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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곡 논란 ‘조선구마사’ 방송 사상 처음 전격 폐지

중앙선데이 2021.03.27 00:20 729호 12면 지면보기
SBS ‘조선구마사’. [사진 SBS]

SBS ‘조선구마사’. [사진 SBS]

역사 왜곡 논란을 빚은 퓨전 사극 ‘조선구마사’가 방영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국내 방송 사상 초유의 일이다.
 

제작비 320억 SBS 드라마
음식·의상·건물 등 중국풍 과도
여론 악화, 광고 철수 등 후폭풍
대본 쓴 박계옥 작가도 도마 위에
촬영 80% 상황, 2회 만에 접기로

SBS는 26일 공식 입장을 내고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해 ‘조선구마사’ 방영권 구매 계약을 해지하고 방송을 취소하기로 했다”며 “이로 인한 방송사와 제작사의 경제적 손실과 편성 공백 등이 우려되는 상황이지만, 지상파 방송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작사인 YG스튜디오플렉스, 크레이브웍스, 롯데컬쳐웍스도 “관련 해외 판권 건은 계약해지 수순을 밟고 있고, 서비스 중이던 모든 해외 스트리밍은 이미 내렸거나 금일 중 모두 내릴 예정”이라고 말했다. SBS에 따르면 애초 16부작으로 기획됐던 드라마의 방영권료 대부분은 이미 선지급됐고, 제작사는 촬영을 이미 80% 마친 상황이라고 한다. 제작비는 320억원으로 알려졌다.
 
‘조선구마사’는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을 퇴치한다는 독특한 이야기다. 태종과 양녕대군, 충녕대군(세종) 등 실존 인물들을 그대로 등장시켰지만, 첫 회 방영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우선 충녕대군이 바티칸에서 온 가톨릭 구마 사제에게 월병과 중국식 만두, 피단(삭힌 오리알) 등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음식뿐 아니라 건물이나 의상 역시 한국이 아닌 중국풍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안 그래도 최근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중국산 비빔밥이 등장한 것을 두고 중국 누리꾼들과 설전이 벌어지며 분노가 축적된 상황에서 시청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태종이 아버지 태조의 환시를 보고 백성을 학살하고,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와 역관에게 무시당하는 등의 설정 역시 아무리 허구라 해도 실존 인물을 과도하게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전주이씨 종친회 측에서도 이를 문제 삼아 SBS 측에 항의했다.
 
극 중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에게 월병 등을 대접하는 장면. [사진 SBS]

극 중 충녕대군이 구마 사제에게 월병 등을 대접하는 장면. [사진 SBS]

대본 집필을 맡은 박계옥 작가도 도마 위에 올랐다. 전작인 tvN 드라마 ‘철인왕후’에서도 철인왕후가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 표현하고, 신정왕후가 미신에 빠진 인물로 등장하면서 ‘역사 왜곡’이라는 몸살을 앓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또 ‘철인왕후’의 원작이 혐한 이력이 있는 중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도 지적됐다. 여기에 박 작가가 중국 측 콘텐트 제작사와 집필 계약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용 비틀기가 의도적인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무엇보다 광고주와 제작 지원사 등이 빠져나가면서 제작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삼성전자, 쌍방울, 에이스침대 등은 25일부터 제작지원 철수 입장을 밝혔다. 촬영 장소를 제공했던 문경시와 나주시도 이를 취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공동 제작에 참여했던 롯데컬처웍스도 26일 투자 철회를 공식 발표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해외에서도 실존 인물에게 허구를 덧입히는 경우가 없지는 않다”며 “다만 한국에서는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인물에 대해 이런 시도를 하는 데 대해서는 보다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중국의 동북공정 등으로 민감한 시점에서 제작진의 판단이 안이했다”고 지적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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