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호 지켜서 징역, 어겨도 벌금? '민식이법' 처벌가른 두 사건

중앙일보 2021.03.28 05:00
지난 18일 인천시 중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불법 우회전을 하던 25톤 트럭에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지난 18일 인천시 중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불법 우회전을 하던 25톤 트럭에 초등학교 4학년 학생이 치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이 초등학교 정문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사건①= 지난해 4월 경기도 김포시의 한 아파트 앞 도로에서 보행자 적색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6살 남자 어린이가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가 발생했다. 제한속도가 시속 30㎞ 이하인 어린이 보호구역이었지만, 운전자 A씨는 시속 40.5㎞로 운행했다. 사고를 당한 어린이는 무릎 등을 다쳐 2주간 치료를 받았다.

‘민식이법’ 1년, 1심 판결문 39건 전수 조사
실형은 단 2건…사후 조치가 처벌 갈라

 
#사건②= 지난해 7월 역시 어린이 보호구역인 경기도 수원시의 한 교차로에선 횡단보도를 지나던 7살 여자 어린이 2명이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건에서 신호를 어긴 건 보행자가 아닌 운전자였다. 승용차 운전자 B씨는 좌회전 신호인데도 정차하지 않고 직진했고, 사고를 당한 어린이들은 보행자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이었다. 피해 어린이들은 각각 허벅지와 엉덩이 등을 다쳐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법원은 두 사건을 어떻게 판단했을까. 신호를 지킨 사건① 운전자 A씨의 형량은 징역 1년 6개월(실형)이었다. 반면, 신호를 위반한 사건② 운전자 B씨는 벌금 6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결정적인 차이는 사고 직후 보인 운전자의 태도였다. 사고 당시 음주운전 전력으로 인해 면허정지 상태였던 A씨는 동승자가 운전자라고 거짓말을 했다. 또 자동차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에게 어떤 보상도 하지 않았다. 반면, B씨는 사고 직후 피해자의 상태를 살핀 후 곧바로 경찰과 119에 자진 신고를 했다. 이후 피해자의 치료비를 모두 변상했다. 재판부는 B씨의 이런 태도를 중요한 감형 이유로 기재했다.
 

‘민식이법’ 판결문 39건 중 실형은 2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민식이법’(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5조의 13)이 지난 25일로 시행 1년을 맞이했다. 중앙일보가 지난 1년간 민식이법이 적용된 1심 판결문 39건을 전수조사한 결과, 실형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벌금형은 16건, 집행유예 판결은 19건, 그리고 무죄가 2건이었다. 민식이법이 생겨나면서 “스쿨존에서 사고가 나면 무조건 징역”이라는 예측이 많았지만 그와는 다른 결과였다.
 
‘민식이법’ 적용 판결 39건 전수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민식이법’ 적용 판결 39건 전수조사.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징역형으로 결론 난 사건 2건은 모두 규정 속도 위반 외에 다른 교통법규 위반이 더해진 상태에서, 반성하지 않거나 합의금 지급을 거부할 때만 선고됐다. 사건①의 운전자 A씨는 과속(시속 40.5㎞)에 무면허 운전, 범행 은닉 시도가 더해져 징역 1년 6개월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5월, 광주 광산구에서 과속(시속 42㎞) 운전으로 11살 여자 어린이를 버스로 들이받은 버스기사 C씨는 정지신호 위반 사실이 더해져 징역 10개월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설령 피해자가 신호가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뛰듯이 건넜다 하더라도, 어린이 보호구역에서는 어린이의 그러한 특성까지 감안하여 주변을 잘 살펴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C씨의 경우 “운전자보험 지원 금액인 1000만이 넘는 금액은 형사합의금으로 지급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인 것도 징역형이 선고된 이유 중 하나로 기재됐다. 운전자보험에서 지원되는 금액을 상한으로 정해 놓고 개인적으로는 전혀 부담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고, 피해자의 부모가 엄벌을 탄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징역형이 아닌 벌금형이 선고된 사건들은  대부분 사건에 대한 반성과 치료비 지급,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들이 감형사유로 기재됐다. 민식이법은 최대 3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게 규정했지만, 실제 선고된 벌금액수는 모두 1000만원 이하였다. 특히 피해 어린이가 주변을 살피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등 피해자 과실이 명확한 경우엔, 벌금형의 하한선인 벌금 500만원보다 낮은 벌금 300만원이 선고됐다.
 

스쿨존 6.7% 감속…안전시설 보강은 ‘미흡’

 
스쿨존에 불법주차된 차량을 단속하는 모습. 서울시 제공

스쿨존에 불법주차된 차량을 단속하는 모습. 서울시 제공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스쿨존에서 고(故) 김민식 군이 교통사고로 숨진 뒤 어린이 교통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발의된 ‘민식이법’은 그동안 논란의 대상이었다. 법안 발의 직후 학부모들은 조속한 통과를 요구했지만, 법 통과 직후엔 ‘과잉 처벌’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법 개정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35만여 명이 동참하기도 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은 ‘민식이법’ 통과 이후 스쿨존을 운행하는 차량의 평균 속도가 6.7% 감소했다고 분석한다. 서울시 1400여개 스쿨존 주변 택시 운행기록 자료를 이용한 연구에서, 스쿨존 평균 운행 속도가 시속 34.3㎞(2018년 6월)에서 시속 32.0㎞(지난해 6월)로 느려졌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어린이 보호구역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도 2019년 6명에서 지난해 3명으로 줄었다. 
 

다만 ‘민식이법’에서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스쿨존 과속단속 카메라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연말 기준 전국의 어린이 보호구역 1만 6896곳 가운데 무인교통단속 장비가 설치된 곳은 3554곳(21%)에 불과했다. 박무혁 도로교통안전공단 교수는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처벌을 강화하는 것 말고도 시설물 보강이 필요하다”며 “재정 여건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무인단속 장비를 사회적으로 집중하는 차원에서 좀 더 확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식이법’은 최근 시행 1년을 앞두고 발생한 어린이 사망 사고로 인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18일 인천시 중구 신흥동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초등학교 4학년생이 60대 남성 D씨가 몰던 25톤 화물차에 치여 숨지면서다. 2019년 ‘민식이법’을 대표 발의한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운전자께서 불편함을 감수해 주신 덕에 어린이 교통안전을 지키자는 인식이 강화됐지만, 어린이 보호구역이 지금보다 더 실질적인 보호 기능을 하려면 단속 카메라 등 시설물 확충이 더 빠르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오현석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