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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냄새다" 고고학자들 탄성···나란히 발견된 임진왜란 두 마님

중앙일보 2021.03.27 09:00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미라 상태로 발견된 여흥 이씨의 가리마(여성용 쓰개의 일종) 실제 착장 모습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미라 상태로 발견된 여흥 이씨의 가리마(여성용 쓰개의 일종) 실제 착장 모습 [사진 문화재청]

 
최근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총 96건 124점)’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구성 이씨와 여흥 이씨는 각 무덤의 주인공을 지칭하는데, 2010년 나란히 미라 상태로 발견됐다. 출토 정황상 16세기 임진왜란 전에 살았던 한 사대부의 전처와 후처로 추정된다.

2010년 경기 오산서 미라 무덤 잇단 발굴
전처·후처로 추정…장례 풍습 연구 기여
복식 등 보존상태 좋아 민속문화재 지정

 
“소나무 관 냄새가 난다. 미라 냄새다!”
 
2010년 5월 8일 경기도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공사현장 구릉 꼭대기에 모인 서경문화재연구원 직원들 및 여러 고고학 전문가들이 굴착기로 들어 올려진 목관 앞에서 이렇게 탄성을 질렀다. 이들은 공사 현장에서 문화재 발굴 조사 중에 조선시대 회곽묘(灰槨墓)를 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자리에 모였다. 회곽묘 혹은 회격묘(灰隔墓)라고 불리는 이 같은 무덤은 관 주변을 석회로 채움으로써 공기가 통하는 것을 차단해 종종 관 안에서 미라 형태의 인골이 나온다.  
 
2010년 경기도 오산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먼저 발굴된 여흥 이씨(두번째 부인)의 미라 시신을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해포하는 과정 중의 모습. [사진 서경문화재연구원]

2010년 경기도 오산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먼저 발굴된 여흥 이씨(두번째 부인)의 미라 시신을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해포하는 과정 중의 모습. [사진 서경문화재연구원]

2010년 경기도 오산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뒤이어 발굴된 구성 이씨(첫번째 부인)의 미라 시신을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해포하는 과정 중의 모습. [사진 서경문화재연구원]

2010년 경기도 오산 산업단지 공사현장에서 뒤이어 발굴된 구성 이씨(첫번째 부인)의 미라 시신을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해포하는 과정 중의 모습. [사진 서경문화재연구원]

응달에서 관 뚜껑 한쪽 끝을 살짝 열어보니 냄새 등으로 미뤄 이 같은 기대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햇볕에 관이 노출되면 복식 등의 색이 금방 변하기 때문에 연구진은 관을 잘 포장해 서울의 병원 부검실로 옮기고 다음날 다시 모였다. 시신에서 각종 염습의(殮襲衣)를 하나씩 벗겨 내는 해포(解布) 작업을 위해서였다. 각 전공자들이 함께 신중을 기하느라 오전 9시에 시작한 작업은 오후 3시 넘어 이어졌다. 마지막 수의를 살짝 아래로 끌어내리자 미라의 귀와 목 부위가 드러났다. 다소 검게 변하긴 했지만 피부결까지 그대로 남아 있었고 얼굴에 씌워진 천을 벗기자 움푹 팬 광대뼈와 윤기가 남은 이까지 생생히 드러났다.  
 
여성이었다. 키 154㎝, 가슴둘레 74㎝, 팔길이 50㎝, 발크기 23.5㎝였다. 목관 뚜껑 위에선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라고 적힌 명정(銘旌)과 관을 덮은 구의(柩衣, 홑이불 같은 베 보자기)가 발견됐다. 명정이란 장례 시 죽은 사람의 신분을 밝히기 위해 품계‧성씨 등을 적어 상여 앞에서 길을 인도한 뒤 관 덮개에 씌워서 묻는 깃발이다. 이를 통해 여흥 이씨라고 불린 망자의 남편이 이씨 사망 당시 6품이었던 걸 알 수 있었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구성이씨 묘(위쪽)와 여흥이씨 묘에서 각각 나온 명정.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구성이씨 묘(위쪽)와 여흥이씨 묘에서 각각 나온 명정. [사진 문화재청]

 
그리고 불과 한달도 되지 않아 조사단은 머지않은 곳에서 또 다른 여성 미라 회격묘를 발굴했다. 이번엔 관의 덮개에 ‘儒人駒城李氏之柩(유인구성이씨지구)’라고 적힌 명정이 나왔다. 구성 이씨 사망 당시 남편의 품계는 정9품으로 확인됐다. 먼저 나온 미라보다 20∼30년가량 앞선 시기에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미라의 신장은 145㎝, 가슴둘레 70㎝, 팔길이 43㎝, 발크기 20.5㎝로 왜소한 편이었다. 두 발굴에 모두 참여했던 서경문화재연구원 전성호 조사팀장(당시 직함)은 “피부는 검게 변했지만 윗니와 아랫니, 콧날, 지문, 손발톱 모양까지 그대로 남아있었다”면서 "20세 전후 이른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고 2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회고했다.
 
