민주당 의원이 지난 26일 힌트가 될만한 해석을 내놨다. “보궐 선거만을 염두에 둔 게 아니고 대선판까지 보고 한 말”이라는 분석이다. 잔여 임기 1년 채우는 시장 선거가 아니라 내년 3월 대선 승리를 위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임 전 실장 행보에 깔렸다는 해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임 전 실장의 대선 역할론과 차기 출마설이 나온다.
 물론 정치적 친소 관계에 따라 누구를 지지하고 비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성범죄 때문에 보궐선거를 치르는 이 판국에 아무리 많은 훌륭한 업적을 쌓았더라도 가해자를 공개적으로 추켜세우는 행위는 공감은커녕 반감을 살 수 있다. 적어도 지금은 피해자에 대한 사죄와 위로가 먼저다.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고민정 캠프 대변인(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소셜벤처허브센터를 방문해 입주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 대변인은 최근 사퇴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고민정 캠프 대변인(민주당 의원)이 지난 2월 서울 강남구 소셜벤처허브센터를 방문해 입주사 대표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고 대변인은 최근 사퇴했다. [국회사진기자단]

 요즘 항간에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자기 목소리를 감추는 '숨은(샤이) 진보'가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분명한 것은 박 전 시장이든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든 성추행 범죄에 대해 진짜 진보라면 수줍음(Shy)이 아니라 수치심(Shame)을 느끼는 것이 맞다. 엄연히 피해자가 있는 지금 롤모델·계승·재평가를 입에 올린다면 참으로 무도한 행태다.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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