이 둘의 관계는 인근에서 또다른 묘를 확인하면서 쉽게 풀렸다. 관까지 모두 썩어 시신은 미라로 보존되진 않았지만 인골이 남성의 것이라 이들 둘의 남편으로 추정됐다. 조선 사대부였을 남성은 구성 이씨(뒤에 발견된 미라)와 먼저 혼인했을 테고 그가 9품이었을 때 어린 아내가 세상을 떴다. 여흥 이씨(먼저 발견된 미라)와 재혼했지만 둘째 부인 역시 남편이 6품까지 오른 뒤 세상을 떴다. 남편이 여흥 이씨보다 먼저 사망했을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구성이씨 묘에서 출토된 단령형원삼.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구성이씨 묘에서 출토된 단령형원삼.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여흥이씨 묘에서 출토된 자수바늘집노리개.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여흥이씨 묘에서 출토된 자수바늘집노리개. [사진 문화재청]

 
“조선시대 잘 사는 사람, 세력 있는 양반들은 무덤에 해충을 막기 위해 석회를 두텁게 둘렀어요. 그래서 서민들 묘에선 안 나오는 미라가 이런 사대부 묘에서 종종 나온답니다. 또 장례를 치를 때 고인이 일상적으로 입었던 옷을 먼저 입힌 뒤에 절차에 따라 소렴, 대렴을 했어요. 시신을 관 안에 넣은 뒤엔 빈 곳에다 일종의 부의금 개념으로 가족, 지인들이 옷이나 물건을 꽉꽉 채웠어요. 여자의 관에서 남자 옷, 아이들 옷이 나오는 이유죠.”
 
조선시대 복식사 전문가인 이은주 안동대 교수(융합콘텐츠학)의 설명이다. 실제로 구성 이씨와 여흥 이씨 묘에선 다채로운 복식과 소품들이 함께 나왔다. 남편이 상대적으로 낮은 9품일 때 사망한 구성 이씨 묘에선 41건 51점이, 6품 승진 후 사망한 여흥 이씨 묘에선 55건 73점이 나왔다. 전처와 후처 미라가 동시에 발견된 것도 이례적이지만 이들 사이에 20~30년 격차가 있어 그 사이의 복식 변화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미라 인골에 장착된 그대로 발견된 데다 보존상태가 매우 뛰어나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문화재청은 이들 유물이 “임진왜란(1592년) 이전 16세기 중후반 양반 가문 여성의 다양한 복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희소성이 높고, 조선 시대 여성의 염습(殮襲) 과정 등 전통 장례 방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첫째 부인으로 추정되는 구성 이씨 무덤에서 나온 전단후장형쌍스란치마.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조선 시대 중기 여성의 복식 문화와 상·장례 풍습을 파악할 수 있는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사진은 첫째 부인으로 추정되는 구성 이씨 무덤에서 나온 전단후장형쌍스란치마. [사진 문화재청]

특히 시신의 머리에 쓴 상태로 출토된 ‘가리마’는 기록으로만 전하던 여성용 쓰개(모자)의 착용 방법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남성의 관복처럼 목선이 둥근 형태인 ‘단령형(團領形)원삼’은 원삼의 초기 모습을 보여준다. 치마의 앞부분을 접어서 앞은 짧고 뒤는 길게 만든 ‘전단후장형(前短後長形) 쌍스란치마’는 임진왜란 이전 시기에만 확인되는 복식이다. 이밖에 실용적인 생활소품이자 장신구로서의 역할을 겸비한 ‘자수바늘집노리개’는 세부 장식까지 그대로 남아있어 당대 자수 기법을 확인할 수 있다. 출토 사례가 많지 않은 얼레빗과 참빗, 귀이개, 솔 등도 귀한 유물이다. 흥미로운 건 남편이 상대적으로 높은 직위일 때 배우자였던 여흥 이씨 묘의 출토 유물이 더 평범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수례지의(襚禮之衣, 죽은 이의 묘에 배우자, 형제, 자매 등 가족들의 옷을 넣어주는 풍습에 따라 넣은 옷)로 사용된 액주름(양쪽 겨드랑이 밑에 주름이 잡혀 있는 포), 철릭(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복) 등 덕분에 동시대 남성 복식의 특징까지 파악할 수 있다. 400여년 전 사대부 집안 옷장을 엿볼 수 있게 하는 이 복식들은 보존처리를 거쳐 현재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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